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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운명 을 쓴 베토벤 역경 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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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안 들리는데 교향곡을 썼다고?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역경 앞에 주저앉는 사람과, 역경에게 잠깐, 나 아직 안 끝났어 라고 말하는 사람.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명백히 후자였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독일 서부 본(Bonn)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Johann van Beethoven, 1740~1792)에게 혹독한 음악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모차르트(1756~1791)처럼 신동으로 팔리길 원했다. 그래서 베토벤의 나이를 두 살 어리게 속여서 연주회 광고를 냈다. 그러니까 베토벤의 음악 여정은 시작하자마자 가짜뉴스 로 시작된 셈이다. 참으로 현대적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가짜 신동이 아니라 진짜 천재였다. 스물둘에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당대 최고의 스승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에게 배웠으나, 사제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스승이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투덜댔고, 하이든은 이 젊은이가 너무 버릇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꼰대와 MZ의 충돌 이었다. 다만 그 충돌의 결과가 역사에 남는 음악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베토벤 초상화 1820년(위키피디아) 운명은 문을 두드렸고, 베토벤은 문을 부쉈다 베토벤의 생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스물여덟 살이던 1798년 무렵 시작된 난청이다. 음악가에게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은, 요리사에게 미각이 없어지고 화가에게 시력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베토벤 자신도 절망해 이 사실을 숨겼다. 1802년, 서른두 살의 베토벤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 동생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사실상 유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거의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조금만 더 했더라면 내 손으로 내 삶을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유서를 쓴 사람이 다음해에 교향곡 3번 영웅 (Eroica)을 완성했다. 유서를 쓰고 영웅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의지의 인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뒤로도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졌다. 마흔다섯 살 무렵엔 거의 완전히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교향곡 9번 합창 (1824년 초연)을 써냈다. 마지막 악장의 노랫말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로 유명한 환희의 송가 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이 온 인류를 위해 노래한 것이다. 초연 당일 지휘를 마친 베토벤은 관객의 기립박수를 듣지 못해 뒤돌아 서 있었다. 옆에 있던 독창자가 그를 돌아서게 했다. 그제야 그는 눈앞에서 물결치는 박수와 환호를 보았다 . 이 장면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본의 봉가세 20번지 베토벤 생가는 현재 베토벤 하우스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위키피디아) 베토벤이 사회와 역사를 흔든 방법 베토벤은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음악으로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었다. 당시 음악가는 귀족의 고용인 이었다. 하이든만 해도 귀족 에스테르하지(Esterházy) 가문의 하인 복장을 입고 일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달랐다. 그는 귀족의 집에 고용되기를 거부했고, 연주 도중 귀족이 떠들면 화를 잔뜩 내며 연주를 멈추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한번은 귀족 카를 폰 리히놉스키(Karl von Lichnowsky, 1761~1814) 공후가 프랑스군 장교들 앞에서 연주를 강요하자, 베토벤은 이렇게 쏘아붙이며 떠났다. 공후 각하, 당신 같은 분은 수천 명이 있을 수 있소. 그러나 베토벤은 오직 한 명이오. 이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음악가를 귀족의 도구에서 독립적인 예술가로 격상시킨 사람이었다. 베토벤 이후 음악가는 더 이상 고용된 광대 가 아니었다. 이것은 문화사적으로 혁명이었다. 또한 베토벤은 프랑스혁명(1789~1799)의 정신, 즉 자유·평등·박애의 이상을 음악에 담았다. 교향곡 3번은 본래 나폴레옹(1769~1821)에게 헌정하려 했다. 나폴레옹이 혁명의 이상을 실현할 인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1804년 스스로 황제에 오르자, 베토벤은 악보의 헌정 페이지를 손으로 찢어버렸다. 그도 결국 속물이었구나. 이 분노가 교향곡 3번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베토벤의 가장 오래된 초상화, 스물아홉 살 때다. (위키피디아) 한국에서 베토벤을 읽는다는 것 2026년 봄, 대한민국은 여전히 어지럽다. 탄핵과 선거, 양극화, 청년 실업,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 이 상황에 베토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겠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베토벤 정신이라고. 첫째, 귀가 안 들려도 음악을 썼다,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지 마라. 많은 사람이 말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 조건이 좋아지면 하겠다 , 이 정권이 바뀌면 해보겠다 . 베토벤은 귀가 다 들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안 들리는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을 썼다. 조건은 절대 완벽해지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권력에 굽히지 않았다, 을의 자존심. 베토벤이 귀족 앞에서 보여준 태도는, 지금 대한민국의 수많은 을 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갑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직장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해도, 권력자가 법 위에 서도, 재벌이 노동자를 짓밟아도 어쩔 수 없다 고 했다. 베토벤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연주를 멈추고 나갔다. 물론 우리가 모두 베토벤처럼 나갈 수는 없다. 밥벌이가 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마음 속으로, 그리고 투표소에서, 우리는 베토벤이 될 수 있다. 셋째, 나폴레옹 헌정 악보를 찢었다, 우상을 향한 용기 있는 환멸. 우리 사회는 정치적 우상숭배가 지나치다. 어떤 이는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면 배신자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사랑했어도 그가 틀렸다고 느껴지자 악보를 찢었다. 인물이 아니라 가치를 따르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태도다. 한국의 진보도, 보수도, 이 점에서는 한참 멀었다. 넷째, 환희의 송가, 분열된 사회에 필요한 노래.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젊은 날부터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시 환희에 부쳐 를 아껴 수십 년간 가슴에 품어온 끝에 마침내 마지막 악장의 노랫말로 붙였다. 실러는 베토벤과 자유와 인류애의 이상을 나눈 정신적 동반자였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이것은 적을 용납하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라는 선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희소해진 것이 바로 그 감각, 상대를 이기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보는 최소한의 시선이 아닐까. 베토벤은 들리지 않는 귀로 음악을 썼다. 하지만 우리는 멀쩡한 귀로도 듣지 못하고 있다.   요제프 빌리브로르트 맬러가 그린 리라 기타를 든 서른세 살의 베토벤 초상화(1804년 경, 위키피디아) 운명 교향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은 빠빠빠빰 으로 시작한다. 이 네 음표에 대해 베토벤이 직접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제자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 1795~1864)가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들 어떤가. 어차피 운명은 항상 문을 두드린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문을 열고 맞서느냐, 이불을 뒤집어쓰느냐다. 베토벤은 57년을 살았다. 청력을 잃고, 사랑에 번번이 실패하고, 조카 양육권 소송에 휘말리고, 가난과 싸우면서도 9개의 교향곡,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16개의 현악 사중주를 남겼다. 그는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박수 쳐라, 여러분. 연극은 끝났다. 그러나 진짜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전 세계 음악당에서 울리고, 유럽연합의 공식 음악이 되었으며, 우주선 보이저(Voyager) 호에 실려 태양계 밖을 날고 있다. 들리지 않는 귀로 쓴 음악이,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우주공간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역설이 어디 있겠는가. 대한민국도 지금 많이 지쳐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베토벤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다. 그리고 다음해에 영웅을 작곡했다. 유서의 다음이 영웅적인 행로였다. 우리의 다음도, 그럴 수 있다. 그래야 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젠트랄프리트호프에 있는 베토벤의 무덤(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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