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넘어 새로운 시간 감각 의 정치를 발명해야 [칼럼]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가?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제7차 위원회의 가 열린 18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 관련 벽보가 부착돼 있다. 2026.6.18. 얀합뉴스
미래는 더 이상 희망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 인식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고 변화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진보-보수의 이념적 틀을 가지고 미래를 구상하고 실현하기가 어렵다.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구분은 이미 낡았다. 시대 변화를 읽어내지도 적응하지도 못한다. 새로운 시간 감각으로 미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정치 담론과 모델 역시 마찬가지다.
6·3 지방선거 결과를 둘러싼 착시와 오해들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소위 ‘민주-진보’와 ‘애국-보수 진영이 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어느 쪽도 승리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묘한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은 기존 여론조사나 출구 조사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얻은 데다, 관심을 모았던 주요 지역에서의 패배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국민의힘 역시 16개 광역단체장 중 4곳,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4곳 중 4곳을 차지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거대 양당 모두 선거의 책임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상당하다.
갈등을 불필요하거나 나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책임 있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자정(自淨)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의견이 맞서고 다투는 논란(論難)의 과정은 오히려 소중하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거대 정당 내부의 권력 다툼은 볼썽사납다. 갈등의 순기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민’과 ‘이념’, ‘가치’를 앞세우지만, 실상은 서로 편가르기 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과 거기서 얻어지는 개인 이익을 우선 삼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6월 임시국회 3차 본회의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 승인의 건에 대한 가결 선포를 하고 있다. 2026.6.18. 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대편을 악마화하여 자신들의 노골적 권력 다툼을 정당화하고, 진보-보수의 이념적 틀이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로 자신들의 성찰과 정화 능력의 부족 상태를 덮어버리려 한다는 점이다. 내란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당의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를 향해 강고한 지역주의에 볼모가 된 채 헌정 유린 세력을 지지했다고 비판하거나, 투표지 부족 사태로 불거진 선거관리 부실의 문제를 의도적 부정선거의 근거로 삼아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보수 재건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이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온전히 대변하지도 못하는 데다, 이들이 주장하는 진보-보수의 틀이 정치 현실에 대한 상당한 착시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 가 이어진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2026.6.12. 연합뉴스
청년세대 보수화‧극우화 진단, 무엇을 놓치고 있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2030 청년세대의 정치 성향을 두고 말들이 많다. 1년 전 대선과 비교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 후보에 대한 청년층 지지가 늘어난 모습이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컸던 20대 여성층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20대 유권자의 57%, 30대 유권자의 60%가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해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결과를 두고 청년세대의 ‘보수화’, ‘극우화’, ‘일베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기득권 정치 세력의 뻔뻔함과 불공정한 현실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감, 온라인 등을 통한 극우 세력의 끈질긴 활동, 민주시민 교육의 부실 등을 주로 문제 삼았다. 이 과정에 청년세대에 대한 비판과 우려, 안타까움과 반성, 위로와 격려 등 기성세대의 복잡한 시선들도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는 진단과 해석의 틀 자체를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지금의 2030 청년세대는 진보-보수의 정치 이념이나 정당 정체성보다 자신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정책이 무엇인지, 어떤 정치인이 덜 위선적이고 공정한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더 큰 듯 보인다. 이들을 진보-보수의 틀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고 한계가 있다. 청년 ‘보수화’보다 ‘탈이념’, ‘탈진영’ 경향이 오히려 더 뚜렷하다.
물론 지금의 청년들이 이념 및 가치와 영향력 확대를 외면한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보수에 기반한 지금의 정치 이념과 조직 틀 자체가 청년세대의 필요와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고 낡았다. ‘청년 정치’라는 이름을 내세워 순발력 있는 청년들을 뽑아 기성 정당에 수혈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청년 시절을 보내던 때와 확연히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기존의 인식 틀과 관성적 접근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제대로 보일 것이다.
