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5년 내다보기: 경제 불황 가운데 달라진 지속가능성의 관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림) 내연기관 신규판매 금지 정책에 대한 국내 자동차 산업 근로자의 인식/ 그린피스
지난 2021년, 그린피스는 국내 자동차 산업 근로자 11만50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수행했는데요. 응답자의 94.3%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라고 답했고, 신규 내연기관차량 판매금지에 동의하는 응답자도 82.1%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응답자의 89.3%는 ‘미래차 전환으로 인해 고용 축소가 우려된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결과는 오늘날,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경제불황에 직면한 가운데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과연 기업의 ESG전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이후 ESG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환경 전환이나 다양성과 같은 주요 ESG어젠다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기업 ESG조직을 축소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불황이 찾아오고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선다고 해서 지속가능경영의 시대가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위기론은 과거에도 여러 번 제기된 바 있습니다. 당장 ESG의 등장배경만 보더라도 사회적책임(CSR) 중심의 지속가능경영활동이 재무적 가치로 연결되지 못하자 경영계에서 이에 대한 한계를 지적했고, 이에 대응해 ESG라는 개념이 대두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가능경영의 방향성이 변화한 것이죠.
그러나, 글로벌 상황이 급변하면서 ESG 또한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지속가능경영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갈까요?
환경에서 경제⋅사회로… 변화하는 이해관계자 관심도
그동안 ESG에서는 사회(S)보다는 환경(E) 측면이 강조되어왔다./ChatGPT 생성 이미지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3가지 요소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사실 환경적 측면이 크게 강조되어 왔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탄소중립 이행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졌고 기업 입장에서도 친환경 사업이 미래 먹거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회(S) 요소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양성 및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이 중요 요소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은 상대적으로 기업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이 아닌 근로자나 지역주민, 소비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환경 중심의 지속가능성 전략은 가시적인 이익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특히 최근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환경이나 다양성과 같은 장기적, 추상적 어젠다보다는 나의 생계와 관련된 이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죠.
이와 관련된 통계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예를 들어 작년 10월, 퓨리서치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기후변화대응 정책이 경제에 해를 끼치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한 결과, 34%의 응답자만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으며, 30%의 응답자가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 34%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기후변화정책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ESG열풍이 불었던 지난 2020년, 환경분야가 최우선 정책과제라고 답한 미국 국민이 64%에 달했던 것에 대비하면 굉장히 대비되는 수치입니다.
또한 갤럽이 작년 1월부터 4월까지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는 환경 이슈가 순위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2019년, 환경 문제가 미국인의 관심 이슈 5위에 들었던 것에 대비하면 관심도가 명확하게 줄어든 것이지요. 반면 퓨 리서치와 갤럽의 설문결과를 살펴보면 일자리, 경제침체, 소득 불평등 등의 경제⋅사회 이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ESG 움직임 또한 커지고 있는 모양새 입니다. 이번달 초, ESG열풍의 선도주자였던 블랙록 마저 넷제로자산운용사연합(NZAM)을 탈퇴했고, 지난 2년간 미국에서 안티ESG관련 정책 발의 건수는 무려 90%나 증가했습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트럼프와 공화당이 바라보는 지속가능성은?
취임후 첫 행정명령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CBS뉴스 유튜브 채널
어찌보면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자리나 지역경제 활성화 문제에 있어 명확한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제조업 부활’ 정책을 내세웠고,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행했던 저개발 지역 경제활성화 정책 ‘기회특구(Opportunity Zone)’ 확대를 예고한바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정책의 핵심이되는 리쇼어링(Reshoring)은 한국기업을 포함한 비(非)미국기업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있지만, 제조업의 쇠퇴를 바라보는 일부 미국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속가능개발의 핵심 어젠다가 되었습니다.
실제, 최근 학계에서는 리쇼어링을 지속가능개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주로 리쇼어링과 SDGs 8번(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9번 (산업, 혁신, 사회기반시설), 12번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을 연결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리쇼어링이 일자리 창출 뿐만 아니라 인프라 개선이나 사회적 교류를 촉진해 지역사회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는 과거 러스트벨트(Rustbelt)의 핵심 산업이었던 철강, 자동차 등의 주요 제조 산업 리쇼어링과 지원 정책에 집중했고, 이는 경합주였던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등에서 대선 승리를 달성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기회 특구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정한 8600여곳의 저소득층 지역에 투자할 시 투자자에게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역 불평등 해소와 경제활성화에 대한 해법으로 내놓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해당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리는 편이지만, ‘지방소멸'이 전세계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만한 부분입니다. 때문에 민주당의 다음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 또한 “기회구역과 같은 지역투자 활성화 정책이 지역경제 개발의 중추가 될 수 있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바 있습니다.
