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보공유는 ‘선물’인가, ‘목줄’인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만 걷는 개는 목줄이 팽팽해질 일이 없는 법이다.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시 핵시설’ 발언을 기점으로 한미 정보 공조 체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핵시설 소재지를 거론하자 미국이 보안 유출을 이유로 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하고 나선 탓이다. 일각에서는 안보 공백을 걱정하지만, 정작 우리가 직면한 본질적 위기는 ‘정보의 부재’ 그 자체가 아니라 심화된 ‘정보의 종속’에 있다.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평안북도 구성 핵시설의 존재는 이미 학술 논문과 국내외 보도로 널리 알려진 ‘명백한 사실’임을 확인하며, 근거 없는 기밀 누설 프레임에 강한 유감을 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 장관 또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명했을 뿐인데 이를 정보 유출로 몰아가는 것은 유감”이라며 항변하고 나섰다. 공개된 팩트조차 정보 패권의 잣대 아래 기밀로 둔갑하는 현 실태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정보 자립의 길이 얼마나 먼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정보를 지렛대 삼아 한국을 ‘길들이려’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9년 한일 지소미아(GSOMIA) 종료 위기 당시에도, 미국은 한국의 자주적 결정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반기로 규정하며 정보 공유 체계의 균열을 경고했다. 햇볕정책 시절에도 한국의 대북 유화 노선이 미국의 강경 기조와 어긋날 때마다 정보의 수도꼭지는 여지없이 잠겼다.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늘 ‘보안’이다. 정보 자산의 노출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보는 동맹을 미국의 전략적 울타리 안에 묶어두는 가장 효율적인 ‘보이지 않는 사슬’로 작동해 왔다. 우리가 미국에 정보를 100% 의존하는 한, 우리의 눈은 미국이 비춰주는 곳만 볼 수 있고, 우리의 입은 미국이 허락한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보수 정권 시절 정보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던 것을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는 시각도 위험하다. 그것은 외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가이드라인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며 자율성을 포기한 대가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만 걷는 개는 목줄이 팽팽해질 일이 없는 법이다.
최근 국제 사회는 냉혹한 ‘자국 이익 우선주의’의 각축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아무리 굳건한 혈맹이라 할지라도 정보의 영역에서만큼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자주국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정보 주권’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작년 7월 인사청문회 당시엔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던 발언이 9개월이나 지난 지금, 하필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국가 안보를 뒤흔드는 대역죄로 둔갑해 장관 해임 요구로까지 번지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합리적인 보안 우려라기보다, 안보 불안을 자극해 정국을 흔들려는 구태의연한 ‘북풍몰이’의 재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