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세리머니 떠올리게 하는 포클랜드는 아르헨 땅 [뉴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준결승에서 잉글랜드를 2-1로 꺾어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말비나스(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땅이다 펼침막을 펼쳐 보이며 서포터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6.7.15 AP 연합뉴스
말비나스(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땅이다. (Las Malvinas son Argentinas)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펼쳐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준결승에서 리오넬 메시의 도움 둘을 앞세워 잉글랜드를 2-1 극적인 역전승으로 따돌린 뒤 위 문구를 새긴 펼침막을 펴보였다. 결승에 진출한 기쁨보다 1982년 4월부터 6월까지 영유권을 둘러싸고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벌여 74일 만에 패배를 인정해야 했던 잉글랜드에게 수모를 갚아줬다는 감격이 더 컸다. 해서 FIFA로부터 징계받을 것을 뻔히 알고도 이런 정치적 의사표현을 감행한 것이다.
정규 시간 90분쯤에 역전 골이 터지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코 광장에 몰려나온 축하 인파도 이런 감격을 웅변하는 것 같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흥분과 열광을 마음 속에 간직한 우리로선 2012년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결정전을 승리한 직후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 쓴 종이를 펼친 것을 떠올리게 한다.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 동해안에서 480㎞ 떨어져 있는 섬들을 일컫는다. 스페인어권에서는 말비나스(Malvinas)라고 부르고 표기한다. 1690년 영국인 존 스트롱이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작 먼저 정착한 이는 1764년 프랑스 왕국의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었다. 프랑스 생말로 출신이었기에 프랑스어로 일 말루인 (Ile Malouines)이라고 하던 것을 스페인어로 옮긴 것이 말비나스 다.
2년 뒤 프랑스 정착민들은 이 섬의 통치 권리를 스페인에게 판다. 그 후 50년 동안 영국과 스페인은 섬을 쪼개 각각 다스렸다.
1766년 영국인들은 프랑스 정착촌의 존재를 모른 채로 정착촌을 세웠다. 프랑스 정착촌을 넘겨받은 스페인과 영국이 1771년 전쟁 일보 전까지 갔다. 영국은 1774년, 스페인은 1811년에 각각 경제적인 이유로 철수했고, 그 뒤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섬의 통치권이 자국에 귀속한다고 1826년 공식 선언한다.
1828년에 아르헨티나는 독일인 상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섬을 관리한다. 그런데 이 상인은 멋대로 어선을 나포하고 해적질을 일삼아 문제였다. 1833년 영국은 해적 행위를 트집 잡아 해역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전함을 파견해 포클랜드 제도를 군사력으로 점유한다.
아르헨티나의 결승 진출 확정 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코 광장에 몰려나온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2026.7.15 AP 연합뉴스
그 뒤 100년 넘게 영국은 이 섬을 지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946년 이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했다. 1965년 유엔총회는 식민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결의 2065/XX)를 채택했다. 영국계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이 섬의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지배를 반대했다.
1973년 아르헨티나가 이 섬 영유권을 다시 주장했고, 평화적인 해결을 권고한 유엔 결의에 따라 영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이 진행되지 않자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 을 찾겠다고 압박했고, 외교적 갈등이 격화하자 다음달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회복 하겠다며 침공한 후 짧게나마 점령했다.
이 섬이 탐나 영유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독재 정권이 내부 문제를 외부 위기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레오폴도 갈티에리 정권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정치 혼란, 인권침해 비판을 잠재우려고 군사적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심지어 갈티에리는 승리하면 대대적으로 선전에 이용하고, 패배하면 언론을 통제해 패전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1만㎞나 떨어진 영국 사람들은 이 섬을 놓고 왜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영국 외교부는 포클랜드 제도가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와 교역하는 데 골칫거리라고 여겼다. 실제로 영국 외교부는 1965년 유엔이 두 나라 정부에 협상할 것을 권유하자 아르헨티나에 양도할 준비까지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쓰잘 데 없는 섬을 수복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 총리는 달랐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여왕을 닥달해 갈티에리와 맞서게 했다. 여왕은 아들 앤드루 왕자를 전장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대처 총리가 전쟁을 승인하자 여왕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영국군은 어센션 섬에 전초기지를 구축하고 이곳에서 함대를 출항케 해 전쟁 수행에 나섰다. 74일 동안 교전을 벌여 655명의 아르헨티나 병사들, 특히 이 제도 출신 3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영국군 병사는 255명이 희생됐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패전을 인정하며 전쟁은 허망하게 끝났다.
