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연령 하향… 눈앞에서 내치는 게 해법일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사회적 대화협의체 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20 연합뉴스
연일 보도되는 청소년들의 흉포한 범죄 소식에 대중은 분노한다.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법을 악용한다”며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춰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 중 상당수는 사실과 꽤 거리가 있다. 우리는 혹시 실체가 없는 것에 잘못 이끌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화살을 가장 힘 없는 아이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투표할 판단력 부족하지만 형사 책임은 질 수 있다 이중잣대
요즘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일찍 성숙해졌으니 성인과 똑같이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선거 연령 하향을 논의할 때 우리 사회는 아직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투표할 판단력은 부족하지만, 범죄를 온전히 인지하고 무한한 형사적 책임을 질 판단력은 충분하다는 이중잣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의 청소년들은 일찍부터 노동 등 실제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반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사회 진출이 유보된 상황이다. 신체는 성숙했을지 몰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화’를 경험할 기회는 오히려 빈약해졌다. 아직 사회화조차 끝나지 않은, 의무교육의 대상자인 13세 아동에게 모든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변화한 범죄의 양상, 정말 아이들 탓인가
통계를 살펴보면 소년 범죄가 흉포화되었다는 대중의 체감과 달리, 소년 사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절도와 사기다. 가출 후 길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계형 범죄’이거나,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결과인 경우가 많다. 무인 점포의 확산으로 범죄의 문턱은 낮아졌고, 아이들이 또래와 몰려다니며 몇 천 원짜리 간식을 훔쳐도 ‘특수절도’라는 무거운 혐의가 씌워진다.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성범죄 역시 실제적인 신체적 폭력보다 딥페이크, 불법 촬영, 성착취물 유포 등 ‘온라인 디지털 범죄’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과거에는 훈육이나 장난으로 덮고 넘어갈 학교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지면서 신고와 사법화 비율이 증가한 측면도 크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해한 환경과 새로운 범죄의 덫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만 오롯이 그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취약성을 파고드는 사법의 민낯
소년범 대다수의 배경에는 ‘취약한 가정’이 있다. 이는 단순히 한부모, 빈곤가정이라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고 지지할 수 없는 가정의 기능 문제다. 가족의 보호력이 튼튼한, 즉 돈과 힘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사법 절차 안에서 전문적인 조력을 받으며 유연하게 대처한다. 반면 보호력이 취약한 아동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 내내 방치되며, 결국 더 무거운 형벌을 받고 사회로 내던져진다. 그 어떤 아이도 자신이 태어날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제도 현황과 연령 논의의 주요 쟁점 을 주제로 열린 공개 포럼에서 김혁 국립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2026.3.18 연합뉴스
죄를 짓지 않아도 갇히는 아이들, 제도의 맹점
대중이 잘 모르는 충격적인 대목이 있다. 우리 소년법에는 죄를 짓지 않아도 처벌 대상이 되는 ‘우범 소년’ 제도가 있다(소년법 제4조 제1항 제3호).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거나 유해 환경에 접하는 성벽(오랫동안 심신에 배어 굳어진 버릇)이 있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정 앞에 선다.
더 기막힌 것은 ‘통고 제도’다(소년법 제4조 제3항). 보호자나 학교장, 사회복지시설의 장, 보호관찰소장은 경찰 등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 소년부에 아이를 넘길 수 있다. 예컨대 가정폭력을 피해 복지시설에 입소한 아동이, 단지 시설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행의 조짐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장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소년원에 갈 수도 있는 구조다.
소년원을 퇴소한 아이는 원 시설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동을 보호해야 할 책임자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아이를 길 밖으로 내몬 것과 다름없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아이조차 구금되어 사회와 단절되고, 그곳에서 오히려 범죄를 학습하게 되는 이 지독한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찢긴 안전망과 처벌의 끝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보호 인프라는 턱없이 빈약하다. 제도는 많은 듯 보이나 질적인 수준은 매우 열악하다. 가장 큰 문제는 법과 부처가 제각기 나뉘어 심각하게 따로따로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어느 체계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나 관리를 받게 되든, 그 아이들이 겪어온 열악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배경, 처한 위기 상황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힘든 미로 속에서, 당장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기 십상이다.
흔히 촉법소년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명백한 오해다. 만 10세 이상 아동은 이미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 구금이라는 자유를 박탈당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그나마 소년법의 ‘보호처분’ 안에는 미흡하지만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교육 장치와 부모에 대한 지도·권고 절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연령을 낮춰 어른들과 똑같은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밀어 넣게 되면 이런 최소한의 장치마저 완전히 끊긴다.
소년범죄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방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형사처벌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사회의 책임은 교묘히 면제해주고 오직 아이 혼자 그 형벌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지독히 무책임한 일이다.
장도리로 결제단말기를 파손하는 청소년. 대전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두 번째 기회의 보장과 어른의 책임
나는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일하며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을 여럿 만나 왔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눈앞에서 놓쳐버린, 끝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이 아이들이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른들은 보통 내 아이가 거리에 나앉게 되면 어떻게든 가장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만에 하나 범죄에 연루되었다 하더라도 최대한 선처를 구하며 아이가 다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눈물로 기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며 엄벌을 촉구하는 그 촉법소년들은 우리가 평소 만나고 걱정하는 우리 아이들과 과연 다른 아이들인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좀 과장하면 ‘한 아이를 내치고 처벌하기 위해 온 마을이 합심하는 것 같은 섬뜩한 풍경을 자아낸다. 그 아이들은 진정 우리 마을의 아이가 아닌가.
눈앞에서 아이들을 치워 교도소에 가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그들이 어떤 모습이기를 기대하는가. 더 교활하고 분노에 찬 범죄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건강하게 자립한 평범한 이웃인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더 이상의 범죄가 없는 안전한 사회일 것이다.
국가의 중대한 형사정책을 일시적인 사회적 분노나 들끓는 여론에 기대 결정할 수는 없다. 현재 이 사안을 두고 사회적 공론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연령 하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이분법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므로, 소모적인 논쟁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당장 우리 사회가 시급하고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아이들이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과연 사회는 어떤 안전장치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격리되어 처벌받는 동안, 나아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나이라는 기준점을 낮춰 누군가를 더 일찍 감옥으로 보내는 눈가림식 처방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은 변한다. 우리는 아동에게 두 번째 기회를 기꺼이 줘야 한다. 아이들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먼저 세상을 살아간 어른들의 마땅한 책임이다. 위기를 진정한 기회로 바꾸기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은 연령 하향이라는 손쉬운 채찍이 아니라 찢긴 사회의 보호망을 다시 촘촘히 엮어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