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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적 의 아들로 대법원장… 인혁당 사법살인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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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쳐 읽는다. 민복기(閔復基, 1913~2007) 항목을 읽으며 한 가지 사실에 한참 멍해졌다. 이 사람은 퇴임 후에 이렇게 실토했다. 박정희(1917~1979)가 사법부를 군의 법무감실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 으며, 제사상의 대추·밤처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올려놓는 것으로 여겼다고. 그 사법부의 수장이 바로 자신이었다. 독재자가 자신을 제사상의 대추·밤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10년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여덟 명을 사법살인으로 보냈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민복기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가 보인다. 노론에서 친일로, 친일에서 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세력의 계보가 민복기 한 사람의 생애 안에 압축되어 있다.   민복기(나무위키) 경술국적 의 아들, 시작부터 달랐다 민복기는 1913년 12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출생이 아니었다. 아버지 민병석(1858~1940)은 1910년 8월 강제 병합조약 체결을 주도한 매국노 여덟 명 중 하나, 이른바 경술 8적 의 한 명이다.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는 사돈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합병의 대가로 일본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거금 10만 원을 받았다. 친일파로 지탄받던 윤치호마저 민병석을 가리켜 이 비열한 매국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어느 사전에도 나오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민복기는 아버지의 부와 지위에 힘입어 일본인만 다니던 경성중학교를 나왔다. 조선인 학생은 한둘에 불과했다.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와 1937년 일제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이와모토 후쿠키(岩本復基). 조선총독부 판사가 됐고, 독립운동가를 재판하는 법정에 배석판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민복기는 회고록에서 특히 독립운동 사건에는 얼씬도 안했다 고 썼다. 독립운동가 이초생의 공판조서와 비밀결사 상록회의 판결문에는 민복기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회고록에서 그는 대학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 가정환경 덕분에 대학 생활을 비교적 여유 있고 멋있게 보냈다. 중학 시절부터 마작은 내가 가장 즐기는 도락이었고, 카페(지금의 룸살롱)에도 많이 출입했다.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폐허가 됐을 때는 승마를 즐겼고, 1950년대 중반부터는 골프를 쳤으며 1960년대부터는 주말에는 어김 없이 골프장에 나갔다. 마작, 카페, 승마, 골프. 그의 취미 목록이 그의 계급을 말해준다.   민복기 부친이자 국가공인 친일파로 이름 올린 민병석(오마이포토) 세계사 속의 동류, 좋은 집안의 법률가 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인물이 떠오른다. 나치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다. 당대 최고의 법학자로 평가받았으나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열렬하게 지지했다. 주권자란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 라는 그의 이론은 히틀러(1889~1945)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법철학적 토대가 됐다. 능력이 뛰어난 법률가가 왜 독재에 복무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슈미트는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심문을 받았으나 기소는 면했다. 그 후로도 40년을 더 살았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는 법학교수 출신으로 스탈린(1878~1953) 치하에서 대숙청 재판을 총지휘했다.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이론까지 만들어냈다. 자백은 증거의 여왕 이라는 그의 법리는 조작된 재판에 법률적 권위를 입혔다. 민복기가 인혁당 사건에서 한 일과 닮았다.   1929년의 카를 슈미트(위키피디아) 1964년 인혁당, 수사검사 전원의 반대를 찍어눌렀다 민복기 반헌법 행위의 첫 번째 정점은 1964년 법무부장관 시절이다.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제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서, 담당 수사검사 전원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 불가 라는 의견을 냈다. 검사들이 기소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민복기는 이를 찍어 눌렀다. 억지로 기소하게 하여 중앙정보부의 사건조작을 검찰이 법률적으로 포장·은폐하도록 지휘했다. 검사들의 양심을 법무부장관이 밟아버린 것이다. 같은 해 박정희가 연루된 삼성재벌의 한국비료 밀수사건(1966년)도 그의 손을 거쳐 축소·은폐됐다.   민복기와 박정희(민족문제연구소) 1971년 사법파동, 법관들의 외침을 외면했다 1971년, 법관들이 반란에 가까운 저항을 했다.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집단으로 항의성명을 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법원장 민복기는 어떻게 했는가. 외면했다. 법관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대신 권력에 굴복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할 최고책임자가 사법부 독립을 포기한 것이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유신 친위쿠데타를 벌여 국회를 해산하고 헌정을 중단시켰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법원장 민복기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획기적인 헌법개정은 10월유신에 기인한 유신헌법으로의 개정이었다. 유신체제는 가장 좋은 제도이다. 제사상의 대추·밤은 자신이 제물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민복기 前대법원장 별세…영욕 얼룩진 삶 경향신문 1975년 4월 8일, 사법살인의 재판장 민복기 반헌법 행위의 두 번째 정점이자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장면이 있다. 1975년 4월 8일,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 상고심이다. 중앙정보부와 특별군법회의가 조작한 이 사건에서 고문과 허위자백 사실, 위법한 공판 절차, 심지어 공판기록의 변조까지 명확했다. 대법원장 민복기는 상고를 기각했다. 도예종, 서도원 등 8명이 사형판결을 받았고, 선고 18시간 만에 집행됐다. 국제법학자위원회는 사법 역사상 최악의 사법살인 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2002년부터 시작된 재심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7년이 걸렸다. 민복기는 2007년 7월 13일 93세로 사망했다. 사과하지 않았다.   제6대 대법원장으로 임명 제청된 민복기 1968.10.13(네이버 블로그)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는 나치정권에 부역한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이름이 법학 교재에 등장할 때마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그의 이론적 업적을 인정하더라도 나치 부역의 역사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영국학계의 원칙이다. 뛰어난 법률가가 독재에 복무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며 민복기를 떠올렸다. 사법부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법원장이 권력에 굴복할 때 누가 죽어나가는지를 민복기의 생애가 보여준다. 그는 노론 집안에서 태어나 친일로 자랐고 복무하다 93세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서명 하나로 사형대에 오른 여덟 명은 수십 년 뒤에야 굴레를 벗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민복기를 노론-친일-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세력의 맥을 상징하는 인물 로 규정했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조의 이야기다. 그 구조가 지금도 살아 있는지 묻는 것이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민복기와 박정희(민족문제연구소)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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