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애머리 로빈스가 말하는 ESG의 경제학…에너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법 [칼럼] 약 40년전 부터 에너지 전환 분야를 선도해온 애머리 로빈스(Amory Lovins) /Flickr
최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기후변화에 대한 기회’ 항목에 친환경 제품 확대, 저탄소 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전환, 순환경제 도모와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요인이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순히 공시 문항을 채우는 데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기업에서 여전히 ESG를 사업기회가 아닌 비용이나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인물이 애머리 로빈스(Amory Lovins)다.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에너지 전환 부문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영국 신문 더 타임즈(The Times)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애머리 로빈스는 에너지 전환이나 순환경제를 이야기할 때 환경적 당위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철저히 경제적 이익과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에 기반해 주장을 펼친다. 흥미로운 점은 로빈스가 셰브론, 로얄 더치셸, 도요타와 같은 화석연료 기반 기업의 자문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로빈스의 주장이 화석연료 사용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탄소배출산업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로빈스의 주장이 환경론이 아닌 경영 논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로빈스는 현재의 에너지와 자원 사용 체계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때문에 에너지 전환과 순환경제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여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실질적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애머리 로빈스는 에너지 및 자원순환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화석연료의 가격 변동성은 구조적 비효율…이를 제거하는 것이
사업경쟁력으로 이어져
2020-2026 브렌트유 및 EU천연가스 가격 추이/Centre for European Reform 기반 Chat GPT 생성 이미지
로빈스는 재생에너지의 가치를 탄소 감축이 아닌 에너지 시스템의 운영 안정성에서 찾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은 가격 변동성이라는 구조적 비효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OPEC으로 대변되는 ‘산유국 카르텔’과 불안한 국제 정세로 인해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은 예측이 어렵고, 공급망이 흔들리면 에너지 비용이 통제 불가능해진다. 즉 시장에서의 에너지 공급과 가격 산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로빈스는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자산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구조가 이러한 에너지 시장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기업 운영에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는 로빈스의 논리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유럽 중앙은행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석유·석탄·천연가스의 가격이 각각 약 40%, 130%, 180%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에너지를 외부에서 조달해야하는 유럽기업은 이러한 시장 충격을 그대로 떠안았다.
하지만 이케아는 달랐다.
이케아는 RE100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훨씬 이전 시점인 2010년 대 초반부터 재생에너지 자산을 직접 보유하고 운영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2014년에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98메가와트 규모의 풍력발전 사업을 인수하고, 이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이케아 미국 최고채무책임자는 이에 대해 재생에너지 자산을 직접 보유해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에 대한 노출을 통제하는 것이 재무적인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10년 뒤, 이러한 이케아의 선택은 결실을 맺었다. 대부분의 유럽 기업들이 에너지 위기로 인해 허덕이는 가운데, 지난 2025년 이케아의 모회사 잉카그룹은 2015년 대비 에너지 비용을 27%절감했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자산을 통해 직접 조달하는 전력의 비중은 75%에 달했다.
로빈스의 논리는 명확하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구조는 가격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직접 소유한 자산에서 조달하는 구조는 그 변동성을 내부에서 흡수한다.
이케아는 이러한 리스크 구조를 명확히 이해했고, 10년 전 내린 재무적 판단이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운영 안정성을 보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 속, 에너지 효율적으로 쓰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애머리 로빈스가 제시한 에너지 효율 향상 중심의 에너지 사용 절감 시나리오/Rocky Mountain Institute 기반 Chat GPT 생성 이미지
로빈스는 에너지 부문에서 산업계가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 ‘에너지 효율’이라고 지적한다.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생에너지 공급을 강조하지만, 정작 에너지 사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 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로빈스는 투자의 관점에서 봤을때, 에너지를 추가로 조달하는 것보다 기존의 장비나 공정을 개선해 에너지 효율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직접 대규모 재생에너지 자산을 인수해 운영할 경우 높은 초기비용을 수반하며 투자회수기간 또한 10년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자산 운용이나 외부 조달을 위한 전문성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 강화의 경우, 작게는 조명이나 배관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비용 절감효과를 누릴 수 있다. 투자회수기간 또한 일반적으로 3-5년 정도로 재생에너지 자산에 비해 짧은 편이다.
때문에 로빈스는 산업계 전반에서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제품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외부변수로 인한 에너지의 제약이 커질 수록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산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의 경우, 에너지 사용 절감이 곧바로 제품의 마진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로빈스의 논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반도체·데이터센터 산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30년 약 945테라와트시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수준의 두 배 규모다.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5% 증가가 예상되는데, 이는 다른 모든 부문의 전력 소비 증가율보다 네 배 이상 빠른 속도다.
