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주민들을 남쪽의 이집트 시나이로 몰아내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군의 잇단 폭격을 받아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바뀌었다. 한 소녀가 빈 냄비을 들고 파괴된 마을 한복판을 걷고 있다. ⒸJaber Jehad Badwa
우리는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산다오.”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구에 갈 때마다 그곳 사람들로부터 되풀이해서 들은 한탄이다. 지금껏 가자로 다섯 번 들어갔었는데, 그곳에서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 얘기는 적어도 100번은 넘게 들었다. 가자 주민들은 이동의 자유가 없다. 육지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와 8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였다.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로도 가기 어렵다. 한밤중에 몰래 장벽을 넘어가려면, 이스라엘군 경비병의 총격에 죽을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가자 해변의 지중해 푸른 바다는 어떨까. 그곳도 막혀 있다. 팔레스타인 어부는 해변에서 3해리(5.5km)를 벗어날 수 없다. 물고기 떼를 쫓아 자칫 한계선을 넘었다간, 이스라엘 해군 경비정의 총알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많은 어부들이 그렇게 죽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겐 ‘지중해’가 낭만적인 이미지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230만 가자 사람들에게는 그저 ‘막혀 있는 먼바다’일 뿐이다. 이렇듯 가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비좁은 땅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살아왔다. 쌓이는 것이라곤 유대인들을 향한 증오와 울분, 절망감이다.
그런 암울한 공기가 감돌던 2023년 10월 7일, 중동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충격을 던진 대사건이 터졌다. 이스라엘 국방군(IDF) 추산으로는 약 6000명의 무장대원이 경계선을 넘어 기습공격에 나섰다. 허를 찔린 이스라엘은 보복에 나섰고, 가자지구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가자 주민들의 하마스 지지율은 높지만, 그들이 모두 하마스 무장대원은 아니다. 그럼에도 ‘테러분자’로 몰려 죽고 다치거나 잡혀가고, 타는 목마름과 굶주림을 비롯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른바 ‘집단적 징벌’의 고통이다.
하마스 우리의 공격은 독립 위한 방어적 행위”
[지난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민족은 모든 형태의 압제와 불의, 기본권 박탈,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가자지구는 2007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으로 만든 숨 막히는 봉쇄로 말미암아 17년 넘게 고통받았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다섯 차례의 파괴적인 전쟁으로 고통받았고, 그 모두에서 이스라엘은 전쟁범죄의 당사자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계속 기다리며 무력한 유엔(UN)의 도움에 기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팔레스타인 인민과 영토, 권리, 성소를 지키기 위한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는가?]
(https://www.palestinechronicle.com/wp-content/uploads/2024/01/PDF.pdf)
위에 옮긴 글은 10.7 공격이 벌어지고 석 달 보름 뒤(2024년 1월21일) 하마스 지도부가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다.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작전’이란 이름 아래 벌였던 항쟁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문건이다. 선언문 제목은 ‘우리의 서사... 알아크사 홍수작전’(Our Narrative… Operation Al-Aqsa Flood). ‘알아크사’는 잘 알려졌듯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이름으로, 사우디의 메디나, 메카와 더불어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다(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의 이곳 언덕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하마스 선언문의 요점을 간추리자면, ‘알아크사 홍수작전’은 ▲‘팔레스타인 민족과 대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모든 음모에 맞서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자 정상적인 대응’이었고,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되찾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장낸다는 틀에서, 그리고 전세계 모든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해방과 독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방어적 행위’였으며 ▲10월 7일 하마스 대원들이 저질렀다는 ‘집단 강간’은 증거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하마스 대원에게 목이 잘린 영아 40명’은 거짓말이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의 집단학살을 부채질하는 명분을 쌓으려 그런 거짓 선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억압 통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울분과 저항을 부르기 마련이다. 2000년 11월 가자지구에서 치러진 하마스 대원의 장례식. 자살폭탄공격을 벌이고 죽었기에 관 안에 시신이 없고 하마스 깃발로 채웠다. Ⓒ김재명
하마스의 전쟁범죄 논란
하마스 지도부가 10.7 공격 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내다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기습 작전을 벌이기로 결정한 데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풀이된다. 이스라엘의 오랜 억압에 맞선다는 측면과 더불어 중동의 지정학적 구도의 미묘한 변화 흐름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 아래 아브라함 협정(2020년 9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을 맺은 데 이어, 내친김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친미 중동 독재국가들과의 유착관계를 다지고 있었다. 10.7 기습은 그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정상화 얘기는 쑥 들어갔다.
