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대국 중국이 여전히 제조업에 집착하는 까닭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 제조업 공장.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중국의 산업발전 뒤에는 왜 후발국가들의 ‘기러기 편대’형 발전유형이 뒤따르지 않을까?
‘기러기 편대 모델(Flying Geese Theory)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산업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곧잘 인용되는 일본 경제학자 아카마쓰 가나메(1896~1974) 명명의 산업(제조업)발전 모델이다. 아카마쓰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일본 섬유산업 발전을 고찰하면서 기러기 떼는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맞춰 날아간다”고 했다. 우두머리를 따라 V자 대형을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 모습은 동아시아 제조업 확산, 발전을 설명하는 대표적 비유로 사용됐다. 먼저 산업화한 일본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일본에서 한국, 대만 같은 후발주자로 이동했다.
중국에는 없는 동아시아형 ’기러기 떼 발전모델‘
사람들은 중국의 산업발전도 이런 유형에 따라 저개발 상태의 후발 국가들 산업발전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라나 중국의 산업발전 뒤에는 기러기 떼 대형의 후발주자들 산업발전 유형이 뒤따르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1일, 존스홉킨스 대학의 슈미트로 차터지 교수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 연구원의 새 논문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들의 논문에 따르면 중국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임금 상승과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가 제조업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 발전으로 임금이 높아졌음에도 그것을 후발주자들에게 넘기지 않고 여전히 붙잡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에 독일이 중국에게 밀릴까 걱정할 정도로 고기술 고사양 산업에 진출해 선발주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에 넘겨야 할 노동집약산업까지 붙잡고 있으면서 오히려 선발주자을 압박하는 ’중국형 모델‘이라 할 만한데, 아카마쓰의 기러기 편대 모델과는 판이하다.
5월 24일 중국 동부 산둥성 칭다오 항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 2026.5.24. AFP 연합뉴스
중국에 ’기러기 떼 발전모델‘이 없는 이유
제조업 상품은 저(low)기술, 중(medium)기술, 고(high)기술 제품, 그리고 정제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 기반 제품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중국 싱크탱크인 CF-40연구소의 연구원 위페이와 궈카이의 논문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24년 사이에 세계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이 네 가지 범주 모두에서 증가했다. 두 연구원은 중국의 제조업은 모든 나라들과 경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중국의 실제 점유율이 수출 수치로 집계된 것보다 더 큰 경우들도 있다. 중국은 노동집약적 제품의 핵심 부품을 생산하고, 이 부품들은 다른 나라에서 최종 제품으로 조립되거나 가공된다. 적절한 데이터가 확보된 30개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들에서 수출되는 의류, 섬유, 가죽 및 유사 제품의 총 가치 중에서 64%가 중국에서 창출된 것이었다.
30개 개도국들 중의 중국 비중. 왼쪽 그래프는 저숙련 제품 수출비중 변화 추이. 위의 짙은 붉은 선은 그 중에서도 의류, 섬유, 가죽, 신발 제품. 오른쪽 그래프는 노동인구 비율 변화 추이. 전체적으로 저숙련 제품 수출비중은 계속 늘고 있으나 노동인구 비율은 줄고 있다. 출처: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중상주의적 압박.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거대한 규모와 불균형 성장이 그 원인
중국의 산업발전에서는 왜 기러기 대형 발전모델이 뒤따르지 않을까? 한 가지 요인은 중국이란 나라의 거대한 크기다. 개발경제학자인 란트 프리쳇은 2010년에 중국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에 인구통계학적 익룡(demographic pterodactyl)”을 더한 꼴이라고 했다 거대한 익룡이 함께 날면 V자 대형이 이뤄질 수 없다.
또 다른 요인은 발전에 시차가 생기는 중국의 불균형적 발전 특성이다. 일부 지역은 부유해졌지만 다른 지역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이런 불균형은 중국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어서,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중국적 특성은 그 규모가 다른 웬만한 나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불균형 정도가 크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둘 대비 중국 지역들의 소득수준(아래 가로=1인당 GDP/ 단위 ppp기준 1000달러)과 인구규모(오른쪽 세로/ 단위: 10억 명). 1선 지역(Tier 1)은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광둥. 2-4선 지역은 나머지 성급 지역들. Tier 1의 경우 소득수준(1인당 GDP)은 일본보다 약간 높고, 인구는 1억명에 가깝다.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Tier 3의 경우 베트남보다 1인당 GDP가 조금 높고 멕시코와 태국보다는 낮으며, 인구는 10억 명에 달한다. 1억 5천만 정도의 인구인 Tier 4는 베트남보다 1인당 GDP가 낮다.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위페이와 궈카이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4개 도시(합계 인구 8400만 명)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구매력지수ppp 기준)는 일본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가장 가난한 4개 성(4선 지역. 인구 1억 4000만 명)의 1인당 GDP는 베트남의 그것에 가깝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GDP(공식환율 기준)는 4600~5100달러, 일본은 3만 3000~3만 4000달러다. (한국은 3만 6000~3만 7000달러)
위 도표에서 보면 인구 10억 명에 가까운 중국 3선 지역(Tier 3)의 1인당 GDP(구매력지수ppp 기준)는 멕시코, 태국의 그것보다 낮고 베트남보다 조금 높다. 2억 명이 넘는 2선 지역(Tier 2)의 1인당 GDP는 말레이시아보다 낮다.