영국군이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보여준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갈티에리는 언론을 통제해 전쟁이 자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거짓 선전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스페인 월드컵을 다녀온 마리오 켐페스, 디에고 마라도나 등 대표팀 선수들이 자국 언론과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은 영국이 이겼다는 것을 발표했다. 갈티에리는 실각했고 여러 차례 대통령이 바뀐 끝에 레이날도 비그노네를 끝으로 군정이 종식됐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지만 아르헨티나 군정 종식의 계기가 됐다는 점은 돌아볼 대목이다.
빅토리아 비야루엘 아르헨티나 부통령은 엑스(X)에 게시된 글에 그냥 경기가 아니었다”며 자국군 병사들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다. 그들은 그것들을 경기장에 가져오는 것을 금지했고, 우리가 그것들을 피와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것은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다’ 펼침막이다.”
준결승 대결을 앞두고 그는 이번 대결이 침입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리오넬 스칼로니 대표팀 감독은 축구와 정치를 뒤섞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사실 이건 축구 경기다. 특히 몇 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둘을 섞을 수는 없다. 우리 역사에 매우 슬픈 시기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현실이다. 세계 다른 곳에서도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전쟁을 비판한다. 물론 우리는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 경기니까 혼동하면 안 된다 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2014년 슬로베니아와 친선경기를 치르기 전에도 똑같은 문구가 새겨진 펼침막을 들어 보여 FIFA는 아르헨티나축구협회에 2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16강전에서 이집트를 3-2로 물리친 뒤 말비나스 제도와 마라도나, 메시를 함께 언급한 응원가를 관중과 함께 불렀다. 이런 역사적 뿌리를 알면 훨씬 의미있게 들렸을 것이다.
15일(현지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2-1로 꺾은 뒤 결승 진출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여학생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오벨리스코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뛰지 않는 사람들은 잉글랜드인들 이란 구호를 외치며 깡충깡충 뛰며 즐거워했다. 2026.7.15 연합뉴스
연합뉴스의 김선정 통신원이 전한 데 따르면 이날 이 나라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킥오프 30분을 앞두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가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오벨리스코 광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자동차들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렸고, 거리는 폭죽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날 대결을 앞두고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신의 손 과 FIFA 선정 세기의 골 인 60m 환상 드리블 득점포를 앞세워 잉글랜드를 무너뜨린 장면을 떠올렸다. 이 나라에서는 1986년 월드컵 결승 상대(독일)가 어느 팀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잉글랜드를 꺾은 8강전은 모두 기억한다 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회사원 마르코스(34)는 경기 전에 결승전은 져도 축구니까 받아들일 수 있다 면서도 하지만 잉글랜드전만큼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역사와 자존심이 걸린 경기 라고 말했다. 경기 뒤 거리에서 만난 루시오(20)는 이번 경기는 그냥 축구가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과도 연결된 경기 라며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는데 승리해서 정말 행복하다 고 말했다.
빅토리아(18)는 잉글랜드와의 역사를 생각하면 매우 특별한 경기 라며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인 만큼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뤄졌다 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리엘(46)은 이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늘 경기는 결승전보다 더 중요했다 며 이제 단 한 경기만 남았다. 반드시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믿는다 고 말했다.
눈시울을 붉힌 아나(65)는 메시는 이미 카타르월드컵 우승으로 우리 국민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물했다 며 결승 결과와 상관없이 그는 영원한 우리의 영웅 이라고 말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