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민족 단절 · 미 현상 유지 ·보수 반발…통일부 삼중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남북 관계를 지탱해온 ‘민족’이라는 공동의 토대가 해체의 위험에 처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선포한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단순한 수사적 위협이 아니었다. 북한은 대남 공작과 대화의 상징이었던 통일전선부를 전격 해체하고, 그 기능을 외무성 소속의 ‘제10국’으로 재편했다. 이는 남측을 더 이상 대화의 파트너나 동족이 아닌, 오직 외교와 군사력으로 상대해야 할 ‘완전한 타국’으로 규정하겠다는 단절의 선언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대북정책의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통일부 장관은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 때 부총리 직함을 부여 받기도 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아 외교·안보 정책 전반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외교부에 흡수 통합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초기에 ‘통일부’ 간판을 떼고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통일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위상이 널뛰기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좀 차원이 다르다.
북한이 단거리 지대지 탄도미사일 집속탄두 위력을 평가하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미사일총국이 전술탄도미사일 ‘화성포-11라’형 전투부(탄두) 위력평가를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2026.4.20.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곳곳에서 막히고 좌절되는 통일부의 야심찬 기획
2025년 7월 정동영 장관의 재취임 이후 통일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복원과 부처 권한의 강화를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시도해 왔다. 그러나 이 야심찬 계획들은 국내외 안보환경의 경직성과 미국의 현상유지 정책, 그리고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대부분 좌절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먼저, 통일부가 부처의 위상과 조직 권한을 강화하려던 시도가 무산되었다. 통일부는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도록 하여 외교·안보 정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했다. 또한 통일연구원을 통일부 산하로 이관하고 차관직 신설(2차관제)로 정책실행력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이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북 정책이 국가안보 전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행정 기조가 반대론의 핵심이었다.
통일부가 남북 대화의 마중물로 삼기 위해 추진했던 안보정책의 조정이 실패했다. 통일부는 2026년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혹은 대폭 축소를 강력히 주장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으나, 이는 북한의 핵 고도화에 대응한 실전 대비태세를 늦출 수 없다는 워싱턴의 강경 기조에 부딪쳤다. 특히 국방부가 ‘군사훈련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정부 내 불협화음도 노출됐다.
통일부가 추진했던 접경지역의 평화적 관리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표류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과 개발을 골자로 한 「DMZ 평화적 이용법」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북한이 DMZ 내에서 지뢰매설과 요새화 작업을 강행하면서, 법안의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부정적 여론이 발목을 잡고 있다.
통일부가 담론의 전환을 시도했던 ‘평화적 두 국가론’도 비판에 직면했다. 통일부의 입장이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사실상의 평화 상태’를 거쳐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전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하려던 시도는 논란을 불러왔다. 학계에서 헌법 제3조(영토 조항)와 제4조(평화통일 의무) 위배가 지적되었고, 보수 진영의 헌법 소원 움직임도 있었다. 특히 ‘두 국가론’의 공론화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통일을 포기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지 못했다.
통일부의 정책은 국제적인 가치 공조와 남북 특수관계 사이의 충돌을 야기했다. 통일부는 대화의 여건 조성을 위해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에 기권하거나 불참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권은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국제사회와의 공조 및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을 위해 참여해야 한다는 외교부의 참여론이 제기되었다. 결국 정부는 내부 논의 끝에 공동제안국에 참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남북, 한미, 내부에서 비롯된 통일부의 삼중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통일부의 조직 위상 격상, 대북정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핵심 과제들이 줄줄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정부 내부의 동맹파-자주파 갈등이나 통일부의 실무적 미숙함 떄문이 아니다. 그것은 북한의 노선 변화, 한미 관계의 구조적 제약, 그리고 국내적 합의 부재라는 삼중고가 겹친 결과이다.
첫째, 대북 ‘레버리지’의 부재이다. 북한이 ‘결별’을 선언하며 모든 남북대화 창구를 물리적으로 차단한 상황에서, 통일부가 제시한 유화적 정책들은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낼 지렛대가 되지 못했다. 북한의 공세적인 ‘적대적 절연’ 전략이 남측의 수세적인 ‘평화적 공존론’을 압도하면서 통일부의 제안은 일방적인 러브콜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한미 관계의 전략적 미스매치(mismatch)다. 미국은 북한 인권과 군사적 억제력을 북핵 협상의 핵심 전제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인권결의안 불참’ 주장, 그리고 「DMZ 평화적 이용법」 추진은 한미 간의 균열을 노출시켰다. 이미 공개된 내용을 언급한 것에 불과한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기밀 유출로 몰아가는 미국의 왜곡된 태도는 이러한 불신과 ‘의도적인’ 오해가 낳은 결과였다.