또 하나 이유는 중국정부의 중상주의 성장전략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 비교대상 5개국 노동자들은 국가간 이동이 쉽지 않다. 반면에 중국 노동자들은 (중국 국내의) 베트남과 소득수준이 비슷한 지역에서 말레이시아나 일본과 같은 소득수준의 지역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임금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면 저임금 산업의 임금을 올려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중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한때 그런 변화를 체념한 듯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내버려 뒀다면 중국 국내와 국외에서 고소득 지역이 저소득 지역들을 V자형 편대 모양으로 이끄는 아카마쓰의 기러기 대형 모델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에 우리는 전통산업을 계속해서 혁신하고 고도화해야 한다”며, 그것을 단순히 ’저급한 산업(low-end industries)‘으로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임금이 낮은 저소득 지역 노동자들이 상대적 고임금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의 자연스런 흐름을 그냥 둬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이동을 막으면 노동수요가 많고 공급이 달리는 고소득 지역 임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노동력 이동을 막아서 발생하는 그런 임금 비용 상승을 상쇄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자동화, 로봇공학 등의 기술혁신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높은 기술을 활용해 값싼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중국은 자국민 임금을 떨어뜨리기 위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산업 발전과 경제 개발의 목적이 국민 또는 인민을 더 잘 살게 하기 위해, 즉 그들의 소득수준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일반적 경험칙과 상반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썼다. 기러기 떼는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날아간다. 하지만 드론이 방해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인구를 ’익룡‘에 비유했듯이, 첨단기술을 ’드론‘에 비유했다. 요는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기러기 떼 산업발전 모델은 중국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얘기다.
누구를 위한 경제개발인가⋯서방 추월하기
좀 다른 얘기지만, 시진핑 주석 이하 공산당 관리들을 포함한 중국 정책 입안자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그 문제에까지 직접 언급하진 않고 있으나, 기사 내용으로 보아 충분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핵심은 ’인민‘이 아닌 ’국가‘의 경쟁력을 먼저 높이고 부를 늘리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덩치를 키워 (과거 중국에 치욕을 안겼던) 서방 열강들 특히 최강의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이를 명시적으로 거듭 밝히고 있기도 하다.
그때까지는 임금을 억제해 인민을 굶주리게 하는 것이 제조업 및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의 삶을 희생해서라도 국가 경쟁력부터 높이겠다는 얘기다.
1978년 개혁개방을 선도한 덩샤오핑이 1980년대 중반에 내세웠던 선부론(先富論)의 연장선상에 있다. 능력 있는 개인이나 지역이 먼저 부유해지고 난 다음에 낙오된 개인이나 지역을 도와서 그들도 함께 잘 사는 대열로 나중에 끌어 올리자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언제 어느 정도로 부유해져야 골고루 잘 사는 나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제일지도 모를 그 약속의 날을 기다리며 굶주려야 할 개인이나 계층 또는 세대들의 희생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도 없다.
옛 소련도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 건설을 내세웠지만, 소련식 사회주의 실험은 잘 사는 소수의 새로운 특권계급 ’노멘클라투라‘의 등장 속에 볼셰비키 혁명 70여 년 만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덩샤오핑의 선부론은 그래도 개발을 위한 자본 축적이 전무했던 당시의 중국 현실에서 ’조금만 참자‘며 인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어느 정도 제공해 주었지만,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미국에 도전하는 경제대국 G2로 성장했다고 자찬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에선 정당화되기 어렵다.
2020년 5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구 중 6억 명의 월 소득이 1000위안(당시 환율로 약 17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힌 리커창 당시 중국총리의 발언은 중국 안팎에 충격을 안겼다. 경제 초대국이 됐다는 중국 인구 거의 절반의 월 소득 수준이 지금도 인플레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빼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중국 정책입안자들이 첨단기술을 활용해서라도 임금을 낮은 수준에 묶어두려 하고 있다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로도 짐작할 수 있다.
개혁개방 반세기가 지나도록 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인민의 삶이 그런 지경이라면 경제개발은 왜 하는 것이며,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인민의 부와 삶이 아니라 국가 또는 군주와 일부 귀족 특권계급의 부를 불리는데 집중했던 15~18세기 유럽 절대왕정 시기의 중상주의(Mercantilism)와 현대 중국 정책입안자들이 그리고 있는 경제개발 구상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뒤집힌 ’친중론‘이 횡행하는 한국사회
인민의 삶을 희생시킨 권위주의적 개발정책이 보여주는 가시적인 성장의 성과는 적어도 단기간에는 탁월한 면이 있어서, 자본주의 종주라 할 미국의 트럼프 정권조차 그것을 흉내내려 하고 있다는 지적들을 받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제조업 부활을 외치며 날로 권위주의적인 색채를 더해 가고 있는 트럼프 정권의 그런 ’시진핑 닯기‘ 시도야말로 미국이 이미 망가지고 있는 비정상 상태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지적들도 있다. 후발주자의 개발 초기단계에서 가성비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중국식 권위주의 개발전략을 탈산업 금융자본주의 미국사회가 그 장점만을 뽑아내 모방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국은 민주화 이전 군부 개발독재 시절에 그런 개발정책의 수혜와 폐해를 맛볼만큼 봤다. 민주화는 그런 식의 개발독재 체제로는 한국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국민적 자각 속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최근 문제가 다시 불거진 스타벅스 경영진의 반동적 판매전략과 그 사회적 파장을 보건대 여전히 그것을 부정하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들 우파, 극우파둘 중 상당수는 민주화를 의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매도하면서 개발독재 시절의 성장전략으로의 회귀를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한국 ’민주화 혁명‘의 맥을 잇는 이들의 실용주의적 대중정책을 오히려 친중, 좌파, 친북으로 몰아가는 전도된 시각을 갖고 있다.
’혐중‘을 표방하면서도 중상주의적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 압축성장 전략을 예찬하며 거기에 경도돼 있는 것은 실은 우파 자신들이 아닌가.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