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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능력 결핍 드러낸 SBS 노조… 오보 사과 요청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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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연루설 관련 변호사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지고 대통령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방송사에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SBS 노조가 성명서를 내면서 반발했다. 대통령에 대해 ‘언론 길들이기’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규탄하는 이런 풍경은 지난 몇 년간 한국 언론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권력과 언론이 맞서고 긴장을 빚는 모습은 그 전의 정권 때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SBS 노조의 성명이 내세운 저항의 말은 얼핏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언론의 자세랄 수 있다.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원칙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과 언론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동안 없었던 것이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것, 그것이 언론 환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SBS 노조의 행태는 언론에 필요한 당당함, 이를 테면 언론 정신 을 보여주는 것이랄 수 있다. 상당한 기간 동안 한국 언론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모습이 이제 회복되고 있는 듯도 하다. 이는 윤석열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는 기사들이 몇몇 언론에서 적잖게 보이는 것과도 겹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기사들이다. 뒤늦게라도 이 같은 폭로와 고발이 나오는 건 폄하할 일은 아니다. 윤석열 권력의 실상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냐는 비판을 들을 법도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차치하기로 하자.   SBS 방송국 건물 모습. SBS 홈페이지 갈무리 다만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있다. 그 같은 환경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라는 것이다. 불법 계엄을 막아낸 시민들의 힘과 국회의 기민한 대응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론이 그 변화를 이뤄낸 주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언론자유는 눈에 띄게 후퇴했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 급락이라는 평가가 그것을 수치로 보여주었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퇴행하며 국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언론에는 그 같은 고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국 언론 일부의 수난과 고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주류 언론은 그런 환경에 불편해하고 고통을 받기보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쪽을 택했다. 그 고통과 억압의 시간을 뒤집어놓은 것은 언론이 아니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었고, 밤새 계엄을 막아낸 국회였다. 지금의 열린 환경은 그 시민적 투쟁의 산물이다. 언론은 그 변화의 수혜자이지, 변화의 주역이 아닌 것이다. 언론은 국민들이 만들어 준 언론 자유의 회복에 상당 부분 얹혀 수혜를 입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우선 필요한 질문의 하나가 그것이다. 그 변화가 어떤 힘으로, 어떻게 이뤄졌든 간에 이제 언론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다. 이 과제는 단지 언론만의 몫이 아니다. 공기(公器)라는 말처럼 사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권력도 언론도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한 노력에서 ‘동역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의 노력에서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기자신에 대해 바로 보는 것이다. 언론 역시 우선 있어야 할 것은 언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더욱 진지한 성찰이다.  SBS 노조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직위에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 것이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왜곡된 방송에 대해 항변을 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에 대해 그것이 대통령으로서냐 한 개인으로서냐에서 어느 한쪽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자 개인이라는 두 측면이 모두 있지만 최소한 이 사안에서는 그보다는 피해자 라는 측면에서 먼저 봐야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 조폭 연루설을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18년 7월 21일자 권력과 조폭 - 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방송의 한 장면. 진행자인 김상중 씨가 이재명 변호사 이름이 등장해 당혹스럽다 며 한숨을 쉬고 머리를 짚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다시 보기 화면 갈무리 그보다도 지적할 것은 SBS 노조의 ‘대통령’ 말이 드러내는 것은 언론이 본질적으로 비(非)권력적 존재이며 약자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말에는 국가 권력 앞에서 언론은 약자라는 점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는 고정돼 있지 않다. 대통령이 하나의 권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권력 의 원천은 다양하다. 대통령에 대해 자신의 권력자로서의 위치를 잊지 말라고 요구하는 SBS 노조가 그 자신에게 동시에, 또는 상대를 향하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할 질문도 그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권력인가 아닌가, 강자인가 약자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어야 마땅하다. 자신이 갖는 권력에 대해, 스스로 그 권력의 행사에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해 먼저 물었어야 했다. 정상적 방송사의 정상적 노조였다면 먼저 회사의 반성과 성찰부터 요구하고 스스로부터 내부 감시가 부실했음을 돌아봤을 것이다는 적잖은 시민들의 지적에 수긍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백만 시청자에게 특정 인물에 대한 시각과 인식을 만들어내는 방송을 제작하는 이로서 갖는 권력,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닐 때, 그 피해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쌓이게 하는 권력의 크기에 대해, SBS 노조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는가를 시민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는 상황과 국면에 따라 늘 바뀌는 법이다. 한 개인의 명예 앞에서 방송 미디어는 압도적 강자다. 피해자가 권력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라는 사실이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가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은 자신들을 향한 것이었어야 마땅했을 듯하다. 우리의 보도는 사실에 충실했는가. 내부 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는가. 그런 질문 없이 곧바로 바깥을 향해 탄압 을 외치는 것은, 언론 독립의 언어를 방패삼아 자기 책임을 피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때의 언론자유는 권력에 맞서는 것이라기보다 그 자신을 하나의 권력, 그것도 절대적 권력으로 군림시키는 것이 돼버린다.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대원칙과 전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 독립에 대해 한국 언론이 빠지는 함정은 그 독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언론 독립 은 주로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이해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광고주로부터 편집권을 지킨다는 것, 이 원칙은 물론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이 독립은 오로지 바깥의 힘으로부터의 독립만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또한, 아니 더더욱이 그 외부로터의 독립의 전제로서 자신의 선입견과 무지와 오만으로부터의 독립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이 갖는 권력을 무책임하게 행사하고 싶은 충동으로부터의 독립, 자신의 보도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자시의 조직 내부의 관행과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나태와 안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자유는 언론인의 직업적 권리에 앞서 시민 모두의 공적 자산이다. 그런 이유로, 즉 공적 자산이므로 언론인의 직업적 권리라는 점은 공적 기준에 비춰 늘 점검돼야 한다. 그래서 언론자유가 공공재라면, 그 자유의 사용 방식 역시 공적 평가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론자유의 수호를 외치면서 그 자유로 행해진 오보와 왜곡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언론자유를 단지 언론인의 자유로, 언론의 무책임에 대한 면죄부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시민들이 한국 언론에 보내는 낮은 신뢰는 단지 탄압받아서 가 아니다.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를 겨냥한 ‘조폭 연루설’은 허위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에 이재명 대통령은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무책임한 언론은 흉기보다 무섭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출처: MBC 뉴스 화면 SBS 노조는 언론을 ‘길들이기’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길들이기라는 말의 부정적 의미로서 이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권력으로부터의 길들이기에 대한 시비 이전에 SBS 노조 자신이 먼저 스스로에 대한 길들이기를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언론 독립의 필요한 조건에 대해, 언론이 갖는 권력의 크기에 대해 스스로 더욱 언론다운 언론으로 길들이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길들이기라는 말 대신에 ‘자기 규율’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듯하다. 외부의 강압에 의한 길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언론자유의 방어라면 자기규율은 그 언론자유의 전제 조건이다. 이번 사태는 어느 한 방송사의 노조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에 특히 모자란 것 중의 하나를 새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바로 반성할 수 있는 능력 이다. 반성은 반성의 의지와 함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반성의 능력의 결핍을 이번 사태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반성의 능력의 바탕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러나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 반성의 능력, 반성 능력의 바탕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한국언론에 무엇보다 먼저 요청되는 것인 듯하다.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 언론에 필요한 자기 길들이기, 자기규율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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