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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하늘을 읽고 구름에 이름을 붙인 약사 루크 하워드

하늘을 읽고 구름에 이름을 붙인 약사 루크 하워드
[사람들]
오늘 하늘을 봤는가. 아마 못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하늘보다 손바닥 안의 유리 사각형을 더 자주 들여다보니까.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20여 년 전, 런던의 한 약사가 하늘만 바라보며 평생을 보냈다. 미쳤냐고? 그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일기예보를 볼 수 있게 됐다. 적어도 그 예보가 틀렸을 때 항의할 언어라도 생겼다.   루크 하워드(위키피디아) 약국 청년이 하늘에 꽂히다 루크 하워드(Luke Howard, 1772~1864)는 1772년 11월 28일 런던에서 퀘이커교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퀘이커란 17세기 영국에서 생겨난 기독교계열 신앙공동체로, 소박함과 평화, 평등을 강조하며 노예제반대 운동 등 사회참여로 널리 알려진 집단이다. 하워드는 어릴 때부터 하늘 보기를 좋아했고, 열 살 무렵부터 날씨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 눈에는 그저 몽상에 빠진 아이였겠지만, 역사는 그 몽상에 훈장을 달아줬다. 학교는 영국 버포드(Burford)의 퀘이커학교를 다녔는데, 교장 토머스 헌틀리(Thomas Huntley)가 상당히 엄했다. 라틴어를 못 외우면 매를 맞았다. 덕분에 하워드는 죽어도 잊히지 않는 라틴어 는 익혔지만 수학과 과학은 별로 배우지 못했다고 스스로 회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라틴어가 훗날 구름에 이름을 붙이는 핵심도구가 된다. 역사는 참으로 장난기가 넘친다. 학교를 마친 뒤 7년간 약사수업을 받고 독립사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798년에는 동료 퀘이커 교도이자 약사인 윌리엄 앨런(William Allen, 1770~1843)과 동업하여 런던 롬바드 가(Lombard Street)의 약국을 운영하게 됐다. 하워드는 에식스(Essex) 주 플레이스토(Plaistow)의 실험실을 맡았다. 이 실험실에서 약품을 만들며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장이 없을 때 딴 짓을 한 것이 아니라, 그 딴 짓이 곧 본업이었던 셈이다.   윌리엄 앨런(위키피디아) 구름에 이름을 붙이다, 1802년의 기적 하워드 이전에는 구름을 일관되게 분류하는 방법이 없었다. 색깔, 크기, 모양, 짙기, 높이, 습기 등 제각각의 기준으로 제멋대로 묘사했을 뿐이다. 심지어 프랑스의 저명한 자연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조차 분류를 시도했다가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남겼다. 그러던 1802년 12월, 런던의 소박한 지식인 모임 애스케시언 협회(Askesian Society) 에서 하워드가 발표에 나섰다. 제목은 구름의 변형에 관하여(On the Modification of Clouds) . 청중은 소수의 젊은 지식인들뿐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듬해 1803년 논문으로 출판된 이 글은 순식간에 하워드를 유명인으로 만들었고, 10년도 안 돼 서유럽 전역에서 그의 분류법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가 제안한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천재적이었다.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의 생물 분류법을 본떠, 라틴어로 구름을 세 가지 기본형태로 나눴다. 실처럼 엷은 권운(卷雲, Cirrus), 층층이 쌓인 층운(層雲, Stratus),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운(積雲, Cumulus)이 그것이며, 여기에 여러 중간·복합 형태를 더하여 오늘날까지 쓰이는 분류체계의 원형을 만들었다. 왜 라틴어였을까. 라마르크가 프랑스어로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가 있다. 하워드는 국경을 넘어 통용될 수 있는 언어, 즉 당시 학문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선택했고, 바로 그 보편성이 성공의 열쇠였다. 거기에 그는 구름이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임을 강조했다. 틀을 만들면서도 그 틀의 유연성을 미리 설계해 둔 것이다. 분류학의 정수(精髓)였다.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초상화(위키피디아) 시인도 화가도 반했다 하워드의 논문은 1815년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됐고, 이를 읽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깊이 매료되어 하워드를 기리는 헌정 시까지 썼다. 과학논문 하나가 독일 최고 시인의 창작욕을 불태운 것이다. 오늘날 논문들이 심사위원조차 끝까지 읽지 않는다는 세태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영국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의 시 「구름(The Cloud)」도 하워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낭만주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구름 연작과,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M.W. Turner, 1775~1851)의 빛과 대기를 담은 회화들도 하워드의 분류에서 영감을 받았다. 약사가 구름에 이름을 붙였더니 시인이 시를 쓰고 화가가 붓을 들었다. 이것이 지식의 힘이다. 