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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전기 남아도는데 또 짓는다고?
[환경]
18일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전경. 2026.6.18. 연합뉴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대형원전 2기 부지로 경북 영덕을, 소형모듈원전(i-SMR) 부지로 부산 기장을 선정했다. 아직 원전 건설이 최종 승인된 것은 아니다. 환경영향평가와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허가와 운영허가 등 여러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신규 원전 건설을 실제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 신규 원전이 정말 필요한가? 정부는 AI 데이터센터 확대, 산업 전기화, 전기차 보급 증가 등을 이유로 미래 전력수요 증가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정책은 전망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 전력계통이 처한 현실부터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전성 경제성 검증은 나중에, 건설부터 먼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원전은 더 이상 100% 출력으로만 운영되는 전원이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 증가, 계절별 수요 변화, 전력계통 안정성 문제로 인해 원전 출력조정이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 전력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원전 출력제어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25년 상반기에만 25회의 출력제어가 발생했다. 특히 2025년 봄철에는 가동 중인 원전의 절반 수준인 12기가 출력감발 대상이 되었고, 총 346시간 동안 약 6만MWh의 발전량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 한국은 원전 전력이 부족해서 고민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특정 시간대에는 원전 출력을 줄여야 할 정도로 공급이 남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한수원은 원전 탄력 운전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사례를 참고하고 있지만, 원자로 설계와 계통 운영 환경이 달라 동일한 방식의 적용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다면 국민은 당연히 묻게 된다. 지금도 원전 출력을 줄여가며 운영하고 있는데 왜 영덕에 2.8GW 규모의 신규원전 2기를 추가해야 하는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원전 확대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 수요 전망만으로 수십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정부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회원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15주기를 맞아 탈핵 선언대회를 하고 있다. 2026.3.11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기장에 추진되는 i-SMR 사업이다. 정부는 이를 혁신형 원전이라고 부르지만, 현재 i-SMR은 세계 어디에도 상업운전 사례가 없는 FOAK(First Of A Kind) 설계다. 건설 경험도, 운영 경험도, 장기 안전성 데이터도 없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제작성, 검사성, 정비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시 된다. 또한 23m 길이의 원자로 모듈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공장 제작·운송 방식의 모듈화와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안전성 관련 규제 기관과 수백 건의 질의가 오가지만 제대로 해결되는 안건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경제성은 아직 실증된 적이 없다. 정상적인 순서라면 안전성과 경제성 검증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와 건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오히려 부지 선정과 투자, 정책 추진이 먼저 진행되고 있고 검증이 뒤따라가고 있다. 끝없이 ‘신규 원전 건설’ 요구하는 ‘원전 생태계 유지’ 주장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신규 원전 건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원전산업계는 흔히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신규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자재 업체와 설계기관, 연구기관, 전문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면 심각한 모순에 부딪힌다. 단지 생태계 유지를 이유로 영덕 원전을 건설한다면, 영덕 원전이 완공된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생태계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원전을 지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원전이 완공되면 다시 다음 원전을 지어야 하지 않는가? 결국 생태계 유지가 원전 건설의 목적이 되는 순간, 원전 건설은 끝없는 반복에 빠지게 된다. 전력 수요가 있어서 원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원전 건설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원전을 짓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전산업은 국가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국가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니다. 강한 정부는 산업을 관리한다. 전력수요를 분석하고, 경제성을 검증하고, 안전성을 확인한 뒤 필요한 만큼만 건설한다. 반면 약한 정부는 산업의 이해관계에 끌려간다.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원전을 짓고, 원전을 지었으니 다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또 다른 원전을 짓는다. 그 끝에는 국민 부담과 미래세대의 책임만 남는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신규 원전의 필요 여부를 넘어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산업의 이해관계가 국가를 움직이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과 미래세대에 대해 책임을 지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그 답을 하지 못한다면, 원전은 더 이상 미래를 밝히는 에너지가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지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이정윤 시민기자 immjy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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