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세계 최초 민주주의 대폭발 을 예비하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최근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1급 지성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가슴 벅찬 전율을 느꼈다. 평생을 강단과 현장에서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해 온 원로 지식인들조차 지금의 꽉 막힌 정치 현실과 민주주의의 퇴행 앞에서 길을 잃고 답답해하던 차였다. 그러나 내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대폭발’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을 때, 그분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분들도 이것이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우리사회 밑바닥에서 이미 끓어오르고 있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역량의 역전이 불러온 낡은 외투의 파열음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모순에 직면해 있다.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지만, 현실은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정(oligarchy)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 법관 등 선출되거나 임명된 소수 권력엘리트들은 헌법과 법률이 쳐놓은 촘촘한 보호막 뒤에 숨어 견제 받지 않는 제왕적 특권을 누린다. 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권카르텔을 형성했다. 그 정점엔 재벌총수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고 합창하며 재벌의 힘을 찬양, 고무하기 바쁘다. 국민은 선거 때를 빼고는 안중에 없다.
하지만 주권자인 시민은 달라졌다. 세계 최고의 고등교육 이수율과 최첨단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한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지적 역량은 이미 여의도와 서초동의 웬만한 엘리트들을 넘어섰다. 과거 정보와 지식이 소수에게 독점되던 시절, 대의제는 효율적인 통치시스템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대의민주주의라는 낡은 외투는 몸집이 커진 주권자 시민에게 더 이상 맞지 않아 여기저기 찢어지고 있다. 시민의 역량이 엘리트의 역량을 압도하는 역량의 역전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 대폭발의 뇌관이자 성공조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있다. 2024.12.14. 연합뉴스
짧은 임기의 엘리트는 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기후재앙과 자원 전쟁, 생성형 AI가 불러올 경제 양극화 등 거대한 문명사적 난제들 앞에 서 있다. 이것들은 10년, 30년, 5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과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 중심 대의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근시안적이다.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이 지상과제인 정치인들에게 30년 뒤의 기후재앙은 당장 표가 되지 않는 남의 일일 뿐이다.
그들은 표를 얻기 위해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거나,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만 골몰한다. 단기주의와 진영논리에 갇힌 엘리트들에게 인류의 생존이 걸린 장기 과제를 맡길 수 없다. 내 자식과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결정과정에 참여해야만 비로소 미래를 위한 결단이 가능하다. 이것이 대의제를 넘어 시민이 직접 나서는 민주주의 대폭발이 필요한 문명사적 이유다.
사법 불신: 최후의 보루가 무너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구체적이고 긴박하다. 무능하고 몰염치한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을 헌정시스템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싹텄다. 특히 사법 권력에 대한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사실이 주목을 요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법관은 선출되지 않고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사법 권력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것만큼 엘리트 과두정의 위기 상황은 없다. 우리가 딱 그런 상황이다.
지난 1년간 진행된 내란사법 과정에서 조희대 법원은 과거 사법농단 사태를 겪은 양승태 법원보다 더 큰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검찰정권의 제왕적 권력행사와 무소불위 특권향유에 분노했던 국민의 화살은 이제 내란사법을 자행하며 면책특권 뒤에 숨은 조희대, 지귀연, 우인성 등 법관들에게로 옮겨갔다. 정치 불신과 행정 불신을 넘어,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시스템마저 불신의 늪에 빠진 이 상황은 역설적으로 대폭발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왜 하필 대한민국인가?: 개량을 넘어 폭발로 갈 유일한 나라
서구의 정치학자들은 포퓰리즘의 시대에 무슨 민주주의의 대폭발이냐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일 것 같다. 내가 단언컨대 G7이나 OECD 국가 중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하다. 서구 선진국은 정당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어서 정치사법시스템이 나름 발전돼 있고 엘리트들이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청렴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의 시민들은 합리적인 정치시스템과 거대자본 앞에서 왜소해져서 복지국가의 소소한 혜택을 누릴 뿐 역사의 무대에 전면적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반세기 넘게 개량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국민은 4.19 혁명부터 5.18 민주항쟁, 6월 항쟁, 촛불혁명과 최근의 응원봉 혁명에 이르기까지 지난 65년 동안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가장 평화롭고 합헌적인 방식으로 무너뜨리고 다시 세운 위대한 집단적 성공의 DNA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역동성과 적극성이야말로 기후위기와 불평등, 전쟁의 공포가 드리운 21세기를 돌파할 세계 유일의 에너지원이 아닐 수 없다.
대폭발을 위한 청사진 (1) 특권 해체와 3종 혼합 민주정
이제 이 거대한 에너지를 담아낼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을 바꾸는 구조개혁이어야 한다. 첫째, 엘리트의 ‘특권 해체’다. 성공한 엘리트들이 헌법과 법률로 누려온 각종 불합리한 특권을 과감히 쳐내야 한다. 대통령의 개헌안 제출권과 검사인사권, 국회의원의 셀프입법특권과 장관겸직특권, 검찰의 영장신청특권 및 기소독점특권, 그리고 무엇보다 법관의 판결 면책특권과 전관비리 특권 같은 성역을 허물어야 한다.
둘째, ‘직접민주주의’라는 강력한 엔진의 장착이다.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제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숙의와 전문성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의제는 괴물이 된다. 따라서 시민의 손에 대의권력자의 머리 위에 걸어둘 ‘다모클레스의 검’을 쥐어줘야 한다. 시민이 직접 법을 만드는 ‘국민발안권’, 잘못된 정책을 멈추는 ‘국민거부권’, 무능한 대표를 파면하는 ‘국민소환권’이라는 세 자루의 보검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대폭발을 위한 청사진 (2) 시민의회와 120만의 정치적 부활
셋째,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한 시민의회 도입이다. 선거로 뽑힌 대표는 재선을 위해 후원자와 정당의 눈치를 보지만, 추첨으로 뽑힌 시민대표는 오직 양심과 공공선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내리는 결론이야말로 진영논리로 마비된 국회를 보완하고 기득권 카르텔을 깨뜨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막론하고 시민의회와 공론조사 등 추첨숙의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여 심층민심을 파악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넷째, 억눌린 정치적 에너지의 해방이다. 우리는 교사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지성과 공공성을 갖춘 120만 명의 시민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묶어두고 있다. 이들에게 채워진 ‘위선적 중립’의 족쇄를 풀고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학교와 관공서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집행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의 정치적 견해조차 표명할 수 없는 현실은 코미디다. 이들이 시민으로서 정치 전면에 등장할 때, 지역정치와 정당정치는 질적으로 도약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대폭발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주권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국민의 3대 보검이 엘리트들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고 추첨된 시민의회가 대의권력을 보충하고 120만 교사·공무원 시민이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세상, 나는 이것을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제를 근간으로 직접민주제와 추첨민주제가 적절하게 가미된 ‘3종 혼합 민주정’이라고 부른다. 이 시스템 안에서 보통 사람의 집단지성은 ‘민주주의 대폭발’로 이름 붙일 만큼 최고도로 발휘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폭발’이라는 단어에서 혼란을 우려하지만, 내가 말하는 대폭발은 파국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나오는 ‘창조적 진화’다. 엘리트 특권구조의 해체, 시민 직접참여 권리의 확대, 그리고 억눌린 시민권의 회복, 이 세 가지가 만날 때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어젖힐 것이다. 그때 시민은 통치의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고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예술로 승화될 것이다. 민주주의 대폭발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단지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