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참상 세계에 알리는 데 한몫 패리스 하비 별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패리스 하비 전 한국인권을 위한 북미연맹 사무국장이 지난 2016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민주주의 국제연대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20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0년 5월의 광주는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서울의 주요 일간지 기자들마저 광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시민군 지도부는 매일 소식지를 발행하고 있었지만 외부로 소식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때 큰 힘이 된 것이 한국인권을 위한 북미연맹 (NACHRK)이었다. 광주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핵심적인 통로가 됐다. 북미연맹이 발간한 소식지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광주의 상황이 북미와 유럽 등으로 신속히 전파됐다.
또 광주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뒤에는 미국인 의사를 포함한 조사팀이 파견돼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미 국무부에 전달돼 진상 규명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단체를 만들어 한국 민주화와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데 힘썼던 미국의 인권운동가 패리스 하비(Pharis Harvey) 목사가 지난 16일 별세했다고 연합뉴스가 지난 20일 보도했다. 1935년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캘리포니아의 요양원에서 투병 중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57년 감리교 단기선교사로 일본 오키나와에 파견된 이후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인권운동에 이바지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고인의 삶은 북미연맹과 연결돼 있다. 이 단체는 1975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약한 기독교 계열의 인권단체로, 1970년대와 1980년대 해외에서 활동한 외국인 중심 인권단체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컸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9년 한국 방문 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난 그는 이 단체 실무자를 맡아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로 실상이 감춰져 있던 한국 인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 해 3월 북미연맹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했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 37명이 이를 발표했다. 인권을 탄압하는 박정희 정권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6월 30일 두 나라 정상회담이 열릴 때 미국 정부는 하비 목사 등으로부터 한국 인권상황을 청취했고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범 명단을 건네 받은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패리스 하비 목사가 활동한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맹’(NACHRK)이 1980년 6월 비밀리에 작성한 5·18 조사보고서. 최용주 전 5·18조사위 1과장 제공
신군부가 유혈 진압에 나서기 전날인 1980년 5월 28일에는 다른 단체와 함께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 카터 행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광주 학살의 미국 책임과 역할을 따진 첫 성명서였다.
계엄군이 진압한 지 한 달이 흐른 6월 22∼28일에는 미국인 의사 2명을 비밀리에 한국에 파견해 진상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만들어 미 국무부에 제출했다.
고인은 1981년 1월 레이건 행정부가 전두환 초청 계획을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미국 하원 국제관계 및 인권 소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광주 학살과 삼청교육대, 노동조합과 언론 탄압, 고문, 불법 감금 등을 알리며 미국 국무부가 전두환 신군부의 인권 유린을 안일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태우 정권 때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입국 금지를 당했다.
같은 달 ‘5·18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는 윤한봉이 밀항으로 미국 워싱턴주에 도착하자 하비 목사는 시애틀의 김동건, 김진숙 부부를 급히 보내 보호하게 했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연락해 망명 절차를 밟아달라고 청했다.
하비 목사 등의 활동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광범위하게 퍼진 반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와 정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조로 전환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정부는 2020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고인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5·18 해외 기록물을 연구하는 최용주 박사는 하비 목사에 대해 한국 민주화 과정에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창구 역할을 했던 인물 이라며 당시 군사정권 아래 외부로의 정보가 거의 차단된 상황에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 평가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1과장을 지낸 최 박사는 이어 인권운동 분야에서 평생을 헌신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만큼 그에 걸맞은 예우와 재평가가 필요하다 며 특히 5·18과 관련한 국제 연대의 역사 속에서 그의 역할은 더 적극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5·18기념재단은 21일 성명을 내어 5·18 당시 계엄군의 유혈 진압으로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될 위기에 처했을 때 고인의 노력으로 광주는 고립된 섬이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민주주의의 성지로 설 수 있었다”며 하비 목사께서 보여주신 인류애와 정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는 5·18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