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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기관차의 아들 R 스티븐슨 속도보다 방향, 지속성

기관차의 아들 R 스티븐슨 속도보다 방향, 지속성
[칼럼]
아버지의 그늘, 아들의 날개 1803년 10월 16일, 영국 북동부 뉴캐슬 근처의 작은 탄광마을 윌링턴 퀘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성인이 될 때까지 탄광에서 기계를 만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집념 하나로, 먹고살기도 빠듯한 살림에 로버트를 학교에 보냈다. 탄광노동자의 아들이 뉴캐슬의 브루스 아카데미를 거쳐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자연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무모한 사랑 덕분이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교육에 올인한 흙수저 가정 이었던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올인이 단순히 자식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준비였다는 점이다.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phenson, 1803~1859)은 19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토목·기계 공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아버지와 함께 철도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1856년 7월, 《동시대 인물 사진집》에 실린 로버트 스티븐슨의 사진(위키피디아) 불꽃 경주, 레인힐 시험, 1829년 1823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로버트는 뉴캐슬에 기관차 제작회사를 공동설립하고 경영을 맡았다. 그러다 1824년, 청년은 돌연 콜롬비아 광산 감독관 자리를 받아들이고 3년간 남미로 떠났다. 아버지와의 갈등이었는지, 젊음의 방랑벽이었는지, 역사는 확실한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어쨌든 1827년에 돌아온 그는 회사경영을 다시 잡으며, 곧 역사에 이름을 새길 기회를 맞이했다. 1829년 10월,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를 달릴 기관차를 선발하는 레인힐 기차 경주(Rainhill Trials)가 열렸다. 이 레인힐 시험은 초기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에 도입할 최우수 증기기관차를 선발하기 위해 개최된 세계최초의 기관차 경주대회였다. 지금으로 치면 국책사업의 핵심 기술 경연이었다. 무려 만 명이 넘는 구경꾼이 몰렸고, 신문들은 연일 경주 소식을 실었다. 참가 기관차들에는 참신함(Novelty) 이니 끈질김(Perseverance) 이니 하는 의미심장한 이름이 붙었다. 로버트가 내놓은 기관차의 이름은 로켓(Rocket) 이었다. 이 쇳덩이는 시속 46킬로미터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기록하며 당당히 우승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그 속도는 거의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말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당할 수 없는 쇠로 만든 말, 이른바 철마(鐵馬)의 탄생이었다.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전 구간 증기기관차로 다닐 수 있게 개통되었고, 세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스티븐슨이 자란 킬링워스의 다이얼 코티지. 스티븐슨과 그의 아버지가 설치한 해시계가 현관문 위에 보인다.(위키피디아) 산을 뚫고 강을 건너다 레인힐의 영광 이후, 로버트의 진짜 시험은 따로 있었다. 1833년, 그는 런던-버밍엄 철도의 수석공학자로 임명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긴 철도였던 이 노선을 뚫기 위해, 그는 문자 그대로 산을 파고 들어갔다. 킬즈비 터널(Kilsby Tunnel)이 그것이다. 공사는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지하수가 쏟아졌고,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로버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1838년 마침내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런던 유스턴역에서 버밍엄까지 기차로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꿈처럼 느껴졌다. 이후 그는 다리 건설의 명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1849년 뉴캐슬 위 타인강을 가로지르는 높은 수준 다리(High Level Bridge)가 완성되었고, 1850년에는 웨일스의 메나이 해협을 건너는 브리타니아 다리(Britannia Bridge)가 세상에 선보였다. 사각형 관(管) 모양의 철제구조물 속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이 다리는 그 시대 공학의 정점이었다. 심지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세인트로렌스강을 건너는 빅토리아 다리(Victoria Bridge)를 설계해 1859년 완공되었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생을 마감하는 해에도 그는 세계기록을 갱신했던 것이다. 1847년에는 휘트비 선거구의 하원의원으로도 활동하며, 기술자가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1849년 왕립학술원 정회원이 된 그는 1855년 토목학회 회장직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1859년 10월 12일, 쉰여섯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로버트 스티븐슨은 런던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탄광노동자의 아들이 영국의 성인(聖人)과 왕들이 잠든 자리에 묻힌 것이다.   1825년 스톡턴-달링턴 철도 개통 그림.(위키피디아) 아버지의 유산, 아들의 선택 흥미로운 점이 있다. 로버트는 언제나 조지 스티븐슨의 아들 로 불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조지는 철도의 아버지 라는 별칭을 거머쥐고 있었고, 후세의 역사도 흔히 아버지를 더 유명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공학사(史)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로켓기관차의 핵심설계를 주도한 것은 로버트였고, 런던-버밍엄 철도의 난공사를 직접 지휘한 것도 로버트였으며, 브리타니아 다리의 혁신적인 관 구조를 고안한 것도 로버트였다. 아버지가 씨를 뿌렸다면, 아들은 그 씨가 자라는 토양자체를 설계한 것이다. 부자(父子)가 함께 세상을 바꾼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세습이 아니라 교육과 기회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울림이 있다. 산타아나에 있는 스티븐슨의 별장.(위키피디아) 한국에 건네는 말, 터널을 포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로버트 스티븐슨이 활동하던 19세기 영국은,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한국과 묘하게 겹치는 장면들이 있다. 그가 런던-버밍엄 철도를 공사할 때, 기득권 세력은 반발했다. 땅값 떨어진다는 지주들, 마차 산업이 망한다는 사업자들, 연기와 소음에 분노한 시민들. 의회청문회에서 로버트는 수백 가지 반대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기술의 논리와 공익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버텼다. 뚫어야 할 터널이 앞에 있다면, 막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오늘 한국도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선포라는 어두운 갱도를 빠져나온 뒤, 사회는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 철도를 놓는 일처럼, 방향이 잘못 정해지면 나중에 바로잡는 데 몇 배의 비용이 든다. 로버트는 터널 공사가 얼마나 막히든 측량의 기준점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사회도 지금 바로 그 기준점, 헌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붙들어야 할 때다. 그리고 또 하나. 로버트 스티븐슨이 사는 동안 그의 회사는 기관차를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이집트에 팔았다. 기술이 국경을 넘는 것은 국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이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위산업에서 세계와 겨루는 그 자리가, 스티븐슨의 기관차 회사가 섰던 자리와 다르지 않다. 품질이 곧 외교다.   초기 증기 기관차 중 첫 번째 모델은 로버트 스티븐슨이 남아메리카에서 돌아온 후 로버트 스티븐슨 앤 컴퍼니에서 제작했다.(위키피디아) 빠른 것이 전부가 아니다 레인힐에서 로켓이 자랑한 것은 속도만이 아니었다. 시험의 조건은 단순히 가장 빠른 기관차를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70마일(약 113킬로미터)을 규정속도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기관차를 찾는 것이었다. 로켓은 바로 그 신뢰성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우리사회가 다시 길을 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방향이 옳아야 하고, 방향이 옳은 것보다 오래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그 교훈을 쇳덩이로 증명했다. 탄광마을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그 거리를 그는 철로를 깔 듯, 한 침목 한 침목 놓으며 건너갔다. 그 길에는 아직도 열차가 달리고 있다.   로버트 스티븐슨이 손수 제작한 기관차 로켓 을 묘사한 그림.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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