(그림)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발전용 태양광 용량 비교 추이/Enerwrap
조금 더 범위를 넓혀 공화당 진영의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목할점은 반ESG 운동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가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빠른 태양광 에너지 설치 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24년 3월 텍사스의 발전용 태양광 설치량이 캘리포니아를 넘어섰고, 미래에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텍사스를 비롯한 공화당 우세지역이 친환경 어젠다에 완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친환경 투자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은 공화당 우세지역입니다. 미국 정책전문연구기관 E2는 IRA정책이 지원한 청정에너지 사업의 60%가량이 공화당 우세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일자리의 68%가 공화당 지역에서 창출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공화당 진영은 이러한 친환경 산업 투자를 환경 이슈가 아닌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존의 화석연료산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병행해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죠. 실제 친환경 산업이나 IRA정책에 대한 공화당 의원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일자리, 지역경제 활성화, 값싼 에너지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같은 키워드들이 대부분이며 환경에 대한 발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ESG 선도주자에서 공격대상이 되어버린 빅테크 기업…
대중들이 원하는 지속가능한 기업이란?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이해관계자들은 기업들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오랜 기간 반ESG진영의 주장을 봐온 와중에 가장 설득력 있게 와닿았던 자료가 美 조세 및 경제정책 연구소(Institute of Taxation and Economic Policy∙ITEP)가 발간한 미국 주요기업의 세금납부 데이터였습니다. ITEP는 2018년 아마존, 나이키 등 ESG의 선도주자라고 평가받는 주요 기업들이 조세회피를 통해 미국 정부에 세금납부를 일절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이들은 “세금납부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들이 ESG경영에 힘쓴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며 기업 ESG활동의 이중성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의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로버트 에클스(Robert Eccles) 옥스퍼드대 경영학 교수 또한 “공정한 양의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ESG의 성과를 내세우는 기업들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며 “이는 글로벌 기업의 ESG를 비판하는 反ESG주의자들과 내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강하게 목소리를 낸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세금'이라는 키워드를 오늘 날 대중들이 관심있어 하는 경제와 사회(S) 키워드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기업이 지역경제 침체나 근로자 처우 같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도외시 한 채, ESG경영에 힘쓴다고 해서 사회구성원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러한 논리에 의해 최근 공격받고 있는 것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입니다. 아마존,구글, 애플 등의 기업들은 기후변화대응 부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왔고, 많은 이들이 해당 기업들을 ESG선도주자로 평가하기도 했지요. 글로벌 금융사의 ESG펀드들 또한 수익률과 지속가능성, 양쪽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빅테크 기업의 주식을 대거 매수한 바 있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30여개국의 아마존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UNI Global Union 트위터
하지만 최근 미국 IT업계에서 대규모 감원 움직임이 거세지고 애플의 코발트 공급망 아동노동 연루 의혹, 아마존의 노동자 집단 파업과 같은 노동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AI열풍으로 인해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탄소배출까지 늘어나게 되었지요. 이에 빅테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활동이 과연 사회에 실제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행동주의투자자들은 빅테크 기업들의 노동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거나 주주제안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사회에 대한 높은 기여도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태양광 기업 퍼스트 솔라(First Solar)는 미국의 분열된 정치 상황 가운데, 양쪽 진영 모두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일반적인 태양광 기업의 경우 중국산 폴리실리콘이나 웨이퍼를 사용해 중국의존도가 굉장히 높고 강제노동 등의 인권리스크에 노출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퍼스트 솔라는 카드뮴 텔룰라이드를 활용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정책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였죠. 또한 앨러바마, 오하이오, 루이지애나 등 지역경제개발이 필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장부지를 선정하고, 지역사회 교류활동에 적극참여하면서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재생에너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솔라를 트럼프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속가능경영활동은 사실 기존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환경 부문에서 전과정평가(LCA)를 통해 가치사슬 전반의 환경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순환경제전략 추진하는 것처럼, 사회 분야 에서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파악하고, 이에 따라 행동전략을 수립하면 되는 것입니다.
올해 말, 프레임워크 베타버전 발간을 예고한 불평등 및 사회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askforce on Inequality and Social-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ISFD)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TISFD기준 제정에 참여하고 있는 인권단체 시프트(Shift)의 대표 캐롤라인 리스(Caroline Rees)는 “TISFD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이해관계자 영향이 높은 요소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가절감이나 당일배송 등 노동인권 리스크가 높은 요소를 주요 비즈니스 요소로 활용할 경우, 근로자나 협력사의 인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명시해야하는 것이죠. 또한 ‘기회’ 차원에서도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이 지역사회나 근로자에게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명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 전과정 평가(Social Life Cycle Assessment⋅S-LCA)에 관심을 갖고 기업의 가치사슬이 주요 이해관계자와 지역사회에 어떠한 영향이 끼칠 수 있는지 공부하고 있는데요. 우리 기업 또한 변화하는 지속가능성의 흐름 가운데 활로를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임팩트온 송선우 선임연구원
임팩트온 송선우 선임연구원은 분석 기사를 통해 ESG 공시, 프레임워크, 트렌드 등 글로벌 ESG 주요 현안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E커머스 ESG전략 사내 세미나’, SK경영경제연구소의 ‘탄소중립 사례연구’ 등 ESG 관련 리서치와 국제 표준 분석 등의 연구작업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