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희대 사법부가 흔드는 정의보다 부모의 삶이 증명하는 상식이 훨씬 더 무겁고 준엄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사법 정의의 저울이 연일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며 좌절과 답답함을 안기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이 받은 장학금 600만 원은 ‘뇌물성’이 인정되어 유죄의 멍에를 쓰지만,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 원은 ‘정당한 대가’로 둔갑하는 기이한 현실을 우리는 오늘도 목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판례의 차이를 넘어 사법부가 스스로 기득권의 방패를 자처하며 도덕적 파산을 드러낸 참담한 현장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이 두 사건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권력의 그늘에서 은밀한 유착으로 삶을 지탱해온 부모를 본 자식에게 50억 원은 뇌물이 아닌 ‘당연한 전리품’이었을 것이다. 편법이 일상이 된 환경에서 공정은 거세되고, 추악한 비정상은 ‘세상의 이치’가 된다.
반면, 권력의 칼날 아래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부모를 본 자식은 달랐다. 의사 면허 박탈과 고졸 출신 회귀라는 가혹한 처분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모습은, 부모가 고난 속에서도 지켜낸 인간적 품위와 뚝심을 배웠기에 가능한 ‘진짜 당당함’이다.
결국 한쪽은 부모의 뒷배로 챙긴 부당한 이익을 궤변으로 포장하며 숨어 지내고, 다른 한쪽은 부모의 인내를 본받아 존재 자체로 떳떳함을 증명하고 있다.
사법부의 저울이 기득권의 입맛대로 기울고 정의의 기준이 난도질당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부모의 삶을 통해 체득된 도덕적 자산은 결코 썩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두 자식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부모들이 걸어온 길이 ‘승리’였는지 ‘도덕적 파산’이었는지를 다시금 확인한다. 조희대 사법부가 흔드는 정의보다 부모의 삶이 증명하는 상식이 훨씬 더 무겁고 준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6일 선고 후 곽상도 전 의원이 제가 잃어버린 명예랑 모든 것들을 어떤 식으로 제가 보상을 받아야 될지 정말 답답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허탈하고 씁쓸한 기분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