국제적 기준의 세대 구분. 흔히 MZ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 노란색)와 Z세대(1997-2011년 출생/ 보라색). 위키피디아
‘미래’가 닫혀버린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
지금 우리는 ‘현재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장·발전·진보·혁명을 지향하며 예측과 계획이 가능한 ‘열린 미래’가 정체·불안·쇠퇴·파국의 상황에서 일상화된 위험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닫힌 미래’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는 끝났다’(the future is over)는 인식이 특히 청년세대에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미래’ 인식의 상실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나타났는가? 지난 세기 개발연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인식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금 당장은 고생스럽지만 ‘보다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을 향한 집단적 염원을 ‘국가 총량적 성장 = 국민 행복 보장’이라는 공식으로 연결시켜 자원을 동원하고 희생과 헌신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압축 성장과 민주화 국면을 거치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미래’를 희망하는 낙관적 믿음 자체에 균열이 나타났다. 불균형 성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가운데,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공동체적 관계(가정, 직장, 지역사회 등)가 빠르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과 함께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가운데 고통분담”, 경쟁력 강화”, 자기계발” 담론이 확산되면서 당장의 생존 불안감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압도하게 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 ‘미래’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공부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소위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운 상황이 굳어졌고, 노동소득과 저축보다 부모 자산이 미래 보장 수단으로 더 유효해졌다. 부모 세대의 삶의 표준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한 청년들은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불만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 이생망”, 수저계급론”, N포세대” 담론이 빠르게 퍼져나간 것도 이때다. 지금 청년세대 일부에서 보이는 정치적 극단화 현상도 이런 현실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나은 미래의 삶에 대한 약속이 무너진 상태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소진시키게 된다. 일상화된 위험 속에서 잠깐만 한 눈 팔아도 낙오하고 도태될 수 있다는 존재론적 불안은 삶의 목표를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가는 것으로 바꿔 버렸다. 이런 상황에 연간 약 1만 5000 명에 이르는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려 놓고 있다. 문제는 이런 우리의 현실이 결코 국력이 약하거나 성장이 덜 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진보-보수로 구분하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념의 틀이 여전히 쓸모가 있을지 깊이 살펴볼 때가 되었다.
‘미래’ 인식의 실종을 부추기는 기후·생태 위기
오늘날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이다.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영역의 엄청난 혁신 속도가 가져다 줄 미래에 대한 희망적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는 가운데,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2026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지금 전 세계가 ‘절벽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으로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경쟁과 전쟁에서 비롯된 혼란과 분열, 오랫동안 안정을 뒷받침해 온 규칙과 제도들에 대한 위협, 지구적 공동 과제(기후, 테러, 팬데믹 등)에 대한 글로벌리더십의 부재를 들고 있다.
그런데 다가올 미래는 ‘절벽 끝’으로 더 밀려나 훨씬 암울한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 각국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는 10년 후(2036년) 세계가 ‘불안정’, ‘격동’, ‘폭풍’ 상태가 될 것이며, 미래에 예상되는 10대 리스크 중 절반을 ‘환경’ 관련 이슈가 차지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중에서 ‘기후 위기’는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최대의 위협 요인으로, ‘비상사태’로 불릴 만큼 심각성이 매우 크다. 기후 위기는 폭염, 산불,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등 생태학적 재난을 통해 미래세대의 자유와 존엄, 생존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세계기상기구(WMO)는 보고서를 통해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섭씨 1.55도 상승해 기후 재앙을 막고자 설정한 한계선 1.5도를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금 상태로는 기후 위기의 임계점은 점점 앞당겨질 것이고, 이로 인한 난민의 급증과 인구 부양 시스템의 붕괴는 민주주의, 인권, 생명, 평화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게 될 것이다.
‘제6차 대멸종 시대’(sixth mass extinction)로의 진입도 확실시된다. 야생동물 멸종 속도는 이미 100배 이상 빨라졌다. 생명이 살아가는 관계망,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생태학적 아포칼립스(apocalypse 묵시록)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명 세계의 붕괴 사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너무나 느리고 미진한 실정이다.