정동영 장관이 20일 오후 외부 행사를 마치고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에 도착, 기자들에게 미국과의 정보 공유가 일부 제한된 것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 04.20 연합뉴스
셋째, ‘보편적 가치’와 ‘특수성’의 충돌이다. 통일부는 남북관계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뒤로 미루려 했다. 하지만 이는 국내 여론의 악화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힐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결국 보편적 가치보다 특수성을 내세운 대북 정책은 국민적, 국제적 정당성을 얻지 못했다.
넷째, 부처 간 소통 및 협치 구조의 부족이다. 외교부(국제 공조), 국방부(군사 대비), 통일부(대화 및 교류) 사이의 우선순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통일부가 독자적인 평화 서사를 구축하려 할수록 ‘국제공조 약화와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타 부처와의 불협화음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정부의 단일한 대북 메시지 발신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다섯째, 헌법적 가치 논란 및 남남갈등의 야기이다. ‘평화적 두 국가론’이나 ‘인권결의안 기권’ 등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 및 보수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대북 정책이 국가전략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말았다.
제자리를 찾기 위한 전략적 대안
통일부의 위기는 북한이 민족과 평화를 거부하는 시대에, 과거의 유화적 문법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북한의 정체성 변화를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민족 서사’가 아닌 ‘보편적 규범과 힘’에 기반한 새로운 평화관리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이제 통일부는 ‘통일을 성취하는 부처’가 아니라 ‘평화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부처’로 정체성을 완전히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감성적 민족주의’에서 ‘이성적 국제규범 공존’으로 전환해야 한다. 북한이 통전부를 없애고 외무성으로 대남 기구를 재편한 것처럼, 우리 역시 북한을 국제사회의 규범 안에서 다뤄야 할 대상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성적인 남북 평화공존 모델’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또한 통일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이 실질적인 동력을 얻으려면, 북한을 단순히 특수관계가 아니라 국제법적 실체로 다루되 헌법적 특수성을 유지하는 ‘이중적 접근법’을 취했을 때 북한의 적대성을 실질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법적, 논리적 모델이 성립할 수 있다.
다음으로, 북한 인권을 핵심적 외교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인권은 남북 대화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국제규범의 틀로 끌어내릴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는 북한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 신뢰를 확보하는 지름길이자,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이 가진 반평화성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공존의 길로 이끄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끝으로, 국제정세 인식과 안보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통일부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방·외교 부처에 버금가는 냉철한 국제정세 인식과 안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국제정세의 흐름이 ‘규범 기반의 질서’에서 ‘힘에 의한 질서’로 전환되는 현실을 직시해 대북 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부가 NSC 내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의 새로운 존재 이유: 평화의 구조화, 북한의 정상화
통일부가 추진했던 핵심 사업과 정책이 좌절된 원인은 상대방(북한)의 거부, 동맹(미국)의 규범 강화, 내부(헌법/여론)의 경직성이라는 세 가지 거대 변수가 움직일 수 있는 정책 공간을 극도로 제약했기 때문이다. 향후 통일부의 움직임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민족적 감성보다는 국제적 규범과 힘을 고려한 냉철한 국익 관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통일부가 직면한 위기는 ‘민족 중심의 통일 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국가 중심의 안보 담론’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겪는 불가피한 성장통이다. 이제 통일부는 막연히 ‘평화공존을 추진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부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구조화하며, 그 과정에서 북한의 정상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북한이 민족의 연을 끊고 거대한 장벽을 쌓을 때, 우리는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더 높고 견고한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사다리는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라 냉철한 정보력, 인류 보편의 가치, 그리고 범정부적 안보 역량이라는 단단한 재료로 설계되어야 한다. 통일부가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전략적 평화 관리자’이자 ‘북한 정상화의 설계자’로 거듭날 때, 현재의 진통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값진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