문제는 전쟁범죄 논란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로마 규약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고 못 박는다. 미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HRW)는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와 박해라는 반인도적 범죄를 포함하여 모든 당사자의 불법적 공격과 범죄에 대해 수십 년간 면책이 용인되어 온 결과”라고 이스라엘을 책망하면서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 및 인질 납치와 구금이 반인도적 범죄라고 결론지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나섰다. 2024년 5월 ICC 카림 칸 검사는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카타르에 망명 중이던 이스마일 하니예(하마스 정치위원장), 가자지구의 야히야 신와르(가자지구 하마스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하마스의 무장조직인 알카삼 여단 총사령관) 등 3명이다. 이들에게는 ▲반인도 범죄로서의 살해와 절멸, ▲인질 납치 및 감금, 성폭행과 고문 등의 혐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24년 11월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데이프 한 사람뿐이다. 하니예와 신와르, 두 사람은 영장발부에 앞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졌다. 하니예는 놀랍게도 이란의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귀빈숙소에서 표적 암살(2024년 7월 31일)됐고, 신와르는 가자에서의 전투 중 사살됐다(2024년 10월 16일). 데이프도 그 뒤 이스라엘군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네타냐후를 구해준 이스라엘판 9.11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과정에서 그곳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무단(武斷) 통치 아래 놓인 피지배자로 겪는 차별과 억압을 똑똑이 지켜봤던 필자로서는 위의 하마스 선언문에 담긴 투쟁 의지와 울분이 어느 정도 높은지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10.7 기습 과정에서 비무장 유대인들을 숨지게 하고 인질로 끌고 가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비판에서 하마스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그 뒤 2년 반 동안의 진행과정을 보면, 전쟁범죄로 비롯된 민간인 희생 규모는 알려진 바처럼 팔레스타인 쪽이 몇십 곱절로 크다.
하마스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전쟁범죄자로 찍혀 2024년 11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그는 이미 2019년부터 뇌물수수와 사기·배임 혐의로 이스라엘 검찰로부터 기소됐고, 이스라엘 법정에 오락가락 하던 처지다. 적어도 10.7 하마스 기습공격 전까진 그랬다. 사법처리 위기를 맞은 네타냐후는 하마스의 기습을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네타냐후를 다름 아닌 하마스가 구해줬다”는 얘기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예부터 탐욕스런 집권자들은 전쟁을 기회로 삼아왔다. 네타냐후가 딱 그렇다. 개인 비리를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고 ‘아랍 테러분자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는 전쟁지도자’로 거듭났다. 그의 목표는 아랍인 절멸이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이 아니다. 네타냐후의 꿈은 가자지구는 물론 서안지구에서 ‘야생짐승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들만의 영토로 굳히는 것이다. 이른바 대(大)이스라엘의 꿈이다. 하마스의 10.7 기습은 역설적으로 그의 꿈을 부분적으로 이룰 기회로 다가왔다. 이와 관련, 가자지구의 인종청소를 다룬 이스라엘 정보부의 기밀문서를 보자.
