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탄광 수몰 비극, 한일 연극인이 공동창작 [뉴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유해의 DNA 감정 추진이 양국 공식 합의 사항으로 발표되면서, 84년간 봉인되어 있던 역사적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시작된 바로 그 시점, 민간의 예술가들은 이미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조용히 준비해 오고 있었다.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성북구 성북미디어문화마루 꿈빛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조세이탄광 — 살고싶었다〉는 한국의 작가 김민정이 쓰고, 일본의 연출가 시라이 케이타가 무대화하고, 양국의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는 작품이다. 두 나라 예술가들이 13년간 쌓아온 신뢰와 우정이 만들어낸 완전한 공동창작이다. 제작사 측의 설명대로 단순한 역사 고발극이나 이슈를 겨냥한 일회성 공연이 아니다.
13년 우정의 결실, 고수희와 시라이 케이타
이 작품이 성사되기까지에는 한국의 극단 58번국도의 대표이자 이번 작품의 예술감독을 맡은 고수희와 일본의 극단 온천드래곤의 연출가 시라이 케이타 사이의 오랜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13년간 서로 교류하면서 언젠가 함께 공동제작을 하자 고 약속했다. 어떤 이야기를 함께 해야 할지를 고민해온 두 사람이 찾아낸 것이 조세이탄광이었다. 1942년, 같은 갱도 안에서 함께 수몰된 한국인과 일본인 광부들의 이야기. 어느 한쪽의 역사가 아닌, 같은 어둠 속에서 같은 운명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 였다.
이 기획은 극단 58번국도 고수희 대표와의 오랜 우정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우리 연극 인생의 하나의 도달점입니다. 왜 민간인들이 이토록 집념을 가지고 유골을 수집하고 있는가 — 그 숭고한 열정을 무대를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연습실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성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꼭 극장에서 목격해 주십시오.”
— 연출 시라이 케이타 (극단 온천드래곤 대표)
시라이 케이타 극단 온천드래곤 대표(왼쪽)와 고수희 예술감독.
우리의 이야기 ‘같은 갱도, 같은 침묵’
이 작품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따지지 않는다.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광부 47명, 총 183명이 같은 갱도 안에서 함께 수몰되었다. 작품은 그 사실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서로 다른 사정을 가졌지만, 같은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들, 84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을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희생자들은 지금도 바닷속에 남아 있다. 민간 잠수사들은 지금도 바다 아래로 내려간다. 최근 유골 발굴과 DNA 감식 추진이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이것은 수습이 아니라 뒤늦은 구조 라는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듯하다.
잊혀진 것과 잊어버린 것은 다릅니다. 조세이탄광은 한국에서는 기억될 기회조차 없었고,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 있었습니다. 그 두 개의 침묵 사이에 이 작품이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그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이며, 그것이 오랜 침묵을 깨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술감독 고수희 (극단 58번국도 대표)
언어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
무대 위에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공존한다. 두 나라의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같은 공간에 선다. 창작진은 그 불편함조차 이 작품의 일부라고 말한다. 84년 전에 갇힌 수면 아래의 사람들을 끝까지 건져 올리고 싶은 현재 사람들의 간절함이, 무대 위 공존하는 언어의 벽을 허물고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자각만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84년 전 물이 들어찬 어두운 갱도에 함께 갇혀 있던 한국과 일본의 광부들, 그리고 그들을 건져 올리려 애써온 우베시 시민들의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언어의 차이는 벽을 만들지만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해지는 순간, 그 벽은 허물어지고 그저 같은 인간이라는 자각만이 남습니다.”
— 작가 김민정
조세이탄광 수몰 현장을 찾은 연극 조세이탄광 — 살고 싶었다 의 창작단.
포스터에는 창작진이 현장 답사에서 직접 촬영한 환기구 피야 의 사진이 실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조세이탄광의 시간을 보여준다. 우베시 바다 위에 서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붉은 글씨로 제목이 쓰여 있다. 살고 싶었다 . 도쿄 자·코엔지 극장 공연에 이어, 이번 한국 초연 무대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예매는 NOL티켓에서 할 수 있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