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겁쟁이 인데 행동은 정반대 찰스 카워드 [사회혁신] 이름이 카워드(Coward), 즉 영어로 겁쟁이 라는 뜻인데 평생 그 이름값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불꽃처럼 산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찰스 조셉 카워드(Charles Joseph Coward, 1905~1976). 직업은 군인, 직함은 병참 부서 중사 (Quartermaster Sergeant)로 군대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던 하급 간부였다.
그러나 이 평범하고 투박한 보급계 사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학살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건져 올린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역사가 결코 장군이나 대통령 같은 거물들의 손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셉 카워드.(The Coward Who Was Anything But: The Remarkable Life of Charles Joseph Coward | by Saurabh Goswami | Medium)
9번의 탈출, 그리고 적군에게 받아낸 철십자 훈장
1940년 5월, 프랑스 칼레 전투에서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카워드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운 없는 평범한 병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로수용소라는 절망의 공간에 갇혀 순응할 인간이 아니었다. 카워드는 포로수용소에 도착하기 전에 호송 과정에 이미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고, 이후 수용소를 옮겨 다니는 와중에도 일곱 번을 더 감행해 총 아홉 차례 탈출 기록을 세웠다.
그의 무기는 대담함과 유창한 독일어 능력이었다. 탈출을 반복하던 와중에 독일군 부상병으로 완벽하게 위장한 카워드는 감쪽같이 독일군 야전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그는 전방의 혼란스러움을 틈타, 어이없게도 독일군 최고 권위의 철십자훈장 을 수여받는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성공시킨다. 적국 포로 신분으로 적군의 가슴에서 철십자훈장을 따낸 이 황당하고도 대담한 일화는 웬만한 블랙코미디를 능가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실화다.
카워드가 2차 대전 중 독일 철십자 훈장을 받았을 당시의 사진이 2010년 2월 3일 영국 일간 가디언 에 실렸다.
아우슈비츠 제3캠프, ‘초콜릿 신분증 거래소’를 열다
독일군에 상습 탈옥수이자 요주의 인물로 찍힌 카워드는 결국 1943년 12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제3캠프, 흔히 모노비츠 (Monowitz)라 불리는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이곳은 거대 화학기업 이게파르벤(IG Farben)이 고무와 액체연료를 생산하던 거대한 산업 노예 수용소였으며, 1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카워드는 유창한 독일어 덕분에 모노비츠에 갇힌 영국군 포로 1200~1400명을 대변하는 적십자 연락책(Red Cross Liaison Officer)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그에게 뜻밖의 무기를 쥐어 주었다. 적십자 물품을 수령하고 분배하기 위해 수용소 안팎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통행의 자유 였다. 그리고 이 작은 틈새야말로 그가 역사에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게 된 결정적 무대가 되었다.
카워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용소 기차역에 매일같이 들이닥치는 유대인 수송열차와 가스실로 향하는 인간들의 비명이었다. 그는 방관하지 않았다. 적십자에서 위문품으로 보내온 초콜릿, 담배, 통조림을 악착같이 모았다. 그리고 이를 통행증 삼아 친위대(SS) 경비병들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그가 초콜릿과 바꾼 것은 수용소 안에서 사망한 비유대인 포로들의 옷가지와 신분증이었다.
카워드는 이렇게 확보한 유령의 신분증들을 가스실로 끌려가기 직전의 유대인 수감자들에게 은밀히 넘겼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이름과 신분을 뒤집어쓰고 수용소 문을 걸어 나갔다. 초콜릿 몇 개와 담배 몇 개피로 인간의 목숨을 바꾸는, 가장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신분증 세탁소 가 아우슈비츠 한복판에서 가동된 것이다. 이 기적 같은 방식으로 그가 사선에서 구해낸 유대인의 수는 최소 4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카워드가 수용되어 있었던 아우슈비츠 대문. 대문 위에 글자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다. (The Coward Who Was Anything But: The Remarkable Life of Charles Joseph Coward | by Saurabh Goswami | Medium)
지옥의 증언자, 전범들을 단죄하다
그의 영웅적 행보는 단순히 신분증을 위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카워드는 수용소 내 유대인들이 겪는 비극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느 날 밤 한 유대인 수감자와 옷을 바꿔 입고 삼엄한 경비를 뚫은 채 직접 유대인 구역(Ghetto)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참상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악의 극치였다.
