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2500년 전에 외친 아무것도 하지 마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런 철학자가 있었다. 이름도 불분명하고, 태어난 해도 불분명하고, 죽은 해도 불분명하고, 실존 여부조차 불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책은 인류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문헌이 되었다. 이름하여 노자(기원 전 6세기 무렵 활동). 이쯤 되면 아, 있는 척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크게 존재하는 법을 몸소 보여줬구나 싶다.
명나라 때 화가 장루가 그린 노자 모습(위키피디아)
노인장 으로만 알려진 수수께끼의 현인
노자는 중국 춘추시대(기원 전 약 770~481년) 초나라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며, 본명은 이이(李耳), 자는 보양(伯陽)이었다고 한다. 주나라 왕실 도서관의 기록관으로 일했으며, 공자(기원 전 551~479년)와 만나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노자(老子) 라는 이름 자체가 늙은 선생 , 노인장 이라는 뜻의 존칭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2500년 동안 떠받들어 온 인물의 이름이 사실상 할배 선생님 이었던 셈이다. 나름 친근하지 않은가.
노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전기 자료는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기원 전 145~86년)이 쓴 『사기(史記)』에 실린 전기다. 그러나 사마천 자신도 이 철학자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심지어 사마천의 전기에는 노자라고 불린 인물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역사가가 전기를 썼는데 주인공이 세 명이라니, 이쯤 되면 전기가 아니라 추리소설이다.
태어난 해 역시 마찬가지다. 사마천은 노자는 150년을 살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200년이 넘었다고도 한다 고 적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기원 전 6세기에 활동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일부 역사가들은 기원 전 5~4세기, 즉 전국시대(기원 전 약 475~221년)에 살았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없다. 노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모양이다.
노자는 솥 앞에 앉아 있었고, 오른쪽 상단에는 태상노군상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위키피디아)
도덕경, 5천 자로 세상을 뒤집다
노자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책이 바로 『도덕경』이다. 원래 제목은 『노자』였고, 나중에 도와 덕의 경전 이라는 뜻으로 격상되었다. 당나라 황제 현종(685~762년)은 733년, 모든 관리가 집에 도덕경 한 부씩을 갖추도록 칙령을 내리고 과거시험 필수과목으로까지 지정했다. 대통령이 모든 공무원은 집에 이 책을 두라 고 명령한 셈이다. 지금 한국에서 이런 명령이 내려지면? 아마 뉴스 댓글이 폭발할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한나라(기원 전 202년~기원 후 220년) 시대에 정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후 당나라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깊이 기여했다. 오늘날 이 책은 전 세계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철학자·정치인·기업인·심지어 군인들도 탐독하는 기묘한 책이 되었다. 아무것도 억지로 하지 마라 고 가르치는 책이 이렇게 열심히 읽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노자도 하늘에서 피식 웃고 있을 것이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모습, 원나라.(위키피디아)
핵심 사상은 무위, 자연, 그리고 도
노자 사상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도. 세상 만물이 그로부터 나오고 그리로 돌아가는 근본 원리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도덕경의 첫 구절이 바로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책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요즘 정치인들도 이 수법을 자주 쓴다. 제 말의 뜻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쪽은 감동 대신 허탈감을 준다.
둘째, 무위. 억지로 하지 않음 이다. 도덕경은 자연스러움 과 무위 를 통해 도가 표현된다고 가르친다. 이 개념들은 해석에 따라 깊은 정신적 의미를 갖기도 하고, 윤리적·정치철학적 기여로 강조되기도 한다. 무위는 게으름 이 아니다. 강물이 억지로 바위를 뚫으려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결국 바위를 깎듯이, 인위적 강압 없이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나는 무위를 실천 중 이라며 소파에 누워있는 이들을 노자는 분명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자연. 인위를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자는 지구와 다른 존재들을 착취하는 자기과시가 아니라, 조화롭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사는 것을 주장했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보다 생명의 상호연결성을 강조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으로 치면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앞서간 생태철학자였던 셈이다.
