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발전기금의 위기, 정부와 국회 책임성 강화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위기의 영화계와 영화발전기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살펴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극장 매출, 총관객수가 73% 하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2022년부터는 코로나-19 국면이 해소되기 시작하여 극장 매출과 총관객수가 소폭 반등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영화산업이 영화 입장료 인상과 OTT 시장 확장 등의 영향으로 2020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처럼 팬데믹의 후유증과 관객의 관람 패턴 다변화 등이 포개진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영화계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중앙 정부기관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1999년에 출범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다. 영진위는 2007년부터 영비법 제23조, 제25조를 근거로 시행된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입장권 가격의 3%)을 영화발전기금의 핵심 재원으로 삼았다. 이렇게 영화에 특화된 기금이 마련된 배경에는 1973년부터 공연장, 영화관, 문화재 등과 관련된 입장료에 붙던 부과금을 바탕으로 조성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이 2003년 위헌판결을 받았다는 상황이 있다. 영진위가 관리·운용하는 영화발전기금은 한국 영화의 창작·제작. 수출, 영화상영관 시설 보수·유지, 영화산업 종사자의 복지 및 인권 등의 향상, 영화 관련 단체 및 시민단체 사업 지원 등을 위해 사용된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한 마중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은 안정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2008년에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에 대한 위헌소송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조세법률주의에 부합하지 않음과 국민재산권 침해를 근거로 위헌 판결이 났던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헌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부담금관리기본법이 부과금의 존속 기한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은 징수 중단의 기로에서 정기적 징수 연장 절차를 힘겹게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발전기금의 근간을 파괴하려는 윤석열 정부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열린 첫 번째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법정부담금 91개 중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을 포함하여 30개가 넘는 부담금들을 폐지 및 감면하겠다는 2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이 갑자기 발표된 바 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 등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 (…) 부담금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국민과 기업이 부담하는 그림자 조세입니다. 국민건강 증진이나 환경보전과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가 있는 부담금도 있습니다만 세금에 못지않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부과되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부담금도 많이 숨어 있습니다. (…) 정부는 부담금의 폐지와 감면이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그동안 부담금으로 추진한 사업들의 지출구조를 효율화하는 한편 영화산업, 청년 농업인 육성과 같이 꼭 필요한 사업들은 일반회계를 활용해서라도 차질 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 경감이 하루빨리 영화 요금 인하로 이어지고, 학교 용지 부담금 폐지가 분양가 인하로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령도 신속하게 개정하겠습니다.”(<부담금 정비와 규제 유예를 통해 국민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금융지원으로 민생 활력을 높일 것> 대한민국 대통령실, 2024.3.27)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조세라는 프레임은, 긍정적 효과가 있는 부담금도 있다는 전제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법정 부담금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도한다. 덕분에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 사안은 입장권 500원 인하라는 얄팍한 선전에 은폐되었다.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징수액은 2019년에 545억 원 규모였으나 코로나-19 이후인 2022년에는 179억 원, 2023년에 260억 원 정도에 그쳤다. 이에 따라서 근래에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에 크게 의존하는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은 잔액이 40억 원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사실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은 부과금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어서 체육기금, 복권기금 등의 한시적 전입금이나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의 차입금을 통해 아슬아슬한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서 영진위의 예산은 2022년에 1100억 원, 2023년에 850억 원이었다가 올해는 734억 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2024년에 이르러 영진위의 예산이 100억 넘게 삭감되면서 지역영화 활성화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동시에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이 절반으로 줄기도 했다. 그런데 영진위의 예산이 이렇게 크게 축소된 가운데 갑자기 윤석열 정부가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라는 카드까지 일방적으로 던졌으니 불난 집에 기름까지 부은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앞서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나오듯이 정부는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을 폐지하더라도 사업들의 지출구조를 효율화하는 동시에 일반회계를 사용해서라도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반회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각종 기금 전입금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국회의 의지에 따라서 언제든지 없어지거나 크게 줄어들 수 있기에 영진위에 대한 정부의 차질 없는 지원이라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이하 입장권 부과금)도 폐지가 포함된 법정부담금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자 영화계는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출처: 영화산업위기극복영화인연대
영화발전기금 안정적 확대는 정부와 국회의 의무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73년에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설치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은 2003년에 모금제 위헌 판결에 따라서 급격한 자체 수입 감소라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2004년에 5200억 규모였던 문화예술진흥기금 적립금은 2016년에 800억 규모로까지 감소하여 기금 고갈 직전까지 갔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일반회계 500억 원과 관광 및 체육기금의 전입을 추진하면서 2018년부터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2019~2020년에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전입되던 관광기금 500억 원과 경륜·경정 수익금 87억 원 배분은 코로나-19로 관광업계와 스포츠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2021년부터 중단되었다. 또한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 대응을 위해 마련된 일반회계 500억 원도 2020년 이후로는 200~30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문화예술진흥기금과 관련한 일반회계 전입금의 감소와 관광기금 등의 순감의 사례에서 살필 수 있듯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전입금들은 기금 운용의 장기적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2024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영화의 거리에서 문체부,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역영화, 영화제 지원 사업에 대한 무분별한 삭감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의 피켓 시위가 진행되었다. 사진출처: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관 입장권 모금제는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을 운용하기 위한 핵심 재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필요성들에 의해 확대되는 영진위의 사업 규모를 생각했을 때 정부와 국회는 영화관 입장권 모금제를 지속해야 함은 물론이고 신규 재원 확보도 추진해 영화발전기금의 규모와 안정성을 키워야 한다. 2020년에 발간된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연장 및 신규재원 확보방안 연구』에서는 영진위의 신규 재원으로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 개정을 통해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징수대상을 온라인 영화로까지 확대하는 것과 영상콘텐츠 진흥에도 활용되는 방송통신발전기금 일부를 영화발전기금에 전입하는 것을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자발적 기부를 확대하기 위해 영진위가 기금 조성을 위한 기부금품을 받을 수 있는 주체임을 명시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 개정과 기부금품 모집 행위가 가능하도록 기부금품법 개정 및 이에 따른 세제지원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영화발전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대안은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충분한 여유자금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 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기에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측면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예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과거 참여했던 문화예술진흥기금 재원 확충 논의에서는 재원의 이해관계 단위들 간 갈등을 피하면서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었다. 그 방안은 체육기금이나 공공자금기금에 대한 법률에 정부가 회계연도마다 세입규모의 ~%에 해당하는 일반회계를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전입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제8조에 정부가 교통에너지환경세의 68%에 해당하는 세입을 일반회계로부터 교통시설특별회계로 전입해야 한다고 명시된 내용을 참고한 것이었다. 따라서 방송통신발전기금 일부를 영화발전기금에 전입하는 것을 추진한다면 이러한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사례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