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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학교는 어떻게 시민의 탄생지가 되는가

학교는 어떻게 시민의 탄생지가 되는가
[뉴스]
미완의 시간에서 시작된 교육적 물음 곽노현의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한 교육감의 정책 회고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 책은 인권 법학자로서 축적한 권리의 감각,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듬은 인간 존엄의 언어, 서울시교육감으로 실험한 제도 개혁의 흔적,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계속된 민주주의와 시민참여의 사유가 학교라는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책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삶은 법과 인권, 교육과 정치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권리는 법정의 문장에만 머물지 않고 교실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인권은 선언문에만 남지 않고 학생의 몸, 급식의 식판, 교사의 수업, 학교의 의사결정 절차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번역의 기록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서울시교육감 재임 기간은 짧았다. 그 짧은 시간은 인권 법학자로서의 연구와 실천이 교육제도 안에서 충분히 피어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교육개혁이 긴 시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개혁은 짧은 시간 동안 제도의 방향을 바꾸고, 이후의 상상력을 열어젖히며, 후대가 더 오래 걸어갈 길의 좌표를 남긴다. 무상급식, 학생인권, 혁신학교, 학생자치, 교원 정치기본권에 대한 그의 문제제기는 바로 그런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완성된 제도라기보다 한국 공교육이 한때 도달했던 가장 급진적인 질문의 목록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곽노현 효과’를 다시 읽게 한다. 곽노현 효과는 특정 정책의 성공이나 실패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학교를 바라보는 언어의 이동이었다. 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수치심 없는 공공성의 문제로 바뀌었다. 학생인권은 생활규정의 완화가 아니라 복종의 문화를 걷어내는 학교문화의 전환으로 해석되었다. 혁신학교는 몇몇 좋은 학교의 실험이 아니라 교사 집단지성과 학교자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되었다. 이 전환이 이후 진보교육감 10년의 정책적·상상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 책은 그 토대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권리의 언어가 학교로 들어올 때 이 책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는 권리의 언어가 있다. 그러나 그 권리는 개인이 자기 몫을 끝까지 주장하는 사적 권리의 언어가 아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말하는 권리는 학교 안에서 인간을 모욕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문명적 장치이다. 무상급식은 가난한 학생을 골라내어 도와주는 시혜가 아니라, 학교에서만큼은 부모의 경제력이 학생의 표정과 자존감을 가르지 않겠다는 보편적 책임의 선언이다. 학생인권은 학생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허용의 언어가 아니라, 학교가 더 이상 폭력과 굴종을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않겠다는 문명사적 경계선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진보교육의 언어를 다시 정리한다. 진보교육은 친절한 정책의 나열이 아니다. 진보교육은 학교 안에서 누구의 몸이 통제되었고,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졌으며, 누구의 가난이 부끄러움으로 번역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학교를 단순히 지식 전달 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느끼는가를 매일 생산하는 제도이다. 급식 줄에서, 복장 규정에서,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교폭력 처리 절차에서, 교사의 말투와 학생의 발언권에서 학교는 학생에게 사회의 첫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권리는 언제나 교육과 연결된다. 권리는 교육의 방해물이 아니다. 권리는 교육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학생이 모욕받지 않아야 배움이 시작된다. 교사가 시민으로 인정받아야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 학부모의 불안이 공적 대화로 번역되어야 학교는 법적 대리전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응보적 처벌만으로 다루어질 수 없고, 회복적 정의와 공동체의 책임 속에서 다시 교육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이 책은 권리와 교육을 대립시키는 낡은 사고를 넘어, 권리가 교육의 심장부에 놓여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 혁명이라는 오래된 질문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첫 문턱에는 교실이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잠자는 교실과 떠드는 교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학교 현실의 무너짐을 진보교육의 탓으로 돌리는 보수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교실의 질서와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균형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의 자유와 교실의 질서는 서로 적이 아니다.