정보부 기밀문서, 시나이로 강제 이주”
이스라엘군이 전쟁 초기에 가자지구 남북을 가릴 것 없이 골고루 공습을 했다. 하지만 곧 가자 북부의 인구 밀집지대로 공격이 집중됐다. 백린탄을 마구잡이로 쏴대고 건물들을 폭격하면서 피란민들을 가자 남쪽으로 몰아댔다. 여기엔 그 나름 노림수가 깔려 있었다는 의혹이 따른다. 1차적으론 가자 남쪽 라파 지역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다음, 이집트 접경 시나이 사막으로 추방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인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꾀하는 기밀 문서가 이스라엘 정부 안에서 실제로 검토됐다는 것이다.
2023년 10.7 하마스의 기습 3주 뒤(2023년 10월 28일), 팔레스타인 점령과 억압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왔던 이스라엘의 진보 성향 언론매체인 는 이스라엘 정보부가 만든 기밀 문서를 폭로해 큰 논란을 불렀다. 이틀 뒤 이스라엘의 유력 언론사인 를 비롯한 몇몇 매체에서 문서 내용이 사실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또 다른 진보 성향 언론매체 에서 히브리어로 쓰인 기밀문서 전문을 영어로 번역해 실었다. 문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스라엘 국가는 하마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어난 ‘철의 검(Iron Swords)’ 전쟁을 고려하여 가자 지구 안의 민간인 현실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와야 하므로, 하마스 정권 전복과 병행하여 추진해야 할 가자 지구 민간인에 관한 정치적 목표를 결정해야 한다.]
(https://www.972mag.com/intelligence-ministry-gaza-population-transfer/)
이집트 시나이 사막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다는 시나리오를 담은 이스라엘 정보부 기밀문서는 큰 파문을 불렀다. 기밀문서를 폭로하고 문서 전문을 실은 +972 기사 캡쳐 화면
이 기밀문서는 가자지구의 민간인 처리에 관한 이스라엘 정치 지도부의 정책으로 세 가지 가능한 옵션을 내놓았다. ▲옵션 A: 가자지구에 주민이 잔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통치를 도입하는 방안 ▲옵션 B: 가자지구에 주민이 잔류하면서 현지 아랍 자치정부가 등장하는 방안 ▲옵션 C: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시나이반도로 ‘대피’시키는 방안이다. 문서는 옵션 A와 B는 필요한 억지 효과를 내지 못하며, 특히 옵션 A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지도 못할 것이기에 가장 위험한 선택지라 했다. 따라서 가자 민간인들을 시나이 사막으로 몰아내는 옵션 C야말로 ‘이스라엘에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적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 제안했다.
문서는 여러 단계로 이뤄진 이동 계획을 담았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이 가자지구 북부에 집중되는 동안 주민들을 ‘남쪽으로 대피’하도록 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들어가 북쪽에서 남쪽까지 가자지구 전체를 점령하고 지하 벙커에 숨은 ‘하마스 전투원을 소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자지구 점령과 아울러 이집트 영토로 추방된 가자지구 주민들의 귀환을 영구적으로 허용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문서에서 가장 교활하게 느껴지는 대목은 가자 지구 주민들이 ‘이 계획에 동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헌신적인 캠페인을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캠페인이라니,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백린탄 공습을 비롯한 무자비한 군사작전을 통해 민간인 피해와 공포감을 극대화함으로써 시나이 쪽으로 피란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가자 주민들이 여기도록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이집트를 상대로 설득 로비를 펴야 한다는 뜻이다.
10쪽 분량의 이 문서는 맨 앞장에 이스라엘 정보부 로고가 새겨져 있다. 정보부 정책국에서 10.7 하마스 기습 6일 뒤인 2023년 10월 13일자로 작성해 이스라엘의 여러 안보 관련 기관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문서를 작성한 정보부는 이스라엘 정부의 한 부처이긴 하지만,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정보부’라는 이름이 풍기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달리 모사드나 신베트와는 관련이 없고, 독립적으로 연구 및 정책 보고서를 작성해왔다.