분류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그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위키피디아) 도시가 시골보다 덥다, 220년 전의 기후 경고 하워드의 업적은 구름 분류에만 그치지 않는다. 1833년 그는 『런던의 기후(The Climate of London)』를 출판하며, 런던이 주변 농촌지역보다 더 따뜻하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이것이 오늘날 도시 열섬 현상 의 최초 과학적 기록이다. 그는 1801년부터 1841년까지 무려 40년간 런던의 기온, 기압, 바람, 강수량을 기록했다. 생각해 보라. 자동 기상 관측망도, 디지털 기록장치도 없던 시절에, 한 사람이 40년을 꾸준히 하늘을 보고 수치를 적었다. 집념인가, 집착인가. 아마 그 경계 어딘가에 위대한 과학이 있는 것 같다.   권운 연구, 영국화가 존 컨스터블 그림(위키피디아) 약사이자 사회운동가, 하늘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워드는 하늘만 바라본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동료 퀘이커교도 윌리엄 앨런과 함께 노예제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나폴레옹(1769~1821) 전쟁 이후 황폐해진 독일주민들을 위한 구호기금 모금에서는 공동 사무국장을 맡아 1814년까지 30만 파운드를 모았다. 이에 프로이센과 작센의 왕들이 금반지와 마이센 도자기로 감사를 표했고, 마그데부르크 시는 명예시민권을 수여했다. 하워드는 1821년 영국 왕립학회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는 귀족도, 대학교수도 아니었다. 약을 팔며 하늘을 바라본 사람이었다. 말년에는 종교적 갈림길에 섰다. 1835년 아이작 크루드슨(Isaac Crewdson, 1780~1844)이 퀘이커신앙의 내면의 빛 교리를 정면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자 영국 퀘이커 사회가 크게 흔들렸다. 하워드는 1836년 결국 평생의 공동체를 떠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으로 옮겼다. 배신인지 신념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그는 1864년 세상을 떠나, 아내 마리아벨라(Mariabella Eliot Howard, 1777~1852)가 먼저 잠든 윈치모어 힐(Winchmore Hill) 퀘이커묘지에 함께 묻혔다. 향년 91. 그 긴 생애 동안 하늘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아이작 크루드슨 초상화.(위키피디아) 한국에서 루크 하워드를 읽는다는 것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려보자. 그게 밥이 됩니까? 의 폭력. 하워드는 평생 약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기상학을 일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 질문은 모든 호기심과 탐구의 목을 조르는 흉기처럼 작동한다. 입시에서 취업까지,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그러나 하워드의 구름분류는 아무도 돈을 지불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다. 진짜 지식은 종종 그 틈새에서 자란다. 기록이 곧 권력이다. 하워드는 40년을 기록했다. 한국사회는 지금 기록과 진실을 둘러싼 싸움 한복판에 있다. 무엇이 사실이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결정이 언제 내려졌는지, 기록이 없으면 역사는 힘 있는 자의 입 속으로 사라진다. 하워드의 40년 데이터가 도시 열섬 현상을 증명했듯, 꼼꼼한 기록은 언젠가 반드시 세상을 바꾼다. 220년 전의 기후경고를 흘려듣는 나라. 하워드가 런던에서 발견한 도시 열섬현상을 서울은 지금 온몸으로 겪고 있다. 서울의 여름은 해마다 뜨거워지고, 폭우는 더 거세지며,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부터 를 외치는 목소리들에게 하워드의 데이터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220년 전에 이미 경고했소. 혼자가 아니었다. 하워드는 혼자 위대해진 사람이 아니다. 퀘이커공동체라는 신뢰의 그물망 안에서 동료들과 토론하고, 협회에서 발표하고, 함께 사회문제에 뛰어들었다. 개인주의적 경쟁이 공동체를 해체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아마추어의 복권. 하워드는 정규 과학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관찰과 분류는 당대 전문가들을 뛰어넘었다. 자격증 이 모든 것의 문지기 노릇을 하는 사회에서, 진짜 전문성은 제도가 아니라 열정과 성실에서 온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증명했다. 오늘도 하늘 어딘가에는 권운이 흘러가고, 층운이 낮게 깔리며, 적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 이름들이 생긴 지 220년이 넘었다. 런던의 한 약사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구름을 저 하얀 것 , 저 회색 덩어리 라고 부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이해는 변화의 전제다. 루크 하워드는 약사, 기상학자, 사회 운동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오늘, 잠깐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의 구름분류체계는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의 국제 구름분류기준의 토대가 되어 있다.   영국 문화유산 파란색 기념 명판 – 런던 토트넘 브루스 그로브 7번지(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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