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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너도 나도 찾는 관악산 연주대…그 간절함의 유래

너도 나도 찾는 관악산 연주대…그 간절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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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문자가 왔다.  오늘 관악산 일대에 등산객 과밀로 인해 안전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등산객 여러분께서는 안전거리를 유지하여 산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천시] 잠깐, 이게 재난 문자라고? 태풍도 지진도 아니고,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위험하다는 알림이라니. 나는 그 문자를 두 번 읽었다. 어쩌면 이태원 참사 이후 달라진 우리의 일상 속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소셜미디어(SNS) 갈무리 두쫀쿠 가 유행이라더니 버터떡 이 뜨고, 그러는 사이 진짜 열풍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관악산 연주대였다. 인생이 안 풀릴 때 관악산으로 가라 는 역술가의 방송 한마디가 소셜미디어(SNS)를 타자, 취업을 앞둔 청년들, 이직을 고민하는 직장인들, 아들 입대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이 줄지어 관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일 낮에도 정상석 앞에 100미터 줄이 늘어섰고, 인증샷 한 장을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는 풍경이 보통이 됐다. 심지어 외국인 등산객도 늘어나 관악산역에는 산행안내센터가 생기고, 등산 장비까지 대여해주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나는 이 열풍 뒤에 담긴 어떤 쓸쓸함을 외면하기 어렵다. 산에 올라 소원을 비는 사람들, 그들의 소원 속에는 단순한 유행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고물가와 취업난,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관악산 정상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연주대 돌탑 앞에 조용히 손을 모은 청년들의 뒷모습은 그래서 뭉클하고 애잔하다. 나 역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연주대에 세 번 올라 지금의 불안한 요소를 날려버리기 위한 소원을 빌어야할까보다. 다만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사람이 몰린 만큼, 산 곳곳에 라면 국물이 버려지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마당바위에는 래커로 낙서가 남겨졌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원을 비는 명당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분별하게 양심이 버려진 현장이 되고 있다. 기운을 받으러 올라간 산에서 정작 그 기운을 스스로 훼손하고 내려오는 모순이 씁쓸하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관악산은 언제부터 이런 산이었을까. 오늘의 열풍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 산이 품어온 천 년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서기 677년, 신라 문무왕 17년이다. 화엄종의 대가 의상대사가 관악산 정상 부근 절벽 위에 암자를 세우고 좌선을 시작했다. 관악사(冠岳寺)의 시작이자, 훗날 연주대가 되는 의상대(義湘臺)의 출발이다. 통일신라는 이 산을 단순히 도 닦는 도량으로만 쓰지 않았다. 나중에 고고학 발굴을 통해 통일신라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유물 2500여 점이 쏟아졌고, 관악산이 군사 요충이기도 했음이 확인됐다. 기도와 군사, 그 두 가지가 처음부터 이 산에 함께 깃들어 있었다. 이름이 의상대에서 연주대(戀主臺)로 바뀐 것은 고려가 무너지던 시절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강득용, 서견, 남을진, 조견 같은 고려의 충신들이 관악산에 은신했다. 그들은 이 암자에 올라 개성 방향을 바라보며 망한 임금을 그리워하고 통곡했다. 주군을 연모하던 자리 라는 뜻에서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모인 곳, 그것이 연주대의 출발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도 이 산의 기운을 두려워했다. 무학대사가 한양 터를 잡으면서 경고했다. 남쪽의 관악산은 불꽃이 타오르는 화성(火星) 형국이다. 그 화기가 경복궁을 향해 곧장 뻗쳐온다. 하지만 정도전은 임금은 남면해야 한다 는 원칙을 고수했고, 결국 경복궁은 남향으로 지어졌다. 무학대사는 탄식했다.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200년 후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그로부터 딱 20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경복궁은 불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이야기는 지금도 관악산 풍수 서사의 핵심으로 전해진다. 조선은 이 화기를 막기 위해 여러 장치를 뒀다. 광화문 앞에 물을 다스리는 상상의 동물 해태상을 관악산 방향으로 세웠고, 숭례문의 현판을 다른 성문과 달리 세로로 썼다. 오행에서 예 (禮)는 불(火)을 뜻하는데, 불꽃 형상의 글자를 세로로 세워 관악산의 화기와 맞불을 놓겠다는 의미였다. 궁 앞에는 남지(南池)라는 연못도 팠다.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는 관악산 정상에 몸소 올라 숯 여섯 가마를 만들어 묻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조선 왕실이 500년 내내 관악산 앞에서 소원을 빌고, 기도를 올리고, 화기를 달랬던 셈이다.   관악산 자락에 깃을 튼 서울대학교 정문. 문화일보 갈무리 근대에 들어서도 이 산의 기운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했다. 풍수 전문가들은 서울대학교가 혜화동 일대에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겨온 것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관악산에서 가장 강한 두 산줄기의 맥이 서울대 방향으로 내려가 그 끝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을 갈고닦는 사람들의 문기(文氣)로 화산의 불기운을 순화시킨다 는 해석이다. 수긍이 되든 안 되든, 관악산은 그렇게 늘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천 년이 훌쩍 넘게 이 산은 왕조의 두려움을, 충신의 눈물을, 평민의 간절함을 받아왔다.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사연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관악산은 늘 거기서 그것을 묵묵히 받아왔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간절함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 이틀째다. 관악구의회 기초의원을 꿈꾸는 이들, 서울시의회 광역의원 후보들, 관악구청장을 바라보는 이들, 그리고 조금 더 먼 눈으로 서울시장을 꿈꾸는 이들까지. 저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꿈을 품고 이 산을 오른다. 올 들어 연주대에 세 번을 채 오르지 못해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소원의 산이 어느새 선거의 산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을 비웃고 싶지 않다. 연주대 앞에 손을 모으는 것이 그들뿐이겠는가. 다만 이것 하나는 묻고 싶다. 그 자리에서 빌었던 소원이 내가 당선되는 것 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당선되어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 이었는지. 천 년 동안 관악산은 간절한 자의 손을 들어줬다. 충신의 눈물도, 왕조의 두려움도, 청년의 소망도 외면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관악산의 기운은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기초의원부터 구청장, 시의원, 그리고 서울시장을 향한 꿈까지, 과연 관악산은 누구의 간절함에 화답할까. 산은 알고 있을 것이다.   관악산 연주대 불교신문 갈무리  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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