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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영화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을 위한 노 영화인의 송가

영화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을 위한 노 영화인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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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평론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요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작은 가방은 어깨에 사선으로 걸고,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어 다닌다. 그는 1937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90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외부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가 제작하고 감독한 다큐멘터리 에서 이제는 연골이 나가서 테니스 못 친지가 1년이 다 됐다고 말한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절대로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그는 4년 전까지 테니스를 6경기, 3세트 풀로 뛰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대명사가 써내려간 극장의 역사 이 다큐멘터리는 2023년부터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김동호 이사장이 제73회 베를린 영화제 개막식(한국과 달리 공식적인 의식을 별도로 하지 않고 개막작을 상영하고 감독을 소개하는 간단한 순서로 진행된다)을 가는 장면부터 나온다. 그는 베를린 영화제에 2022년을 제외하고 26년간 참석해 왔다. 그가 개막식 레드카펫을 걸어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에 들어가는 모습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가슴이 짠한 일이다. 그는, 투덜거리는 건 아니지만, 예년과 달리 극장이 한 층 더 올라가게 바뀌었다며 약간 힘들어한다. 그의 이 기묘하고 특이한 다큐멘터리 는 알려진 대로 극장에 대한 기록만이 아니다. 이건 어쩌면, 평생을 시네필로 살아 온, 한 노인의 자전적인 인생 회고록과 같은 영화이다. 그의 육신은 이제 스러져 가고 있다. 한 사람이 자기 회고록을 영화로 찍는다는 것에는 약간의 단서 조항이 있다. 영화에 대한 자기 공로가 어느 정도 공인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김동호는 차고 넘친다. 한국 영화계에 그가 끼친 공로는 부산국제영화제 하나만으로도 역사적 기념비를 세울 수 있을 정도다. 이 영화는 마치 임권택 감독이 찍은 같은 것이다. 임 감독도 평생 102편의 영화를 찍었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겠다며, 자신과 주변 얘기를 담아 찍은 극영화가 이었다. 조승우 주연의 이 영화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흥행에서 크게 실패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과거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보거나 듣지 않는다. 지나치게 주관적이라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도 흥행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그러나 영화는 종종, 아니 대다수가 그 자체로 역사적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극장에 대한 역사물을 넘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려고 한다.   임권택 감독 인터뷰. 영화 장면 캡쳐 다양한 극장들 섭렵하기, ‘셀럽급’ 영화인들 만나보기 이 다큐에는 새로운 지식과 시선을 주는 내용이 많다. 예컨대 일본의 ‘미니 시어터 운동’ 같은 것이다. 일본에 ‘유로 스페이스’나 ‘이미지 포럼’이란 이름의, 이른바 다양성 극장이 존재하며 일본 극장 문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세이브 더 시네마’와 우리의 ‘세이브 아워 시네마’는 거의 같은 것이지만 활동의 성과 면에서 일본이 앞서고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LFS 콜리세움’ 극장은 지어진 지 100년이 넘었다는 것도 알려 준다. 말레이시아를 가면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JAFF(족자-넷팩 아시안 영화제, Jogja-NETPAC Asian Film Festival) 전용관(우리의 영화의 전당 같은 곳)에서 만난 가린 누그로호 감독이 인도네시아 최초의 극장을 소개하는 걸 볼 수 있는 것도 이 다큐에서다. 한국의 예술영화전용관 중에 대전에 ‘소소아트시네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경기도 파주의 명소였던 ‘명필름 아트센터’는 이 다큐에 ‘출연’한 이후 폐관됐다. 대만의 ‘광점 타이페이 극장’은 20여 년 전에 허우 샤오시엔이 재개관을 후원한 것이다. 잘 몰랐던 극장들을 보는 것, 이 다큐의 흥밋거리이다. 재미가 있다.   김동호 전 이사장이 국내 영화계의 오랜 명망가인 만큼 이 영화에는 ‘셀럽급’의 영화인들이 줄기차게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대만 감독 차이밍량, 그리고 배우 양귀매 등은 주저 없이 그와 인터뷰를 나눈다.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창동 감독은 나와서 아예 수다스럽게 자신이 언제 극장을 처음으로 갔는지 얘기한다. 