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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3·1혁명’과 ‘동양 평화론’ … 격변기 이재명의 선택

‘3·1혁명’과 ‘동양 평화론’ … 격변기 이재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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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중요한 시험의 채점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험생 같은 심정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제107주년 3·1절 기념사를 기다렸습니다. 이 기념사가 짊어질 역사적 무게와 현실적 함의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역사 복원의 과제입니다. 전 대통령 윤석열이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3·1절 기념사는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3·1운동의 정신을 ‘자유’로 포장한 이념 외교의 장식품으로 뒤틀고, 가혹한 식민 지배를 자행한 일본제국주의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습니다. 심지어 3·1운동을 ‘만세운동’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그 역사적 웅혼함을 스스로 깎아내렸습니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대통령이 이 훼손된 역사를 어떻게 온전히 복원할 것인가가 첫 번째 관심사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6.3.1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둘째, 대일정책의 향방입니다. 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일본 총리와 여섯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과거사의 무거운 짐보다 미래 협력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는 실용 외교 노선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과거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은 뒷전인 채 무기 수출 완화, 비핵 3원칙 수정을 넘어 평화헌법 개정까지 내달릴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실용과 원칙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이 대통령이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북쪽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제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권력 기반을 재정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반통일 적대적 두 국가론’을 대남 전략 기조로 재확인하며, 이 대통령의 거듭된 유화 제스처에 냉혹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여기에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제거한 미국의 ‘참수 작전’까지 더해져 세계 정세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반평화의 역풍’ 속에서 이 대통령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역사의 복원: ‘만세운동’에서 ‘혁명’으로 기념사에서 단연 눈을 사로잡은 대목은 3·1운동을 ‘3·1혁명’으로 명명한 것입니다. 무려 열 번이나 이 표현을 썼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3·1운동을 혁명으로 선언한 것은 헌정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만세운동’으로 격하시켰던 역사를 당당히 복원한 사건입니다. 혁명이란 말은 가볍지 않습니다.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낡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려는 인간 의지의 총체적 분출을 가리킵니다. 이 대통령은 이 표현으로 3·1정신이 대한민국 국민주권의 원형임을 선명하게 새겨넣었습니다. 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국민주권의 빛을 밝혀 온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라는 구절은, 1919년 거리를 가득 메웠던 함성이 오늘의 광장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웅변합니다. 숨 고르기 전략: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이번 기념사는 얼핏 기존 대외정책을 되풀이한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새로운 대북·대일 제안을 공세적으로 던지는 대신 숨을 고르는 쪽을 택했습니다. 총선 압승한 다카이치 총리의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돌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습 작전이 일으킨 반평화의 역풍을 정면 돌파하기보다, 그 기세를 흘려보내며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9차대회 기념 열병식 주석단에서 열병종대 행진을 지켜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6.2.26 연합뉴스 그러나 그 안에 중대한 새 화두를 넌지시 박아놨습니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해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이 그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개 석상에서 이 표현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식민·분단·전쟁의 유산인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평화와 공동 번영의 한반도’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념사의 대북·대일 정책의 언급은 모두 이런 전략적 지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가 먼저: 북과 일본을 향한 인내의 외교 이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정책을 ‘서투른 기만극’이라 폄훼하며 체제 붕괴를 의심하는 김 위원장을 향해, 북의 체제를 존중하고 적대행위를 삼가며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대북 3원칙을 거듭 천명했습니다. 특히 애초 배포한 기념사 원고에 없었던 문구를 현장에서 추가하며 무인기 침투 사건을 이 정부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 벌어진 범죄행위”이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로 규정했습니다. 평화를 향한 진심을 전하려 한 것입니다. 북쪽의 냉담하고 완강한 거부에도 굴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의 손을 거두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때로 가장 용기 있는 전략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대일정책에서도 이 대통령은 직접적인 과거사 반성 촉구 대신 우회적이되 묵직한 메시지를 선택했습니다. 과거를 직시하며 현재의 과제를 함께 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면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열기 위해 일본 정부도 호응해 주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당시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 2025.10.28. AP 연합뉴스 이 문장은 온화하지만 무르지 않습니다. 협력의 문은 열어두되 열쇠는 일본 스스로 쥐고 있다는 조건부 메시지입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동북아의 화합’을 역설하며 한·중·일 3국의 소통과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이자 동북아의 핵심 행위자인 중국을 향해 직설을 피하면서도 협력 의지를 에둘러 전했습니다. 회심의 카드 ‘동양 평화론’: 말이 아닌 성과로 엮어내야 이 대통령이 ‘격변의 시기’를 거론하며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을 불러낸 것은 이 기념사의 백미입니다. 안 의사는 1910년 순국 직전, 동아시아 각국이 패권 다툼을 멈추고 호혜와 연대로 공동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대한 구상을 옥중에서 집필했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프식 힘의 논리가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지금, 115년 전 그 사상은 낡은 유물이 아니라 절박한 현재의 언어로 되살려냈습니다. 다카이치의 팽창주의, 트럼프의 힘 중시 외교, 김정은의 적대적 고립주의라는 세 개의 거센 파도 앞에서 이 대통령이 택한 항법은 동양 평화론의 현대적 계승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격변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화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 문장은 제107주년 3·1절 기념사의 주제이자 이재명 외교의 나침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킬 뿐, 스스로 걷지는 못합니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정전 체제의 평화 체제 전환이라는 새 화두를 던진 이상, 이제는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 경로와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찬란한 언어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질 때, 비로소 3·1혁명의 정신은 오늘의 역사 속에 다시 한번 힘차게 숨을 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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