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레벨 설득 못하면 공시만 남는다…기후 시나리오 분석, 경영 테이블에 올리려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ESG 실무자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경영진을 움직일 것인가 다. 탄소 데이터를 모으고 보고서를 내지만, 정작 경영진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ESG팀이 작성한 기후 리스크 보고서도 대부분 공시용 자료 로 분류돼 실질적인 투자나 사업 전략과는 괴리가 있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활용 방식이다. 많은 기업이 외부 데이터를 참고해 업계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점수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런 평가 중심 접근으로는 배출권 가격이 올랐을 때 영업이익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적용되면 수출 원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가 없다.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이 간극을 메우는 도구다. 단순한 공시 요건이 아니라, 기후 변수가 사업에 미칠 재무적 영향을 경영의 언어 로 번역하는 전략 체계다.
기후 시나리오 분석의 방향과 실무 해법을 듣기 위해 신언빈 ERM 코리아 파트너를 만났다. ERM은 2017년 TCFD의 시나리오 분석 기술문서 작성에 주 저자로 참여하며,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 체계 수립에 핵심 역할을 해온 글로벌 리스크 컨설팅사다.
ERM Korea 신언빈 파트너
Q. 실무자들이 기후 시나리오 분석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많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위험과 기회가 비슷한 수준으로 나열돼 있다. 이는 ESG 실무자들이 자사의 사업 전략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나리오 분석은 공시를 위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사업 전략의 일부로 접근해야 한다. 전략팀, 영업팀, 구매팀과 활발히 소통하고, 그 결과를 경영진에게 전달해 기후 변수를 사업 전반에 반영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재무적 영향 산정이다. 기업들은 CSRD 같은 공시 기준에서 재무적 영향을 요구하지만, 명확한 방법론이 없다 보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하지만 재무적 영향 산정은 리스크의 심각성을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Q. 재무적 영향 산정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재무적 영향은 리스크의 ‘무게’를 구분하는 핵심 지표다. 어떤 기업에게 손실 50억원은 경영 전체를 흔드는 위기지만, 글로벌 기업에겐 그보다 훨씬 커야 유의미한 리스크로 인식된다. 기업 규모와 재무 구조에 따라 위험의 심각도가 달라지는 이유다.
이를 정확히 산정하려면 평소 리스크 관리 체계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를 잘하는 기업들은 주요 변수들이 자사 재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환율에 따라 매출과 원가, 현금흐름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그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기후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어떤 리스크를 포착했는지, 그에 대응하기 위해 실제로 어떤 투자와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후 리스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공시했다면, 그 근거 역시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Q. ESG팀이 모든 분석을 다 해야 하나.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ESG팀의 역할은 시장과 규제의 요구사항을 파악해 적절한 부서에 연결하고, 그 결과를 취합하는 데 있다. 일종의 PMO(Project Management Office) 역할이다.
시나리오 분석의 실무 영역도 각 전문성이 있는 부서에서 담당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 관리팀이, 재무 영향 산정은 재무팀이 맡는 식이다. 실제로 금융기관들은 기후 리스크 관리를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운영하고 있다.
환경, 인권, 다양성 등 ESG의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다. 도입의 필요성과 전략적 방향은 ESG팀이 제시하되, 실행은 연관 부서에서 끌어가야 한다. 이런 역할 분담이 명확해져야 ESG가 형식이 아닌 실질로 작동한다.
Q. 글로벌 투자자들은 시나리오 분석을 실제로 활용하고 있나.
글로벌 상업은행과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투자 심사 시 시나리오 분석 결과를 필수로 요구한다. 투자하려는 사업의 물리적 위치나 시장 변화를 고려해 투자 타당성을 판단하는 핵심 도구로 쓰인다.
예컨대 특정 지역에 공장을 지을 때, 그 지역이 물리적 기후 피해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시나리오가 악화됐을 때와 현 수준을 유지했을 때의 리스크 차이를 비교하고, 필요한 시설 투자나 대응 방안을 미리 포착한다.
경제 시나리오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저탄소 경제로 전환될 때 해당 사업이 지속 가능한지, 혹은 과거 지향적인 고탄소 집약 사업인지 판단한다. 투자자들은 이런 분석 없이는 큰 자금을 움직이지 않는다.
Q. 최근 ESG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정치 상황이다. 미국 정치권이 ESG 투자 합법화를 지연시키면서, 자금이 오히려 유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제출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나치게 야심찬 목표를 제출했지만, 이제는 저탄소 경제 전환 속도와 각국 상황을 고려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추세다.
다만 이를 두고 전체적인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글로벌 어디에도 없다. 현실적 조정일 뿐,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Q. 당장 CBAM이 내년부터 본격 의무화된다. 국내 기업들의 준비 수준은 어떤가.
철강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종은 그나마 준비가 되어 있다. 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된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고, 수출 시 탄소비용 전가 가능성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비교적 진행돼 있다.
반면 자동차 부품이나 건설 같은 산업은 직접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준비가 늦다. 문제는 경영진의 인식이다. ‘이번 규제도 곧 완화될 것’이라며 적당히 버티거나, 다른 기업들의 눈치를 보며 남들이 움직일 때 따라가면 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알고 따라가는 것과 준비 없이 따라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규제가 시행되면 모두가 같은 룰을 적용받는다. 그때 가서는 경쟁력을 만들 수 없다. 미리 대비하고 신시장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만이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
Q. 전환 리스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나.
전환 리스크는 탄소 규제와 시장 변화가 우리 사업의 비용 구조를 어떻게 흔드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출발점은 자사 사업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후 관련 운영비용과 투자비용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아야 정책 변화나 탄소 가격 상승이 재무에 미칠 영향을 계산할 수 있다.
배출권 비용,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대응 투자 등 주요 항목을 파악해야 시장 규제 변화의 영향을 정량화할 수 있다. 공시에서 내부 탄소가격을 설정하고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정량화를 위해서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원 수준으로,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는 감축 투자나 전환 결정을 이끌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정부는 제4차 배출권 할당계획(안)에서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을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시장에서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출권 공급이 줄고 비용 부담이 커지는 만큼, 기업들은 앞으로 탄소비용을 실질적인 경영 변수로 반영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이해해야 기후 리스크를 경영진이 공감할 수 있는 재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Q. 물리 리스크와 전환 리스크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물리 리스크는 대부분 기업이 잘 안다. 허리케인, 홍수 같은 사건은 직관적이고, 정해진 기준도 있다.
반면 전환 리스크는 실무자들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동종업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참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환 리스크야말로 기업 고유의 사업 구조를 반영해 분석해야 의미가 있다.
외부 지표는 업종 평균 비교에는 유용하지만, 우리 회사만의 리스크는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원가팀, 구매팀, 전략팀, 영업팀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 사업 기준으로 직접 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각 부서가 기후 비용의 실체를 공유하게 되고, 그래야 경영진에게 올라가는 보고도 설득력을 갖는다.
Q.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다룰 예정인가.
기후 시나리오는 공시를 자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대기업 ESG 공시 담당자들도 어려워하는 영역이다. 오는 12월 3일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산업별 접근법과 실무 적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시나리오 분석이 왜 기후 공시에 필요한지, TCFD와 IFRS S2, CSRD는 왜 이 방법론을 요구하는지도 설명할 예정이다.
ESG 실무자들이 전사 KPI를 설계하고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 언어 로서 기후 시나리오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 12월 3일 라운드 테이블 참가 신청 링크(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