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정답은 없다, 틀린 것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0.1초 만에 오류 없는 정답을 내놓고, 효율과 속도가 시대의 정의가 된 오늘날, 역설적으로 우리는 유례없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은 우리 삶을 빽빽한 규격 속에 가두고 있고, 조금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공포가 일상을 지배한다. 이러한 ‘정답 강박의 시대’를 향해, 한 재즈 뮤지션이 틀려도 좋다고 파격적인 선언을 한다. 민들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재즈 보컬리스트 임미성의 신간 는 실수가 실패가 아닌 ‘멋진 변주의 시작’임을 역설하며, 우리를 악보 밖의 자유로 초대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재즈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의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재즈에서 틀린 음은 없다. 그저 낯선 장소에 놓였을 뿐이다.” 저자는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공연 중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마일즈 데이비스가 즉흥적으로 받아내 ‘가장 놀라운 화음’으로 바꾸어 놓았던 일화를 소개한다.
재즈의 세계에서 실수는 지워야 할 오답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저자는 이 재즈의 문법을 우리 삶으로 가져온다.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실수와 오답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고착된 일상을 깨뜨리고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라는 신비로운 신호이자, 삶의 지평이 확장되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틀려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을 넘어, 그 불협화음조차 기꺼이 즐길 때 삶이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응원한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재즈의 역사나 명반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 즉 ‘재즈적 시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해진 악보를 넘어 낯선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타인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실수와 오류를 삶의 자연스러운 변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래서 악보 위의 ‘빈 마디’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공백은 불안을 야기하는 결핍의 공간이지만, 재즈 연주자에게 빈 마디는 정해진 멜로디를 벗어나 자신만의 서사를 채워 넣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 유토피아다.
저자는 이를 ‘삶이라는 텅 빈 서판(Tabula Rasa)’에 비유한다. 우리 삶의 결핍과 공백 또한 황급히 메워야 할 구멍이 아니라, 창의성이 피어날 여백이라는 것이다. 색소폰 연주자 조슈아 레드맨의 말을 빌려 재즈는 연약함에 대한 음악”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나는 재즈에 대해 이처럼 멋진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연약함‘에 대한 음악이라니! 빈 마디를 직면해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연약함은 숙명과도 같다. 빈 마디는 그러나 비워진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텅 빈 카오스의 공간은 연주자들에게 있어 결정적 자유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상상의 유토피아다.
텅 비어 있기도 하고, 그러나 비어 있는 만큼 어떤 충만보다 꽉 채워진 카오스는 저자가 바흐 음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통제된 열정과 해방된 감정의 균형이며, 재즈에서 저자가 독자들과 함께 찾고자 하는 질서(구조)와 감정(선율)의 균형이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타인의 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일 때, 즉 ‘경청’이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즉흥의 미학이 완성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의 독창적인 ‘재즈적 사유’는 음악과 음악 밖의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저자의 시선이 닿으면 식탁 위의 명태전도, 난해한 철학책도 흥겨운 재즈가 된다. 가령 명태가 건조 방식에 따라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노가리로 이름을 바꾸며 변신하는 과정에서 재즈의 ‘변주(Variation)’를 읽어낸다. 하나의 식재료가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질감으로 재탄생하듯 하나의 테마가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수만 가지 곡으로 변하는 재즈의 원리를 밥상 위에서 포착해 낸 것이다.
이같은 통찰은 시공간을 넘어 역사속 인물들에게로 이어진다. 기존 문법을 파괴한 니체의 글쓰기에서는 자유분방한 재즈의 운율을, 점잖은 양반 사회에서 파격적인 문체와 해학으로 당대를 풍자했던 연암 박지원의 에서는 비밥(Bebop)의 저항정신을 발견한다. 또한 몬드리안의 원색과 직선에서 뜨거운 재즈 리듬을 찾아내고, 840번이나 같은 멜로디를 반복해야 하는 에릭 사티의 에서는 지루함을 넘어 몰입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미학을 읽어낸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점프컷으로 영화의 관습을 깬 장 뤽 고다르의 누벨바그 영화에서 정해진 형식을 거부하는 재즈의 실험정신을 발견한다.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술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모든 일상의 순간이, 모든 사유의 흐름이 실은 ‘재즈’라는 하나의 거대한 리듬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엇박자(Off-beat)의 미학’을 제안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박자에 맞춰 똑같은 속도로 행진하기를 거부하고, 나만의 호흡과 리듬을 찾는 것이야말로 주체적인 삶의 우아함이자 숭고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감시 속에서도 스윙 댄스를 추었던 ‘스윙 유겐트’의 사례처럼, 엇박자의 스텝은 억압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자유로운 발걸음이 된다.
저자는 몸의 긴장을 풀고 고유의 리듬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알렉산더 테크닉 을 제시하며 삶에서도 힘을 빼고 잠시 멈출 때 비로소 억눌려 있던 진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조언한다. 음치는 없다, 오직 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선언하는 저자는 세상 모든 목소리에 있는 자기만의 개성과 역사, 기원을 찾으라고 우리들을 격려한다.
세상의 박자가 아닌, 당신 내면의 리듬은 무엇이냐고 묻는 임미성의 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한다. 당신의 연주는, 당신의 삶은 틀리지 않았다”고. 자기만의 걸음을 걸으라고 이끄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재즈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