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노르웨이의 진짜 보통선거를 일군 사람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913년 6월 11일, 노르웨이 의회는 만장일치로 여성 보통선거권을 통과시켰다. 뉴질랜드가 1893년에, 핀란드가 1906년에 이미 여성 투표권을 줬다고? 하지만 노르웨이야말로 독립 주권국가로서는 세계 최초로 남녀 모두에게 완전한 보통선거권을 부여한 나라였다. 뉴질랜드는 영국 자치령,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 속국이었다. 온전한 독립국으로서 이를 해낸 건 노르웨이가 처음이다.
더 놀라운 건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7년 전인 1886년, 같은 의회에서 여성 참정권 안건이 44대 77로 부결됐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 같다.
노르웨이 국기 (위키피디아)
여자가 투표하면 괴물이 된다던 주교
1890년 노르웨이 의회. 보수당 헤우흐(J.C. Heuch) 주교는 단상에서 경고했다. 여성의 투표는 신의 뜻에 어긋나고, 성경에 반하며, 여성의 본성을 거스른다 고. 그는 투표하는 여성을 매춘부 에 비유했다. 여자는 남자 일도 못 하고, 여자 일도 안 할 것이다. 그럼 뭐가 되나? 성별 없는 기형 괴물이다.
주교는 여성 참정권이 가정 붕괴, 도덕 퇴보 를 가져올 거라 예언했다. 2026년 현재, 그 보수당은 여성 총리를 배출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헤우흐 주교 (위키피디아)
27년 싸운 여자, 지나 크로그
지나 크로그(Gina Krog, 1847~1916)는 1885년 노르웨이여성참정권협회를 만들고 평생을 바쳤다. 그녀의 전략은 영국의 과격한 여성참정권 운동과 달랐다. 단계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먼저 1901년 일정 소득 여성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얻었다. 1907년엔 국회의원 선거권으로 확대했다. 영리한 점은? 부유한 보수 여성을 먼저 포섭해 여성 투표는 좌파 혁명 이라는 보수파의 공포를 잠재웠다는 것이다.
1910년 지방선거에서 완전한 여성 보통선거를 이뤘고, 1913년 6월 11일 드디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모든 성인 여성이 투표할 수 있게 됐다. 크로그는 말했다. 우리가 이길 거라곤 의심 안 했지만, 승리가 이렇게 완벽할 줄은 몰랐다.
지나 크로그 (위키피디아)
첫 여성 의원과 남극 탐험대의 만남
안나 로그스타드(Anna Rogstad, 1854~1938)는 교사이자 여성운동가였다. 1911년 노르웨이 최초 여성 의원(대리의원)이 됐다. 방청석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의회 건물 밖까지 몰렸다. 닷새 뒤 그녀는 첫 연설에서 국방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모든 갈등은 중재로 해결해야 한다 는 이유였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12년 7월,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의 남극 탐험대 대원들이 의회를 방문했다. 떠날 땐 여성의원이 없었는데, 돌아오니 여성이 의회에 앉아 있었다. 대원들은 안나 로그스타드와 열띤 대화를 나눴다. 남극점만큼 놀라운 일이었을까?
안나 로그스타드 (위키피디아)
1905년 독립이 준 기회
노르웨이는 1814년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1905년까지 스웨덴과 연합왕국을 이뤘다. 1905년 완전 독립은 새 나라 설계의 기회였다. 이미 1898년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남자만 투표하는 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일까? 많은 노르웨이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독립 후 노르웨이는 급속한 개혁을 단행했다. 의료보험, 하루 10시간 근무, 주당 48시간 노동 등이 법제화됐다. 그리고 1913년 여성참정권까지. 새 나라는 새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노르웨이 문장 (위키피디아)
만장일치의 비밀
1913년 표결 때 모든 정당이 이미 여성참정권을 당론에 포함했다. 어떻게?
첫째, 단계적 접근이 효과를 봤다. 1901년부터 일부 여성이 투표했지만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
둘째, 핀란드가 1906년 여성의원 19명을 선출했다. 노르웨이가 뒤처질 수 없었다.
셋째, 여성운동가들이 똑똑했다. 1905년 독립 당시, 프레드리케 크밤(Fredrikke Qvam, 1843~1938)은 30만 여성 서명으로 독립지지 청원을 냈다. 여성도 애국자임을 증명했다.
1913년 6월 11일, 주요 신문 아프텐포스텐 은 이 소식을 짧은 기사로만 다뤘다. 논란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었다.
프레드리케 크밤 (위키피디아)
그 후,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1913년 법이 통과됐지만 실제 여성의원은 1922년에야 나왔다. 카렌 플라토(Karen Platou, 1867~1956)라는 건축가 출신 보수당 의원이 처음이었다.
1981년 그로 할렘 브룬틀란(Gro Harlem Brundtland, 1939~)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1986년 그녀의 내각은 18명 중 8명이 여성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 여성학자 힐데 다니엘센은 평가한다. 참정권에선 앞서 있었지만, 그 외엔 자랑할 게 많지 않았다. 1920~60년대 노르웨이는 오히려 보수화됐다. 여성은 집으로 돌아갔다. 진짜 변화는 1970년대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 왔다. 1978년 낙태법과 양성평등법이 통과됐다.
카렌 플라토 (위키피디아)
한국은 어떻게 배울 것인가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첫 총선에서 여성도 투표했다. 노르웨이보다 35년 늦었지만 세계적으론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한국 국회의원 300명 중 여성은 60명을 넘나든다. 20%정도다. 노르웨이는 40%가 넘는다.
노르웨이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점진적이되 끈질기게. 크로그는 28년을 싸웠다. 1885년부터 1913년까지. 그녀는 1916년 사망했는데, 여성의원 당선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씨앗은 자랐다.
둘째, 작은 승리를 축적하라. 1901년 지방선거 일부 투표권, 1907년 제한적 국회의원 선거권, 1910년 지방선거 보통선거권, 1913년 완전한 보통선거권. 한 번에 다 얻으려 하지 않았다.
셋째, 교육이 기반이다. 로그스타드는 교사였다. 교육받은 여성이 많아질수록, 반대 논리는 약해졌다.
넷째, 상징이 중요하다. 2021년 노르웨이 의회는 로그스타드 동상을 의회 앞 광장에 세우기로 했다. 한국 국회 앞에는 누가 서 있는가?
지구본의 초록색이 노르웨이 (위키피디아)
2026년 한국, 우리의 과제
1890년 보수 주교는 여성투표권이 도덕 퇴보 를 가져올 거라 했다. 2026년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이 이뤄진 나라다. 도덕이 퇴보했나? 더 나아졌다.
한국의 국회의원 비율, 기업 임원 비율, 대학교수 비율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다. 참정권이 있다고 평등이 아니다. 진짜 싸움은 거기서부터다.
노르웨이는 1913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 여성은 여전히 주방에 갇혀 있었다. 법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노르웨이가 1913년에 한 일은 단순히 투표용지를 쥐어준 게 아니었다. 이 나라는 남자만의 것이 아니다 라는 선언이었다. 1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같은 선언을 할 준비가 됐는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 110년 전 노르웨이의 이야기가 2026년 한국에 어떤 운율로 들릴지,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1814년 노르웨이 제헌의회, 오스카 베르겔란트 그림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