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중앙선거관리위원 지명은 즉시 철회돼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대법관 퇴임 이후에도 당분간 위원장 직을 유지하며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관리를 맡도록 정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MBC 뉴스데스크가 27일 보도했다. 관례적으로 대법관을 퇴임하면 선관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났지만, 지난 2020년 권순일 선관위원장은 선거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퇴임 뒤 52일간 위원장 직을 유지한 전례가 있다. 논란이 된 천대엽 대법관을 선거관리위원으로 내정한 것을 당분간 없던 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합특검법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단행한 천대엽 대법관의 중앙선거관리위원 지명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 지명은 부적절하다.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자리는 단순한 행정직이 아니다. 그 자리는 헌법적 가치의 상징이며, 주권자의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런 자리에 국민적 신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인물을 앉히는 것은, 제도에 대한 불신을 제도 스스로 확장시키는 행위다.
천 대법관은 국가적 위기와 혼란의 국면에서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데 있어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애매한 균형 감각이 아니라 헌법적 원칙에 대한 명확한 태도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모습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결단이라기보다,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소극적 관리에 가까웠다. 선관위원장은 관리자가 아니라 수호자여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조 대법원장의 판단이다. 사법부 수장은 누구보다 정치적 파장에서 거리를 유지해야 할 자리다. 그러나 이번 지명은 관례”라는 이름 아래 국민적 우려를 외면한 채 밀어붙이는 인상마저 준다.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 신뢰 위에 세워진다. 그 신뢰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1963년 이후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아온 전통이 있다 해도, 지금은 그 전통이 자동으로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선관위가 각종 논란과 의혹으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내부 엘리트 중심의 인사를 반복하는 것은 개혁 의지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국민은 더 이상 늘 그렇게 해왔다”는 설명에 설득되지 않는다.
선관위는 이미 채용 비리, 조직 운영의 불투명성, 관리 부실 문제 등으로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상징적 쇄신이다. 조직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신호, 외부로부터도 신뢰받을 수 있는 인물의 등장, 구조적 개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다. 그러나 이번 지명은 그러한 요구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존 구조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선거의 공정성은 실제로 지켜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정해 보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선관위원장은 단 한 번의 의혹도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다. 국민이 저 사람이라면 믿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지명은 그 확신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과 갈등을 선거 이전부터 증폭시킬 위험이 크다.
이 지명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는 고집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의 우려를 경청하고, 더 높은 기준을 선택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임이다.
국회 또한 형식적 인준 절차로 면피해서는 안 된다. 인준은 통과 의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를 점검하는 엄중한 과정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검증하고, 조금이라도 신뢰에 흠집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분열과 불신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공적 기관의 수장은 누구보다 엄격한 도덕성과 명확한 헌법적 태도를 갖춰야 한다. 논란의 여지를 남긴 채 선거 관리의 최고 책임자로 오르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책임이다. 이는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적 비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원칙적 요구다. 선거는 국민의 것이다. 그 선거를 지킬 자리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물에게 돌아가야 한다.
12.3비상계엄과 내란국면에서 천대엽이 보여준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듯한 태도로 비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신중함을 내세우다가도, 또 다른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내놓으며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하는 듯한 태도는 사법부 고위 인사에게 기대되는 일관성과 무게감을 떨어뜨렸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의 입장을 대변하는 ‘스피커’를 자임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까지 겹치면서, 독립성과 주체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눈치 빠른 처세술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소신과 책임이다. 우유부단함과 즉흥성으로 비쳐진 행보는 결국 사법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직자의 말 한마디는 개인 의견이 아니라 제도의 얼굴이라는 점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명을 철회하라. 관행이 아니라 국민을 기준으로 다시 판단하라. 그것이 사법부가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는 길이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