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책임이 필요하며, 질서가 억압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의 참여와 자치가 필요하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책에서 그 긴장을 정직하게 붙든다. 무엇보다 교실혁명을 강조하면서 교실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교실은 학교의 시간표, 교사의 협력문화, 생활교육의 공동 기준, 행정업무의 구조, 교장 리더십, 교육청의 지원체계가 함께 만드는 장이다. 따라서 잠자는 교실과 떠드는 교실을 바꾸는 일은 학생을 더 세게 통제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사들이 함께 배우고, 함께 판단하고, 함께 책임지는 학교 단위의 전문적 문화가 형성되는가의 문제이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단순한 정책 비평이 아니라 실천교육학의 문법으로 이동한다. 실천교육학은 좋은 가치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혁신학교에서 주목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교사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학교가 수업과 생활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가. 행정은 학교를 통제하는가, 지원하는가. 교장은 관리자인가, 교육전문성과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학습공동체의 조율자인가. 이 질문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학교가 민원, 소송, 디지털 갈등, 학생 정신건강, 통합지원, 돌봄, 기후위기 교육까지 감당해야 하는 시대에 더 절실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문항 파동이 일고 있는 가운데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23.6.20 연합뉴스 부모 찬스 없는 학교라는 평등의 재구성 이 책의 두 번째 축은 평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평등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부모의 경제력과 지역, 학교 선택과 사교육 접근성이 학생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실을 집요하게 문제 삼는다. 부모 찬스 없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정치적 구호처럼 들리지만, 교육학적으로 보면 교육기회의 실질적 보장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는 말이다. 그래서 형식적 기회균등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나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을 넘어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어떤 학생은 방과후에 더 풍부한 배움을 만나고, 어떤 학생은 결핍과 고립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문제까지 평등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곽노현 전 교육감이 무상급식 이후 방과후교육과 방학중교육까지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 안의 평등을 넘어 학교 밖 시간이 이미 계층 격차의 증폭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교육 시장은 부모의 경제력을 학생의 학습시간으로 바꾸는 장치이고, 문화자본은 부모의 취향과 인맥을 학생의 언어와 자신감으로 바꾸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공교육은 정규 수업의 문턱 안에서만 평등을 말할 수 없다. 학생의 하루 전체, 학생의 방학, 학생의 문화적 경험, 학생의 관계망까지 교육기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보편복지를 넘어 보편적 학습권의 문제로 나아간다. 무상급식이 학생을 수치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정책이었다면, 방과후와 방학중 교육의 공적 책임은 학생을 부모 운의 격차로부터 해방시키는 정책이다. 이것은 복지국가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교육과정의 언어이다. 모든 학생이 좋은 삶에 필요한 습관, 문화감수성, 시민역량, 학습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보충학습의 확대가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이 학생의 삶 전체를 향해 책임을 넓히는 문제이다. 이 책은 평등을 입학의 평등에서 경험의 평등으로, 경험의 평등에서 성장 가능성의 평등으로 밀고 간다. 낡은 성벽과 학교를 둘러싼 관료주의 이 책의 세 번째 축은 학교가 왜 바뀌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학교개혁의 실패를 교사 개인의 무능이나 학교 구성원의 보수성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학교를 둘러싼 관료주의, 특별교부금 중심의 정책사업, 전시행정, 위로부터의 개혁, 제왕적 교장 제도, 교사를 행정 처리자로 만드는 구조가 학교를 무겁게 만든다고 본다. 이러한 곽노현 전 교육감의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없다면 어떤 혁신도 오래가지 못하고,. 학교가 교육과정과 생활교육에 집중할 수 없다면 어떤 미래교육도 구호에 그친다는 경고다. 이 지점에서 곽노현 전 교육감의 책은 교육행정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는 학교개혁을 좋은 프로그램 도입으로 보지 않는다. 학교개혁은 권한과 책임, 시간과 업무, 자율성과 지원의 재배치이다. 학교가 바뀌려면 교육청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를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라 학교가 교육활동에 집중하도록 조건을 만드는 기관이어야 한다. 또한 교장은 행정 서열의 꼭대기가 아니라 교육과정과 교사 전문성을 보호하는 리더여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정책사업 수행자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전문가여야 한다. 