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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네 차례 결혼으로 사다리 오른 베스 오브 하드윅

네 차례 결혼으로 사다리 오른 베스 오브 하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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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는 운명이 아니다, 다만 사다리가 있을 때의 이야기 결혼은 사랑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16세기 잉글랜드에 그 말에 이렇게 답한 여자가 있었다. 결혼은 자본이다. 그녀는 누구인가, 전설의 흙수저전설 엘리자베스 하드윅(Elizabeth Hardwick, 1527경~1608). 별명은 베스 오브 하드윅 (Bess of Hardwick). 잉글랜드 더비셔(Derbyshire)의 별 볼 일 없는 중소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하드윅(John Hardwick, ?~1528)은 베스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유산은 쥐꼬리만 했고, 집안 배경은 더더욱 보잘것 없었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 이런 집안의 딸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였다. 결혼. 그것도 잘 하는 결혼. 베스는 그 하나의 길을 네 번이나, 그것도 매번 더 높이 올라가는 길로 택했다.   엘리자베스 하드윅.(위키피디아) 네 번의 결혼, 네 번의 신분 상승 첫 번째 남편은 로버트 바를로(Robert Barlow, 1529경~1544). 베스가 열 두서넛 살 무렵이었다. 바를로는 병약한 소년이었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유산은 적었지만 과부라는 신분이 생겼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과부는 법적으로 재산을 단독 소유할 수 있었다. 베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두 번째 남편, 윌리엄 세인트 로(William St Loe, 1518경~1565). 이번엔 훨씬 나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부유한 젠트리였고,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1603) 여왕의 궁정에서 근위대장을 맡고 있었다. 베스는 이 결혼으로 궁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인트 로가 죽자 그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세 번째 남편, 윌리엄 캐번디시(William Cavendish, 1508~1557). 사실 이 남편은 두 번째보다 먼저였다.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의 수도원 해산 때 부를 쌓은 관료였다. 베스는 그를 설득해 자신의 고향 더비셔에 채스워스(Chatsworth)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이 건물이 훗날 잉글랜드 최고의 귀족저택 중 하나가 된다. 캐번디시가 먼저 죽었고, 베스는 빚과 자녀 여섯을 떠안았지만 동시에 채스워스라는 자산을 손에 쥐었다. 네 번째 남편, 조지 탤벗, 제6대 슈루즈베리 백작(George Talbot, 6th Earl of Shrewsbury, 1528경~1590). 이제 베스는 백작 부인이 됐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잉글랜드에서 가장 막강한 귀족 가문 중 하나의 안주인. 그러나 이 결혼은 마냥 달콤하지 않았다. 슈루즈베리 백작은 잉글랜드 여왕의 명령으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Mary, Queen of Scots, 1542~1587)를 무려 15년 동안 가택 연금 형식으로 감시해야 했다. 베스와 메리는 처음엔 친하게 지내며 함께 자수를 놓았다. 그러다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유 중 하나는 베스의 손녀 아르벨라 스튜어트(Arbella Stuart, 1575~1615)가 왕위 계승 후보로 거론되는 복잡한 정치상황 때문이었다.   1550년대 엘리자베스 하드윅.(위키피디아) 그녀가 쌓은 것들, 돌과 벽돌과 권력 베스는 건축에 집착했다. 아니, 집착을 넘어 건축으로 권력을 표현했다. 채스워스 저택을 새로 지었고, 오울코츠(Owlcotes) 저택을 지었으며, 노년에는 자신의 고향 하드윅에 하드윅 홀(Hardwick Hall)을 지었다. 이 건물은 16세기 잉글랜드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창문을 크게 냈는데, 이 때문에 동시대인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드윅 홀, 벽보다 창이 많다네(Hardwick Hall, more glass than wall). 창문은 당시 부의 상징이었다. 베스는 자신의 부를 온 동네에 투명하게 보여주는 집을 지은 것이다. 풍자인지 자랑인지 모를 그 집은 지금도 영국 국가유산청(National Trust and English Heritage) 소유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재산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다음으로 잉글랜드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흙수저 시골지주의 딸이, 과부가 되고 또 과부가 되면서, 그런 명성을 누린 것이다.    하드윅 홀(National Trust and English Heritage)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 우리에게 베스 는 있는가 자, 여기서 잠깐 한숨 돌리고 현재 한국을 들여다보자. 베스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첫째, 제도가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제도를 뚫는가. 베스는 16세기 봉건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이 재산을 소유하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법적 틈새를 최대한 활용했다. 당시 잉글랜드 과부법은 여성에게 예외적인 법적 권리를 줬다. 베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가. 법은 있는데 현실이 막혀 있다고, 제도는 있는데 문화가 안 된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베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틈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 둘째, 인맥은 자본이다. 베스가 단순히 결혼을 잘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궁정 인맥을 쌓고, 그 인맥으로 자녀들은 고위 귀족가와 연결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른바 학연·지연·혈연을 욕하면서도 그게 없으면 안 되는 구조를 개탄한다. 그러나 베스의 전략은 단순 연줄 의존이 아니었다. 그녀는 능동적으로 인맥을 설계했다. 차이는 거기에 있다. 셋째, 자산을 돌 에 새겨라. 베스는 유동자산이 아니라 부동산과 건축물에 재산을 고정했다. 뺏기기 어렵고, 눈에 보이고, 후대에 남는 것.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부동산에 집착하는 심리와 묘하게 닿아 있다. 물론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베스는 자산을 쌓는 과정에서 능동적 행위자였다. 지금의 많은 이들은 이미 굳어버린 자산구조에 눈을 감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것이 슬프다. 넷째, 여성권력자에 대한 시선. 베스는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후대에도 탐욕스럽고 야심 찬 여자 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같은 전략을 남성이 썼다면 입지전적 인물 이 됐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유사한 이중 잣대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하드윅 홀.(위키피디아) 그녀는 왜 지금도 유효한가 베스 오브 하드윅은 1608년, 80세를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평균 수명을 두 배쯤 산 셈이다. 그녀가 세운 하드윅 홀은 지금도 더비셔 언덕에 서 있고, 그 큰 창문으로는 지금도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역사는 종종 위대한 왕이나 정치가를 기억한다. 그러나 베스처럼 주어진 구조 안에서 그 구조를 뒤흔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더 실용적인 교훈을 준다. 제도를 탓하기보다 제도의 빈틈을 찾아라. 관계를 자원으로 보되, 그것을 착취가 아니라 설계로 접근하라. 그리고 자신이 쌓은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겨라. 물론 그녀의 방식이 모두 본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철저히 자기 가문과 자녀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고, 메리 스튜어트와의 관계에서는 정치적 냉혹함을 보였다. 그러나 16세기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 그 제한된 수단으로 그토록 높이 올라간 사람이라는 점에서 베스 오브 하드윅은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우리는 베스에게서 독하게 살아남는 법 을 배운다. 하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할 지점도 명확하다. 부의 축적이 곧 삶의 목적이 되었을 때, 그녀의 말년은 가족 간의 소송과 고독으로 점철되었다. 성(城)은 남았으나 사람은 떠났다. 이 문장은 부동산 신화에 목매는 현재의 한국 사회가 곱씹어봐야 할 뼈아픈 대목이다. 베스 오브 하드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성벽에는 어떤 글자를 새기고 있느냐고, 그 성 안에는 진정으로 온기가 흐르고 있느냐고 말이다. 당신도 베스처럼 나만의 성 을 짓고 싶은가? 혹시 그 성의 벽에 가로막혀 이웃을 잊고 있지는 않나?    하드윅 홀 앞에 서 있는 김성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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