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드러내기도 한다. 공직은 자리에 맞는 능력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특히 보훈처 소속 인사라면 역사 인식과 민주주의 이념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한다.
독립기념관 이사회가 김형석 관장의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 취임 1년 5개월 만에 내려진 사실상의 ‘퇴장’ 명령이다. 해임 사유를 살펴보면 구차함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독립기념관을 사적 공간처럼 사용하고, 규정을 어긴 채 외부 종교 인사를 불러 예배를 진행했으며, 수장고 출입 규정을 위반하고,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확인됐다. 이쯤 되면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착각한 것 아닌가 싶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노골적인 운영 행위보다 더 근본적인 역사관의 왜곡에 있었다. 김 관장은 임명 초기부터 친일·뉴라이트적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안익태와 백선엽을 미화하며 ‘명예회복’을 주장했고, 광복절을 폄하하며 건국절을 앞세웠다. 나아가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일본 국적이었으니 일본인이라는 식의 논리까지 설파했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독립’을 기념하는 기관의 수장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관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 관장의 해임은 지나치게 늦었고,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독립기념관만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정부 주요 직책 곳곳에는 같은 유형의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법적 보호막을 걸친 채 인권, 감사, 사법 감시 등 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을 점유하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을 보자. 그는 ‘내란 주범’의 방어권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하면서 인권위의 정치적 중립을 스스로 훼손했다. 성소수자 관련 사안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음에도, 위원장은 그 본령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았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언행은 더 가관이다. 직원 폭언, 무례한 태도, 반(反)인권적 처신이 공공연히 거론되어 왔다.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인권을 다루는 자리에 있는 현실은 코미디를 넘어 비극이다.
감사원의 유병호 감사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감사는 권력 감시의 최후 보루다. 그런데 유 감사위원은 특정 정치 권력과 보조를 맞추며 감사 절차와 법규를 어기는 방식으로 감사원의 중립을 훼손해왔다. 그 결과 감사원은 견제 기관이 아니라 ‘정치 공작’의 행동대장으로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리에 필요한 철학도, 감당할 자질도 없으면서 권력의 비호 아래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런 인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한, 국가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제도적 방패를 무기 삼아 해임도, 사퇴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사안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내란 정권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라는 민주주의적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시스템은 끊임없이 개선돼 왔다. 그러나 자격 없는 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부패는 균열처럼 스며들어 시스템 전체를 순식간에 붕괴시킨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고름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조직과 시스템은 야금야금 썩어 들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