감독 김지운은 자신이 달변이 됐다는 것을 이 다큐를 통해 보여준다. 감독 장준환-배우 문소리 부부, 배우 탕 웨이-감독 김태용 부부의 커플 인터뷰는 이 다큐 외에는 잘 보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박찬욱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영화관이 뭐냐는 질문에 ‘여행을 떠나는 배, 다른 은하계로 가는 우주선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심지어 원로 배우들인 신영균, 고은아, 문희의 합동 인터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다큐가 거의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배우 신영균은 1928년생이고 현재 98세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인터뷰에서 그는 얼굴에 뭔가 바르고 싶어 한다. 카메라에 찍히기 전에 가졌던 배우의 오랜 습관 때문이다. 그런 장면은 슬쩍 웃음을 짓게 한다. 고은아 씨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곱다’.   배우 신영균 고은아 문희. 영화 장면 캡쳐  한국 영화계를 뜻하는 고유명사 ‘미스터김’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 극장 관계자들은 자신의 극장 경험에 대해 ‘고백’한다. 언제 극장에 처음 갔고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영화와 극장에 대한 ‘첫 경험’을 얘기한다. 일본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는 자신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을 봤을 때 영화관에 영원히 있고 싶을 만큼 좋았지만 그래도 중간에 여지없이 잠이 들었었다, 고 말한다. 이런 고백들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에 친밀감이 없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들이다. 김동호는 부산국제영화제 일을 할 때나 그 일을 그만뒀을 때나 온 세계의 영화제를 다니며 영화인들을 만나고 또 만나고 해 왔다. 세계 영화인들은 김동호를 ‘미스터김’이라 부른다. ‘미스터김’은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계 자체를 말하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되어 왔다. ‘미스터김’이라는 명칭과 그것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세계적 위상은 국가가 만들어 준 것도, 영화계가 만들어 준 것도 아니다. 순전히 김동호 본인 스스로가 쌓아 온 이미지이자 이름값이다. 영화인들이 김동호에게 존경심을 갖는 것,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이유는 그가, 한 개인의 노력이 집단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사회와 국가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있어 어마어마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산증인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지금은 없어진 대한극장이 나오고 폐관된 서울(시네마)극장 자리가 보인다. 서울 종로3가에서 서울극장과 함께 트라이앵글로 불렸던 단성사, 피카디리의 모습이 나온다. 다큐의 뒷부분에 임권택, 정지영 등 원로급 감독의 인터뷰가 배치된 것도 상당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김동호 옹 역시 처음 장면과 달리 자꾸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 찍힌다. 인터뷰에서 정지영은 말한다. 감독은요. 영화를 어디서 상영해도 상관없어요. 극장이 사라진다 해도 감독의 자세는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동호와 정지영이 대화를 나눈 곳은 피카디리(지금의 CGV) 옆 건물 2층의 한 카페, 그 옛날 장윤현 감독의 에서 한석규가 사라 본의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 s Concerto)’를 듣던 곳으로 보인다.   박찬욱 인터뷰. 영화 장면 캡쳐 영화의 미래 어둡지 않다”는 노(老) 영화인의 혜안  혹은 고집 미래형 감독들, 독립영화 감독들(윤가은 김대환 한준희 등)의 인터뷰가 다큐 후반부에 배치돼 나온다. 그리고 왜 안 나오나 싶었던 봉준호도 나온다. 영화 말미는 노(老) 영화인이 지닌 극장의 미래에 대한 걱정, 영화의 미래에 대한 긴장 같은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결코 죽지 않는다, 는 식의 순진한 고집마저 느껴져 오히려 서글퍼진다. 사람이 노인이 되면 혜안이 열린다고 한다. 김동호 옹은 어쨌든 영화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봉준호의 입을 빌려 얘기하려 한다. 후세대인 우리는 그저 믿고 경청할 일이다.   기획과 연출은 김동호 스스로 했고 일부 촬영도 했지만, 후반작업의 제작비를 지원한 사나이 픽처스의 한재덕 대표( 등)와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한 프로듀서 권영락, 김영, 한선희 등 후배 영화인들의 노력과 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음악은 조영욱이 맡았다. 다큐멘터리 는 죽을 때까지 극장과 영화를 사랑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같은 작품이다. 한 세대의 영화문화는 이렇게 흘러가는 법이다. 다른 한 세대의 영화문화는 또 이렇게 다가오는 식이다. 그 애절한 기록이 보고 싶다면 이 다큐를 권하는 바이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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