E. T. C. 워너의 『중국의 신화와 전설』에 묘사된 노자의 모습.(위키피디아)
역사에 미친 영향, 황제도, 반란군도 노자를 읽었다
노자의 영향력은 방대하다. 당나라(618~907년) 황실인 이씨 가문은 노자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내세워 정통성을 강화했다. 성씨가 같다는 이유였다. 조선에서 왕씨가 전주 이씨를 족보에 올리는 격이랄까. 정치적 족보 세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통인가 보다.
역사 전반에 걸쳐 노자의 사상은 반권위주의적 운동들에 두루 받아들여졌다. 황제도 읽고, 황제에 저항하는 이들도 읽었다는 말이다. 지배자는 백성을 자연스럽게 다스리라 는 말을 통치 정당화로 읽고, 피지배자는 강압적 권력은 도에 어긋난다 는 말을 저항의 근거로 읽었다. 같은 책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읽을 수 있다니, 노자는 참으로 공평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애매하게 쓴 것일 수도 있다. 위대한 철학의 비결은 모호함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올 때도 도가 사상이 그 통로가 되었고, 이후 선불교의 형성에도 노자의 흔적이 깊이 배어있다. 현대 학자들은 도교가 불교 발전에 미친 영향을 쉽게 인정한다. 공자, 장자(기원 전 약 369~286년), 그리고 노자. 이 셋이 중국 정신문명의 삼각축을 이루었고, 그 파장은 한반도와 일본, 동남아 전역으로 퍼졌다.
말레이시아 페락 핑시엔시 사원의 노자 조각(위키피디아)
한국과 노자,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서 잠깐, 오늘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노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고 수십 개의 제후국이 서로 싸우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왕이 있고 질서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힘 있는 자들이 멋대로 날뛰던 혼란의 시대였다. 낯설지 않다. 요즘 한국도 어딘가 비슷한 풍경 아닌가.
노자는 그 혼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스리려 들수록 더 어지러워진다. 위에서 억지로 틀을 짜고 법을 만들고 명령을 내려봤자, 백성들은 그만큼 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에서 어떻게 울림을 주는가.
첫째, 정치의 과잉. 지금 한국 정치는 노자가 경고한 인위의 과잉 상태다. 법을 만들고, 위원회를 설치하고, 특검을 하고, 특검을 막고, 탄핵을 하고, 탄핵을 막고.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는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데, 정작 민생은 어렵다. 노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멈춰라. 그 에너지를 흘려보내라.
둘째, 지도자의 덕목. 노자가 꿈꾸는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덕경 17장의 말씀,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아래 백성들이 그저 있구나 하고 알 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얼굴을 비추고, 치적을 홍보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혈안인 정치인들. 노자 기준에서는 낙제점이다.
셋째, 물의 지혜. 노자가 가장 자주 비유로 든 것은 물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다투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결국 가장 굳은 것을 뚫는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실업자, 농촌노인들, 이들이 바로 물처럼 낮은 곳에 고여 있다. 노자의 시각에서 보면, 그 낮은 곳이 가장 강한 곳이 될 수 있다. 아직 그 가능성이 터지지 않았을 뿐이다.
넷째, 과속의 문제. 한국은 세계가 놀란 압축성장 의 나라다. 수십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노자라면 물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 여유, 자연, 어울림. 빠르게 달려왔기에 놓친 것들이 지금 우리의 저출산·고령화·사회단절·정신건강 위기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 산둥성 둥핑현 고분에서 발견된 서한 시대 벽화로, 공자(왼쪽 두 번째)와 노자(왼쪽)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위키피디아)
할배 선생님 의 위로
사마천에 따르면, 노자는 오랫동안 주나라 왕실에서 일하다가 결국 부패한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은둔의 길을 택했다. 서쪽 관문을 지나며 떠나려 할 때, 관문지기가 그의 가르침을 글로 남겨달라고 청했다. 노자는 5천여 자의 책을 쓴 뒤 관문을 넘어 사라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노자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는지 모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러나 그가 남긴 5천 자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혼돈의 춘추시대를 살며 억지로 하지 말라 고 외쳤던 노인장. 이란 전쟁, 여야 대결, 경제 불안, 기후위기로 뒤숭숭한 오늘날 다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절실한 독서 시간일지도 모른다.
물처럼 낮게, 그러나 결국 바위를 뚫듯이.
중국 취안저우 북쪽, 칭위안산 기슭에 위치한 노자 석상(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