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맑은 온기를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드리다 [사람들]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 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드리다
그림 속, 포근한 미소를 머금은 이웃들의 얼굴마다 따스한 온기가 가득 피어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수채화 빛깔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헌혈증서 를 소중하게 손에 쥔 채 환하게 웃고 있네요. 한편에서는 맑은 눈빛의 청년이 침대에 누워 기쁜 마음으로 생명을 나누고 있고, 그 곁을 지키는 간호사의 손길도 참으로 다정해 보입니다. 밭에서 정성스레 꽃을 가꾸는 어르신과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맞추는 부모의 모습까지, 이 다정하고 조화로운 정경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가장 맑고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물들이는지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내 것을 기꺼이 웃어른과 남에게 내어주는 드리다
어제(14일)는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실천을 기리고 고마움을 전하는 ‘세계 헌혈자의 날’이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나라에서는 피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위해 자발적인 참여를 널리 알리고 있지요.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이름도 모르는 이웃의 수술과 치료를 위해 내 몸속의 소중한 피를 내어주는 일은 그 무엇보다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나눔의 날을 맞아, 오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볼 토박이말은 드리다 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주다’의 높임말 로 풀이하며, 윗사람에게 그 사람을 높여 말이나, 인사, 부탁, 약속, 축하 따위를 하다 , 그리고 신에게 비는 일을 하다 라고 뜻풀이합니다. 아버님께 용돈을 드리다 ,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다 ,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다 처럼 나날살이에서 잘 부려 쓰는 깊고 고운 낱말이지요. 저는 이를 내 것을 기꺼이 남에게 주다 라고 쉽게 풀이하고 싶습니다. 이 말 속에는 단순한 물건의 이동을 넘어, 내 안의 공경과 정성, 그리고 기꺼운 마음을 오롯이 담아 건네는 다정한 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피드림 으로 소통하는 세상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다 다쳐서 상처가 나면 피가 난다 고 하지, 혈(血)이 난다 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장 소중한 피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숭고한 일은 토박이말 피 를 두고 한자말을 써서 헌혈(獻血) 이라고만 해야 할까요? 헌혈 은 드릴 헌(獻) 에 피 혈(血) 을 씁니다. 말집(사전) 풀이에서도 보듯 피를 뽑아 줌 에서 줌 의 으뜸꼴(기본형) 주다 의 높임말이 바로 드리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말짜임에 맞게 피드림 이라 부르면 어떨까요? 자연스럽게 헌혈자 는 피드림이 가 되고, 세계 헌혈자의 날 은 온 세상을 뜻하는 토박이말을 더해 온누리 피드림이의 날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곤 합니다. 헌혈 이라는 말을 쓰면서 드릴 헌 과 피 혈 을 몰라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문제 삼기보다, 그림 속 아름다운 글귀처럼 누구나 듣자마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피드림 이라는 곱고 쉬운 말을 쓰면 이런 어려운 매듭은 저절로 풀어집니다. 억지로 외워야 하는 딱딱한 한자로 된 말보다, 우리의 나날살이 속 숨결이 담긴 토박이말을 쓸 때 이웃을 향한 정성도 더 부드럽게 가슴으로 와닿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거친 잣대와 어려운 말들 속에서 때로는 내가 작아 보이고 주눅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드리는 마음을 품은 여러분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커다란 사랑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와 나라 사람 모두가 이처럼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삶 속에서 마음껏 누리고 부려 쓸 수 있도록 다 함께 힘과 슬기를 모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나누기]
우리가 다쳐서 피가 날 때는 피 라고 하면서, 정작 이웃에게 나눌 때는 헌혈 이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썼던 까닭을 가만히 돌아보게 됩니다. 만약 세계 헌혈자의 날 을 온누리 피드림이의 날 이라고 풀어 쓴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닿는 느낌은 어떻게 달라지실 것 같나요? 우리말을 더 사랑하고 쉽게 부려 쓰기 위한 여러분의 다정한 생각을 댓글로 소중하게 공유해 주세요.
[한 줄 생각]
피드림(헌혈)은 남는 것을 드리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내일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드리다
뜻: ‘주다’의 높임말. (쉬운 풀이:내 것을 기꺼이 남에게 주다)
보기: 멀리 계신 아버님께 달마다 돈을 드리며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