AI와 반도체의 수요가 커질수록 생산능력 확장과 전력 확보는 서로 맞물린 문제가 된다. 전력이 디지털 산업을 위한 인프라가 아니라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제약 조건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TSMC는 에너지 효율 강화를 통해 에너지로 인한 환경적 제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TSMC의 지속가능경영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이사회 차원에서 에너지 절감 및 탄소 감축 위원회 (Energy Saving and Carbon Reduction Committee)를 수립하고, 전사적 차원에서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각 사업부서별로 에너지 절감 목표와 효율 개선활동 또한 공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극자외선 노광장비에 동적 에너지 절감 프로그램을 적용해 해당 장비의 연간 전력 소비를 8% 줄일 수 있다고 밝혔고, 노후장비교체에서부터 에너지 관리 소프트웨어 도입까지 약 1000여개 이상의 에너지 효율 향상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24년까지 누적 4700기가와트 시에 달하는 전력 사용량을 절감했다. 이는 약 200억 대만달러(98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 절감은 단순한 비용 절감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제조에서 전력은 생산능력을 좌우하는 핵심 투입요소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 개선은 곧 생산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극자외선 장비는 첨단공정의 핵심 설비로,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장비 수와 전력 수요가 함께 늘어난다. 따라서 장비 단위 전력 사용량을 낮추는 것은 전력 요금 절감 차원을 넘어, 전력 제약이 커지는 환경에서도 같은 설비로 더 많은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에너지 제약이 커질수록 효율이 높은 공정을 가진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가동률과 생산량 같은 운영지표를 더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순환경제, 원자재 공급망 리스크 해소를 위한 열쇠
BMW가 운영중인 순환경제 전문 시설/BMW
애머리 로빈스가 주장하는 환경경제학의 논리는 에너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999년, 로빈스는 저서 ‘자연자본주의(Natural Capitalism)’를 통해 전자제품, 자동차 등 광물 기반 제품의 사용량이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기업의 자연자본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원자재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선형 구조는 자원의 가격 변동과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경제적 비효율성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코발트, 리튬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광물의 경우 해당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제품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규제강화,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광물가격이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로빈스는 단순히 자원을 재활용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순환설계(Circular Design)를 통해 제품에서 자원회수를 용이하도록하고, 재활용 광물의 사용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배터리 분야에서 핵심광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로빈스가 지적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배터리 생산 증가로 인해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현재의 5배, 코발트와 희토류 수요는 50~60% 증가할 것으로 분석되었으나, 광물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광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는 핵심광물의 공급 충격이 지속될 경우 전 세계 평균 배터리팩 가격이 40~5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광물을 외부 시장에서만 조달하는 구조에 의존하면, 가격과 공급 리스크를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순환경제를 사업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실제, 스텔란티스는 2022년 순환경제 전담 브랜드 SUSTAINera 를 출범시키고, 2023년에는 이탈리아 미라피오리 공장에 순환경제 허브를 개설했다. 엔진·변속기·고전압 배터리의 재제조부터 차량 해체와 소재 회수까지 통합 관리하는 체계다. 2030년까지 순환경제 부문 매출을 20억 유로 이상으로 키운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BMW 또한 2022년 중국 합작법인에서 폐쇄형 배터리 재활용 시스템을 처음 구축하고 , 2024년 11월에는 순환경제 전문 연구소를 설립해, 이를 유럽 전역으로 확장했다. 사용 후 고전압 배터리를 수거해 코발트·니켈·리튬을 회수하고 신규 배터리 생산에 재투입하는 구조로, 2026년에는 북미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2023년 배터리 소재의 반복 회수 가능성을 검증하는 연구 컨소시엄 HVBatCycle을 주도적으로 출범시켰다. 코발트·리튬·니켈·흑연을 반복 재활용할 수 있는지를 3년에 걸쳐 검증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이를 통해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외부 광물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폐차에서 발생하는 자원을 회수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히 재활용을 통한 환경책임 이행 뿐만이 아니라 광물 공급망의 근본적인 리스크를 해소하고자 하는 비즈니스 전략인 것이다.
로빈스의 핵심 주장은 결국 하나다. 에너지와 자원 사용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과정 자체가 경제적 이득이며, 그것이 곧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ESG를 환경 의무로 읽으면 비용으로 보이지만, 비효율 제거의 경제학으로 읽으면 사업 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기업이 ESG를 어느 쪽으로 읽느냐에 따라 지속가능경영전략의 접근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임팩트온 송선우 리서치 센터장
임팩트온 송선우 리서치센터장은 분석 기사를 통해 ESG 공시, 프레임워크, 트렌드 등 글로벌 ESG 주요 현안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E커머스 ESG전략 사내 세미나’, SK경영경제연구소의 ‘탄소중립 사례연구’ 등 ESG 관련 리서치와 국제 표준 분석 등의 연구작업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