이 삼각형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개혁은 언제든 행정의 언어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성벽을 허물라”, 혁파하라”, 혁명”이라는 곽노현 전 교육감 특유의 추진력과 문제의식을 담은 언어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강한 언어를 단순한 급진주의로 읽으면 곤란하다. 그 밑에는 학교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감각이 있다. 교사가 함께 협의할 시간,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 운영, 행정업무 경감, 민주적 교장 리더십, 학생 참여, 교육청의 지원중심 행정이 그것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급진성은 학교를 단번에 뒤집자는 과격함이 아니라, 학교가 교육기관답게 작동하려면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다시 배치해야 하는지를 묻는 데 있다. 학교의 사법화와 회복적 정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듯이 학교의 사법화에 대한 비판이다. 학교폭력과 갈등이 발생하면 교육적 대화보다 변호사 상담이 앞서는 시대, 학생 간 갈등은 곧 보호자 간 대리전이 되고, 교사의 생활지도는 법적 위험 관리의 대상이 되며, 학교의 절차는 관계 회복보다 행정심판과 소송 가능성을 먼저 의식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진단. 곽노현 전 교육감은 이 흐름을 교육의 실패로 본다. 학교는 법정이 아니다. 학교가 법의 언어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법의 언어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순간 교육은 사라진다.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앞에서 재단 관계자들이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7.24 연합뉴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회복적 정의의 방향은 중요하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을 덮자는 말이 아니라, 피해의 사실을 더 정직하게 확인하고, 가해의 책임을 더 깊게 묻고, 방관자의 위치까지 교육적으로 다루며, 공동체가 갈등을 통해 배우는 절차를 만드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처벌과 기록의 문제로만 다루면 학생들은 승패를 배우지만, 회복적 정의의 절차 속에서 학생들은 피해의 언어, 책임의 언어, 사과의 언어, 공동체 회복의 언어를 배운다. 이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잘못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잘못 이후에도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절차를 갖는 상태이고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 부서진 마음들의 학교를 이르는 표현이 학교의 사법확이다. 이 문제의식은 오늘의 학교에 특히 중요하다. 학교는 갈등이 사라진 공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학교는 갈등을 안전하게 배우는 장소여야 한다. 다른 배경과 욕망, 능력과 상처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갈등을 처리할 공적 수로가 있는가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학생자치법정, 방관자 교육, 교육연극, 회복적 정의를 통해 이 공적 회로를 만들고자 했다. 이 시도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지금의 학교가 다시 붙들어야 할 중요한 교육적 상상력이다. 교실의 주권과 교사의 시민권 이 책의 마지막 축은 정치교육과 교사의 시민권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교실을 민주주의의 인큐베이터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정치적 쟁점을 회피할수록 학생들은 더 거칠고 더 편향된 방식으로 정치의 언어를 배운다. 유튜브, 커뮤니티, 가족 대화, 혐오의 밈과 조롱의 언어가 이미 학생들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 학교가 논쟁을 다루지 않으면 중립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육적 정치사회화가 방치된다. 그래서 이 책은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중요하게 다룬다. 교사는 자신의 견해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 논쟁적인 사안은 논쟁적인 상태로 가르쳐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조건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원칙은 정치교육을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라, 정치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 회피로 오해하는 한국 교육의 관행을 비판하며, 정치적 중립성은 침묵이 아니라 공정한 논쟁의 절차라는 점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교실은 정치가 없는 공간이 아니라, 정치가 교육적으로 다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교사의 시민권 문제와 연결될 때 더 선명해진다. 학생에게 시민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교사를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는 모순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교실 밖에서는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는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이 모순을 교사의 정치적 면천”이라는 언어로 비판한다. 이 표현은 도발적이지만 정확하다. 교사가 시민으로 살 수 있어야 학생에게 시민성을 가르칠 수 있다. 