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폭락…조정 시작? 차익 실현? [뉴스] 전쟁이라도 발발한 것같은 우리나라 증시였다. 23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파랗게 물들었다. ‘1만피’가 가시권이던 지수는 단숨에 8,200선까지 밀리면서 하루 기준으로 역대급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닥도 폭락하며 올해 상승분을 전부 반납했다. 우리나라 증시를 견인하던 쌍두마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12%이상 폭락하며 불과 하루 사이에 수백조원의 시총을 허공에 날렸다. 시장에선 반도체 대장주들에 대한 차익실현 매물이 시장을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기업들의 펀더멘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분석의 근거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1분기 기업 영업이익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검은 화요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온통 파란불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서비스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910.71포인트(9.99%) 폭락한 8,203.84로 장을 마쳤다.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올해 3월 4일(698.37포인트·12.06%)에 이어 올해들어 두번째로 큰 하락률이다. 전일 종가 대비로는 역대 최대 하락 폭이다.
0.34% 내린 9,083.54로 출발한 지수는 종일 우하향 흐름을 이어가며 낙폭을 키워갔다.
이에 거래소는 오전 11시 40분께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매도 사이드카)를 발동, 5분간 프로그램매도호가 효력이 정지됐고, 오후 2시 33분에는 서킷브레이커마저 발동해 20분간 매매거래를 중단했으나 하락 추세를 멈추지는 못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조 1391억원과 4조 5129억원을 순매도하며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개인은 홀로 8조 5223억원을 순매수하며 저가매수에 나섰다. 이는 하루 순매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지만 지수를 방어하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이달 5일 -5.54%(478.82포인트), 8일 -8.29%(676.18포인트), 9일 +8.18%(612.52포인트), 10일 -4.52%(366.11포인트), 12일 +4.63%(359.67포인트) 등 급등락을 거듭하며 큰 폭의 변동성을 보였다.
코스닥 지수도 76.88포인트(7.94%) 내린 891.52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오전 급락에 따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지수가 900선 아래로 무너지면서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코스피가 10% 가까이 급락해 8,200선을 간신히 지키며 마감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10.71포인트(9.99%) 내린 8,203.84로 거래를 마쳤다. 2026.6.23, 연합뉴스
무엇이 우리나라 증시를 충격과 공포로 밀어넣었나?
오늘 하루 우리나라 증시가 초토화된 주된 배경으로는 인공지능(AI) 투자 출혈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원하던 대로 미래 산업을 선점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재차 고개를 든 것이 꼽힌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AI 거대기업들이 경제를 독식하게 해선 안 된다면서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는 ‘저가형 AI 모델’이 우후죽순 등장해 가격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간밤 뉴욕증시는 아마존(-4.75%), 엔비디아(-0.97%), 마이크로소프트(-3.18%), 메타(-2.32%) 등 주요 빅테크들의 주가가 일제히 내리면서 혼조세로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29% 오른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 종합지수는 각각 0.37%와 1.33%씩 밀렸다.
현지시간 24일로 예정된 마이크론 실적발표에 대한 경계감도 배경이 됐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WM혁신본부 상무는 시장에서는 회계연도 3분기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19.5~19.9달러로 전망하지만, 트레이더들의 실질 전망치인 위스퍼 넘버가 22달러를 기록하는 등 시장 기대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면서 이를 고려할 때 예상을 큰 폭으로 웃돌지 못할 경우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될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선반영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닛케이 255 지수가 3.55%, 대만 가권지수가 1.34% 하락 마감하는 등 일제히 하락했으나, 한국만큼 큰 낙폭을 나타낸 곳은 없었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가 116.28% 급등하며 차익실현 압력이 높았던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시장 쏠림이 극단적으로 심화한 상태였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이 처음으로 출시된 것도 변동성 확대를 부추겼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펀더멘털 문제보다는 ‘테크니컬’한 조정 압력이 커진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특히 유동성 측면에서 ‘숏 감마(Short Gamma)’에 대한 부분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는 상승 또는 하락 국면에서 레버리지 효과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예컨대 고객이 2배 레버리지 지수상장펀드(ETF)를 1억원 어치 구매할 경우 운용사는 2억원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초자산이 오르거나 내리면 상승 혹은 하락분의 2배 물량을 사거나 팔아야 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움직임이 곧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PG),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끝간데 없이 오를 것 같던 삼전·닉스의 대굴욕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23일 외국인의 투매에 동반 폭락했다. 두 종목의 하락률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후 17년여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전장보다 12.47% 내린 255만 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SK하이닉스 하락률은 금융위기 여파로 증시가 휘청였던 2008년 12월 24일(-12.73%) 이후 17년 6개월 만에 가장 컸다.
주가는 0.72% 내린 289만 8000원으로 출발해 한때 상승 전환해 294만 3000원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이후 급격히 낙폭을 키웠다. 장중에는 253만 6000원까지 밀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전장보다 12.31% 내린 31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하락률은 지난 2008년 10월 24일(-13.76%) 이후 17년 8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하락 출발해 한때 35만 3000원까지 낙폭을 줄였으나 다시 하락폭을 키워, 장중 저가에서 장을 마쳤다.