이 목숨을 건 현장 답사와 목격담은 전쟁이 끝난 후 전 세계를 뒤흔든 전범재판에서 엄청난 빛을 발했다. 카워드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모노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 영국군 포로에 대한 학대, 그리고 가스실의 정확한 위치와 전멸 작전의 전말을 낱낱이 고발했다. 그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증언은 나치의 학살기계 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기업 이게파르벤 경영진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전후에도 그의 정의 구현은 멈추지 않았다. 1953년, 나치 강제노동 생존자인 노르베르트 볼하임이 이게파르벤을 상대로 제기한 역사적인 임금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서도 카워드는 다시 한 번 증인석에 서서 생존자들의 편을 들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이스라엘 정부와 야드 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그를 유대인이 아닌 이로서 유대인을 구한 영웅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열방의 의인 (Righteous Among the Nations)으로 선정했다. 앞서 1954년에는 그의 영화 같은 일대기를 다룬 평전 《아우슈비츠의 패스포트》가 출간되었고, 1963년에는 《‘비밀번호는 용기’( The Password Is Courage)》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전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카워드가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모노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 영국군 포로에 대한 학대, 그리고 가스실의 정확한 위치와 전멸 작전의 전말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The Coward Who Was Anything But: The Remarkable Life of Charles Joseph Coward | by Saurabh Goswami | Medium)
‘아이히만의 변명’과 ‘보급계의 틈새’
여기서 오늘 우리가 깊이 곱씹어보아야 할 철학적 대목이 있다. 카워드는 세상을 움직이는 장군도, 거물 정치인도, 대단한 고위 성직자도 아니었다. 군대조직으로 치면 말단 행정직, 영웅주의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보급계 부사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악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쥔 아주 작은 권한, 즉 캠프 안팎을 오갈 수 있는 통행증 하나를 활용해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냈다.
반면, 같은 시기 카워드와 비교할 수도 없이 강력한 권한과 제도의 힘을 쥐고 있던 이들, 학살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효율적으로 열차를 배정했던 관료 아돌프 아이히만과 천재적인 기술자들은 전후 재판정에서 한결 같이 이렇게 변명했다.
나는 그저 위에서 내린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내게는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그들은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을 자처하며 자신들의 영혼을 면죄부 뒤에 숨겼다. 그러나 카워드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너무나 명징하다. 거대한 불의와 마주했을 때, 나는 힘없는 말단일 뿐”이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바로 그 가장 낮은 보급계의 자리에서도 시스템의 틈새를 찾아낸다면 사람을 구하고 역사를 바꿀 공간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직급이 낮고 권한이 작다는 것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도리어 거대조직의 감시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밀한 정의의 권한 이 숨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1960년 영국의 한 선술집에서 카워드.(getty images)
오늘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보자.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상계엄 이라는 유령 같은 단어가 갑자기 현실의 장벽을 깨고 튀어나왔던 공포의 밤을 생생히 기억한다. 헌정을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옥죄려던 거대한 권력의 폭주 속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세운 결정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통치권자들의 갑작스러운 양심선언이 아니었다. 출동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최전선의 실무자들, 즉 현장에 투입된 군인과 경찰,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과연 이 명령이 정당한가”를 고민하며 행동을 멈추었던 그 작은 망설임의 순간들이었다.
국회 담장을 넘는 시민들을 보면서도 애써 시선을 돌리거나 체포의 손길을 늦추었던 이름 없는 경찰관들, 총구를 국민에게 겨누지 않고 허공을 향해 머뭇거리던 젊은 군인들. 그들의 미세한 주저함과 거부야말로 80년 전 아우슈비츠에서 초콜릿을 건네며 신분증을 바꾸던 카워드의 은밀한 저항과 정확히 닮아 있다.
우리는 흔히 거악을 막아내고 세상을 바꾸는 영웅의 이름으로 판검사, 고위 정치인, 언론사 사주 같은 큰 자리 의 인물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 거대한 불의의 댐을 무너뜨리는 것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양심을 지켜낸 보통사람들의 작은 결심이다.
카워드.(History in Picture)
이름값과 정반대로 살았던 영웅
카워드는 전쟁이 끝난 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고, 1976년, 영국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름값과 정반대로 살았던 그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영웅은 계급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멈추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찰스 카워드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영웅은 화려한 계급장이나 높은 직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악령이 시대를 지배하려 할 때,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양심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 평범한 한 사람의 망설임과 용기가 결국 인류 역사를 구원한다.
런던 치체스터 로드 133번지에 위치한 카워드의 자택에 설치된, 그를 기리는 영국유산청 푸른 명판.(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