물론 교실 안에서 교사의 권력은 엄격하게 절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사의 정치적 권리 전체를 금지하는 것은 교육의 중립을 지키는 길이 아니라 교사를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길이다. AI와 기후위기 앞에서 다시 묻는 시민교육 이 책이 과거 진보교육의 회고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미래교육의 쟁점까지 시민교육의 문제로 묶어내기 때문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을 기술 적응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 배경지식, 비판적 사유로 본다. AI를 잘 쓰는 능력은 프롬프트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답을 의심하기 위해서는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의 사회적 효과를 따지기 위해서는 시민적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교육은 디지털 역량교육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교육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기후위기를 개인적 실천의 윤리로만 축소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감각, 지구의 공존 동반자로 살아가는 겸손함, 에너지 구조와 산업 구조와 문명 구조의 전환을 이해하는 시민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안되는 학교급식의 채식 선택, 햇빛발전소, 텃밭 가꾸기 같은 구체적 실천은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니라 학교가 문명 전환을 몸으로 배우게 하는 교육과정이다. 학교는 지구적 위기를 교과서의 단원으로만 가르칠 수 없고, 학교의 밥, 전기, 공간, 이동, 소비, 관계가 모두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미래교육 담론의 빈자리를 정확히 찌른다. 오늘의 미래교육은 종종 기술과 역량의 언어로만 말해진다. 그러나 곽노현 전 교육감은 미래교육을 시민교육의 확장으로 읽는다. AI는 누가 통제할 것인가. 기후위기의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물을 것인가. 전쟁과 평화, 외교와 안보, 이주와 차별, 에너지와 산업 구조의 전환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미래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미래에 적응하는 훈련에 그칠 위험이 있다. 이 책은 미래교육을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학교를 시민 탄생의 산실로 다시 세우기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덮고 나면, 제목의 질문이 다시 들린다.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질문은 교육과정 개정, 평가 혁신, 학교자치, 행정개혁, 정치교육, 복지 확대의 어느 한 영역으로만 답할 수 없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답은 더 근본적이다. 학교는 학생이 시민으로 두 번째 태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첫 번째 탄생이 생물학적 탄생이라면, 두 번째 탄생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엄을 알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함께 판단하고 함께 책임지는 시민으로 태어나는 일이다. 공교육은 바로 그 탄생을 돕는 제도여야 한다. 이 책의 실천교육학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 실천교육학은 현장의 어려움을 위로하는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장의 어려움이 어떤 제도적 조건에서 생겨나는지 읽고, 학교가 다시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학문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글은 현장의 교사와 교장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학생을 정말 시민으로 대하고 있는가. 교사를 정말 교육과정 전문가이자 시민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학교폭력을 교육적으로 다룰 절차를 가지고 있는가. 정치교육을 회피하면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교육을 말하면서 정작 미래사회의 권력과 책임을 묻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진보교육이 아직 충분히 완수하지 못한 과제를 정면으로 꺼내는 책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재임은 짧았고, 그의 교육구상은 제도 안에서 충분히 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은 때로 긴 여운을 남겼다. 무상급식과 학생인권, 혁신학교와 학생자치, 교사의 시민권과 정치교육의 문제는 이후 10년의 진보교육을 가능하게 한 밑그림이 되었다. 이제 그 밑그림은 다시 수정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학교의 사법화, 디지털 플랫폼, 기후위기, AI, 학생 정신건강, 교사 소진, 학부모 불안, 통합지원의 시대에 곽노현의 질문은 책과 함께 새롭게 돌아온다. 학교는 법정이 아니다. 학교는 시장도 아니다. 학교는 행정의 말단도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인간의 존엄을 배우고,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춰 서고,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판단하는 곳이어야 한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이 오래된 명제를 다시 현재형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초대장이다. 학교를 다시 시민 탄생의 산실로 세우려는 사람들, 교육을 복종의 훈련이 아니라 자유와 책임의 연습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교과서의 개념이 아니라 교실의 생활양식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우리는 이 초대에 응답할 준비가 되었는가?정용주 서울천왕초 교장 jyj@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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