SK하이닉스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면서 전날 삼성전자 보통주 시가총액을 뛰어넘었던 SK하이닉스 시총은 이날 1820조 9545억원으로 삼성전자 보통주(1812조 3464억원)과의 격차가 8조 6081억원으로 축소됐다.
오전 10시 58분께에는 삼성전자 보통주 시총이 더 많아지면서 일시적으로 순위가 뒤바뀌는 양상도 나타났다. 다만 장 마감 시점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1위는 SK하이닉스로 삼성전자(보통주 기준)가 뒤를 이었다. 다만 우선주까지 포함한 시총은 삼성전자가 여전히 1위를 사수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8000선 아래를 깨고 내려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편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이날 전장보다 2.35% 급등한 89.41로 장을 마쳤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높은 이익 증가율은 기대감도 만들지만, 이익 예상치 하회와 증가율 정점 통과 우려도 형성할 수 있다”면서 이달 초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부각됐던 당시 저점을 고려할 때 현재 코스피 저점은 7,900 부근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시적으로 코스피 지수가 8000선을 깨고 내려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코스피가 10% 가까이 급락해 8,200선을 간신히 지키며 마감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10.71포인트(9.99%) 내린 8,203.84로 거래를 마쳤다. 2026.6.23, 연합뉴스
1분기 국내 기업들의 실적은 역대급
비록 검은 화요일이 엄습하긴 했지만, 국내 기업들의 펀더멘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6년 1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2만 6067개(제조업 1만 2962개·비제조업 1만 3105개)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분기 6.0%에서 올해 1분기 13.2%로 7.2%p 상승했다. 이는 2015년 1분기 통계 편제 이후 가장 높다.
특히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6.2%에서 18.1%로 3배로 뛰었다.
기계·전기전자 업종은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 확대에 힘입어 6.9%→32.5%로 뛰었다.
석유·화학 업종도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개선 영향으로 5.7%에서 9.7%로 상승했다.
반면 비제조업 영업이익률은 5.9%에서 5.7%로 소폭 하락했다.
운수업의 수익성이 안 좋아진 이유가 컸다. 해상운임 상승으로 운수업의 매출은 늘었지만, 고유가와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률이 9.5%에서 7.0%로 낮아졌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수익성 격차는 상당 부분 반도체 대기업 영향으로 분석됐다.
다만 이미주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두 업종의 격차가 크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이 팀장은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두 기업을 제외하면 6.6%로 낮아져 비제조업과의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대 대기업이 실적을 끌어올린 탓에 영업이익률의 기업 규모별 격차는 크게 나타났다.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6.4%에서 14.8%로 배 이상 높아졌지만, 중소기업은 4.1%에서 4.7%로 0.6%p 개선되는 데 그쳤다.
주요 성장성지표, 자료 : 한국은행
성장성을 나타내는 1분기 매출액증가율은 13.5%로 지난해 4분기(2.5%)보다 11.0%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2022년 3분기(17.5%) 이후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지난해 4분기 4.7%에서 올해 1분기 21.1%로 뛰었고, 비제조업도 0.3% 하락에서 3.7%로 상승 전환했다.
제조업에서 기계·전기전자 업종이 18.0%→52.1%로 급등했고, 이 가운데 전자·영상·통신장비 업종은 28.9%→75.7%로 뛰었다.
비제조업은 운수업,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매출액이 늘었다.
운수업은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해운 운임 상승과 항공 여객 수요 확대 등으로 매출액증가율이 지난해 4분기 -2.5%에서 올해 1분기 8.1%로 상승 전환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이 4.0%에서 16.0%로, 중소기업은 -3.7%에서 2.4%로 개선됐다.
성장성 개선도 반도체 업황 호조가 이끌었지만, 반도체 대기업 효과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이 팀장은 매출 증가분 상당부분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실적에 기인했다”면서도 작년 4분기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제외한 전 산업 매출액증가율이 -0.6%였는데 1분기에는 4.6%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주요 수익성지표, 자료 : 한국은행
재무 안전성 지표의 경우 전체 기업의 1분기 부채 비율은 87.0%, 차입금의존도는 23.9%로 작년 4분기(88.9%, 24.4%) 보다 떨어졌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부채비율은 67.8%에서 68.0%로 소폭 상승했지만, 비제조업은 127.9%에서 122.9%로 낮아졌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 부채비율이 85.5%에서 83.8%로, 중소기업은 105.4%에서 103.0%로 하락했다.
이 팀장은 2분기 전망과 관련해 반도체 제조업이 견조한 AI 수요를 바탕으로 호조세를 지속하면서 전체 지표 개선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국제유가 등 원자재가격 변동에 따른 원가 부담, 철강·화학·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의 중국발 과잉 공급 여파, 미국 관세장벽 영향 등으로 기업 경영상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