이스라엘 정부가 정보부 문서가 내놓은 방안을 ‘전쟁 정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논리적인 가자 해결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 무렵 벌어진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기밀문서 내용과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백린탄 대량 살포와 주거지 건물 폭파를 통해 주민들을 공황상태에 빠트리고 가자 남부 쪽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문서가 바깥으로 새나가 논란이 되자, 리쿠드당 소속의 길라 감리엘 정보부 장관(여성)은 전투 지역에서 인구가 대량으로 이주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 라는 억지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진다.
이집트 독재자, 네게브 사막으로...”
위 기밀문서의 한계는 시나이 사막이 이집트 영토라는 점이다. 이집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탁상공론이고 물거품이다.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펴온 미국조차도 가자 난민들이 이집트로 쫓겨갈 경우 불어닥칠 혼란과 아랍권의 후폭풍을 꼽으며 반대하고 나섰다. 미 민주당 소속의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2023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28차 당사국총회(COP28, 두바이)에서 기자들을 불러모아 ‘가자 5원칙’(강제이주 금지, 가자 영토 축소 금지, 재점령 금지, 봉쇄회귀 금지, 하마스 통치 금지)을 내걸면서, 가자 주민의 강제이주(forcible dispalcement)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결론적으로, 실제 상황은 다행히도 위 기밀문서의 각본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보다 결정적으로 시나이 사막으로의 대량이주를 막은 것은 이집트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었다. 엘시시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9일째이던 10월 18일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엘시시는 이어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네게브로 이주할 수도 있다”는 능청맞은, 이스라엘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안을 내놓았다. 그가 말하는 이스라엘 남부의 사막 네게브 한 가운데엔 섬유회사로 위장한 디모나 핵무기 제조공장이 있다. 엘시시가 비꼬듯 말한 대로 네게브로 가자지구의 대량난민이 몰려든다는 것은 이스라엘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2004년 은빛 대형 돔이 인상적인 디모나 핵공장의 주변 철책선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고 둘러본 적 있다. 최저속도 규정상 시속 7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도로다. 눈치 없이 어슬렁거리다간 스파이 혐의로 잡혀들어갈 수도 있는 삼엄한 보안구역이다. 네게브 사막은 전갈 같은 독성 곤충이나 살 법한 척박하기 짝이 없는 불모지대다.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죽음의 공장’이 네게브의 삭막한 풍경과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엘시시는 ‘아랍의 봄바람’(2011)으로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끝장난 뒤 들어선 무슬림형제단 정부를 2013년 탱크로 밀어냈다. 머리 회전이 빠른 1인 권력자 엘시시는 친미 노선을 걸으면서 이스라엘과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바라는 대로) 230만 가자 난민이 이집트 영토로 밀려들 경우 생길 혼란과 부담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이집트는 전쟁 초기부터 이집트-가자 접경지대에 설치된 라파 국경검문소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들은 일찍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아랍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영토를 넓힌다는 꿈을 꿔왔다. 그 꿈의 이름은 흔히 ‘대(大)이스라엘’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가자 상황을 보면, 일단은 시나이 사막으로 몰아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종청소 차원에서 가자 주민들을 죽이고 괴롭히고 빈곤선 아래로 떨어뜨렸다. 또한 ‘노란선(yellow line)’을 긋고 가자지구의 58%를 차지했으니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42%로 쪼그라든 땅 안에서 230만 가자 사람들의 고난은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언제 또 상황이 악화돼 시나이 사막으로 내몰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광신적인 유대인 정착민들이 벌써 가자지구의 이스라엘군 점령지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유대인들이 ‘유대 사마리아’라고 부르는 서안지구에선 이스라엘군의 비호 아래 유대인 정착민들이 마구잡이 폭력으로 현지 선주민들을 쫓아내는 중이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에레츠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 전체)을 자칭 ‘빛의 민족’인 유대인들이 다스리는 대이스라엘로 바꾼다는 야무진 꿈을 버리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