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방향 제시 필요한 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준장 진급 장성 삼정검 수여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필요한 개혁을 하더라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모두를 개혁대상으로 몰아,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옥석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며 문제를 제거하고 문제 인사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되 무관한 다수 구성원이 의욕을 잃거나 상처 입게 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검찰·노동·경제·언론·법원 개혁 등 어떤 개혁이든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복잡하고 번거롭다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매우 신중하고 균형 잡힌 발언처럼 들린다. 무리한 개혁으로 사회적 갈등을 키우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발언을 한국 정치의 맥락 속에서 읽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원칙론이 아니라 개혁을 지연시키는 권력의 언어로 들린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생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개혁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급진적 요구가 아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노동개혁 등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 온 과제다. 특히 검찰 권력의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뿌리 깊은 권력 구조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수사와 기소 권한을 동시에 쥔 거대한 권력기관이 정치와 결합하거나 정치의 도구로 사용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권력에 유리한 선택적 수사, 정치적 사건에 대한 과잉 수사, 그리고 정권 교체기의 권력 투쟁 속에서 드러난 검찰의 정치적 행보는 한국 사회가 왜 검찰개혁을 요구해 왔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무모한 급진주의로 묘사될 위험에 놓인다. 이 표현은 매우 강력한 비유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것은 전체를 파괴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의미한다. 즉,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마치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세력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기되어 온 개혁 요구는 집을 태우자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은 구조를 손보자는 것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반대편에 있다. 집 안에 빈대가 들끓고 있는데도 집이 상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더 큰 파괴를 부른다. 문제를 덮어 두는 동안 빈대는 계속 늘어나고 결국 집 자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표현이다. 이 말 역시 매우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제도 개혁의 본질은 개인의 선악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문제는 개인 몇 명을 처벌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특정 인사를 징계하고 몇몇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검찰개혁이든 사법개혁이든 핵심은 권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권력이 한 기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을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요구해 온 것은 특정 검사나 특정 판사를 처벌하라는 것이 아니라 권력 구조 자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 인사에게 책임을 묻되 다수 구성원이 상처 입지 않도록 하자”는 말은 결국 구조적 개혁을 개인 책임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제도의 문제를 개인의 일탈 문제로 바꾸는 순간, 개혁은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한국 정치에서 개혁이 번번이 좌절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은 언제나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신중해야 한다”, 균형이 필요하다”, 사회적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 말들은 겉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실제로는 개혁의 속도를 늦추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특히 이번 발언은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도 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은 집권세력이 되었다고 마음대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권력의 절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권력의 절제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개혁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다르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약속은 점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말로 바뀌고, 결국 개혁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혁이 어렵다는 말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울 수 있다. 혁명은 한순간에 권력을 뒤집지만, 개혁은 기존 구조를 조정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개혁이 어렵다는 사실이 개혁을 늦추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가 개혁의 피로가 아니라 개혁의 지연에 대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을 들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개혁은 늘 미뤄졌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계속 무너져 왔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신호다. 대통령이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초가삼간”이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한 메시지다. 그것은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과장되고 위험한 것으로 묘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개혁을 경계하는 언어가 아니라 개혁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언어다. 권력기관은 민주적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어떤 기관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말이다.
개혁은 특정 정치인의 선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제도는 인간의 선함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의 남용 가능성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과 견제를 핵심 원리로 삼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로 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신중론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 제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어떤 권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때, 시민들은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 조심스러움이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 구조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말이다. 한국 정치에서 개혁은 늘 말로는 강조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미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표현이 바로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신중론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권력을 나누겠다고 결단하는 용기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그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