이처럼 기후·생태 위기는 사람들의 무기력, 우울, 체념, 상실감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미래 감각(future feeling)을 마비시킴으로써, ‘미래’ 인식의 실종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진보-보수를 넘어, 새로운 시간 감각의 정치를 발명할 때
그런데 지금의 진보-보수 구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심각하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선거 결과를 지도상에 정당 색깔로 표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전국을 파란색 또는 빨간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언론을 통해 관성적으로 뿌려졌다. 그런데 이것은 지역이 가진 다채로운 현실과 가능성을 특정 정당 색깔로 덮어버리고 낙인 찍는 매우 폭력적인 표현 방식이다. 이것은 낡고 경직된 이념적 틀과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 지역주의, 승자 독식의 선거구조가 기묘하게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모순된 현실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연합뉴스
진보-보수 이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하고 세력 대결을 하면서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내파(內破) 현상이 커지고 있다. 이념을 앞세워 편가르고 배척하며 공격하고 조롱하는 ‘혐오의 정치’, 맹목적 추종과 추앙에 기반한 ‘팬덤 정치’,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 ‘지역주의 정치’가 결합된 정치 현실은 내부적 다양성과 역동성을 질식시킨 채 지속 불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보-보수라는 낡은 정치 구도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때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진보는 변화를 말하고, 보수는 지켜야 할 가치를 말한다. 그러나 두 입장 모두 ‘지금보다 나아진 미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변화하면 더 나아진다는 믿음, 지킬 것을 지키면 더 나아진다는 믿음 모두 미래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기후·생태 위기, 경제위기, 전쟁, 기술 불안, 인구 감소, 사회적 죽임의 확대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는 인간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사용해 온 ‘시간’의 감각 자체를 뒤흔든다. 현대인 대다수는 여전히 근대적 시계 시간과 단기적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지만, 기후위기와 대멸종의 시간은 훨씬 더 장기적이면서도 폭발적이고 복합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각자도생과 사생결단식 경쟁 속에서 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에 기후‧생태 위기로 미래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도 못하고 문제 해결의 부담과 책임도 미래 세대에 떠넘기기 바쁘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는 정치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연결하는 시간 감각과 이것을 바탕으로 삶의 태도와 사회의 의사결정 기준을 바꾸는 정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간관을 통해 사회의 체질을 바꾸고 차원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정치 담론과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의 구체적 현실에서 미래 가치와 과제 실현해야
미래는 현재 이후 다가오는 시간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기후·생태 위기 역시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닥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생산, 소비, 생활양식, 사회적 선택과 정치적 우선순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재의 문제다. ‘탄소중립 2050’ 역시 25년 뒤에 달성하면 되는 목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선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과제다. 이것을 먼 미래의 목표로만 이해하면, 책임은 뒤로 밀리고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소위 지연의 정치(politics of delay)가 작동하게 된다.
대전환은 막연한 낙관이나 비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는 말을 전환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久), 막힌 것을 뚫고, 끊긴 것을 연결해 순환시켜야 하며(通), 그러려면 기존 질서에 대한 총체적 변화(가치·제도·관계·방법 등)를 만들어내야 하며(變), 그 출발은 막다른 상황에 처한 현실(窮)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기존의 성장 체제, 개발 중심의 경로 의존성, 탄소 중독과 물질 중독에서 신속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구체적으로 희망하고 기대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자정(自淨) 능력이다. 외부의 힘이나 권위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화시켜 내는 힘이야 말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문제 해결의 비결이다. 생태적 자정 능력을 높이려면 오염원부터 줄여야 하듯, 사회 역시 공동체적 신뢰 관계를 깨뜨리는 가짜뉴스, 확증 편향, 혐오와 선동의 생산·유통 행위부터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다름이 공존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갈등과 충돌을 견뎌내는 사회적 인내의 힘도 길러낼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사람들의 인식과 역할 변화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후 문제와 관련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생산과 소비, 생활양식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 부담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이겨내고 목표를 실현하려면 시민들의 폭넓은 이해와 공감, 지지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민주시민을 넘어 기후시민, 생태시민, 지구시민으로서의 인식 전환이 중요한 이유다.
미래 인식이 실종된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희망의 서사다. ‘비상사태’나 ‘대멸종’이라는 종말론적 언어가 주는 공포감은 행동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힘을 만들거나 모으지 못한다.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지금과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믿음이며, 개인과 사회의 미래, 미래세대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자각이다.
관련해서 현재 속에 들어와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예시적 정치는 제도와 시스템의 거대한 변화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먼저 실험하고 살아내는 것으로, 마을공동체운동, 사회연대경제, 풀뿌리 주민자치 활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활동들이 활성화될 때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충격과 부담을 함께 나누는 사회적 기반도 든든해질 것이다.
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 녹색국가 저자
결국 새로운 정치의 핵심은 시간 감각의 전환이다. 미래를 향한 불안과 절망을 방치, 또는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현해 가는 정치가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의 낡은 대립을 넘어, 인간과 자연,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 개인과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정치가 요구된다. 기후·생태 위기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간 감각의 정치를 발명해 내야 할 때가 되었다.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녹색국가』 저자) ecosociet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