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반도체 단지 앞세운 원전 확대 경계한다 [환경] 이재명 정부의 신규 원전 4기 증설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이 브레이크 없는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전남 영광(한빛)과 울산 울주(새울)의 기존 부지를 활용해 공기를 7년으로 단축하겠다고 공언하더니, 급기야 경북 영덕을 신규 대형 원전 2기 부지로, 부산 기장을 소형모듈원전(i-SMR) 부지로 전격 선정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김성환 장관은 광주전남권에 추가 원전건설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의 급증, 광주 반도체 단지 조성 등 첨단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미래 전력 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감당할 대안은 오직 원전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이재명대통령의 전격적인 변화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본질이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첫째, AI 전력 수요가 원전 확대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기술적 맹점이다. 둘째, 전기가 남아돌아도 송전망이 없어 가동을 못 하는 계통의 모순이다. 셋째, 이 모든 국가 백년대계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직접 묻지도 않고 밀실에서 결정한 반(反)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울산 새울원자력본부 새울원전 3,4호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AI 신화 에 숨은 부실한 전제와 논리적 모순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보급 등으로 미래 전력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 예고하고 있지만, 이는 기술 변화의 역동성을 무시한 채 오직 원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짜맞춰진 주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실제 글로벌 AI 산업은 정부의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초기의 막대한 전력 소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초저전력 AI 반도체 칩을 개발하고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최적화하여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기술은 스스로 전력 소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정부는 과거의 비효율적 데이터 를 고정해 두고 원전만이 필수적(?)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전의 안전성을 위해 설정된 본질적 특성인 경직성 이다. 원전은 일단 한 번 가동하면 출력을 미세하고 빠르게 조절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겠다며 원전의 탄력운전(출력 조절) 을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원자로의 스트레스를 높여 위험성을 극도로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출력 저감에 따른 경제성 저하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원전의 안전 가치를 스스로 훼손해 가면서까지 신규 원전을 짓겠다는 것은 완벽한 자기모순이다.
이미 전기가 남아도는 대한민국의 역설
대한민국의 전력 시스템은 이미 전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잉 공급과 경직성 때문에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먼저 일상이 된 원전 출력 제어가 문제다. 봄·가을처럼 전력 수요는 적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을 때, 전력 계통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원전의 가동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 제어 가 이미 일상화되었다. 지난해 원전 출력제어는 37회로, 전년(3회) 대비 무려 12.33배 급증했다(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출자료).
태양광 발전이 급증했지만 이를 다른 지역으로 보낼 송전망이 부족한 구조적 한계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 전력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수치를 공개한 이들이 이율배반적으로 그러므로 원전이 더 필요하다 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진단이다. 계통이 이미 포화 상태이기에 출력제어가 급증한 것이지, 원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전기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원전 전기가 너무 많이 남아 전력망이 터지기 직전인 것이 숨겨진 진실이다.
또하나의 기술적 기만은 송전망조차 없는 맹목적 건설이다. 새로 지은 원전에서 전기를 만들어도 이를 소비처로 보낼 송전망(전선) 이 없다. 당장 가동을 앞둔 새울 3, 4호기조차 송전망 건설이 미비하여 전력 계통 신뢰도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인프라 대책도 없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영덕·영광 원전 증설은 전력 시스템 전체를 블랙아웃(대정전)의 위험으로 몰고 갈 뿐이다.
한편 부산 기장이 SMR(소형 모듈 원자로) 부지로 낙점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기존 고리원전 인프라와 송전망이 이미 갖춰져 있다 는 점이 꼽혔다. 이는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특정 지역에 원전 리스크(위험)를 영구적으로 몰아 쌓아 가겠다는 발상이다.
수십조 원의 세금을 신규 원전에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 향상과 수요 관리, 저장 기술(ESS) 및 계통 보강에 투자하는 것이 주권자의 혈세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미 와이오밍주 캐머러 지역의 미국 기업 테라파워 첨단 SMR 건설현장. SK와 SK이노베이션이 투자해 2대 주주다. 2026.6.4 [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목적의 전도ㅡ국민이 아닌 원전 생태계 카르텔을 위한 폭주
그렇다면 기술적 모순과 계통의 한계를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원전 증설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의 지적처럼, 그 속내는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원전 산업 생태계(기자재 업체, 설계 및 연구기관, 전문인력)를 유지해야 한다 는 특정 집단의 이익 독점에 있다.
단지 산업 생태계를 먹여 살리기 위해 원전을 짓는다면, 이번에 선정한 영덕과 기장의 원전이 완공된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생태계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지역에 원전을 지어야 하고, 원전을 지었으니 다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는 영속적인 굴레에 빠지게 된다. 전력 수요가 있어서 원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원전 건설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원전을 짓는 기형적인 구조다. 그 끝에는 영구 처분장조차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과 천문학적인 사후 처리 비용이라는 무거운 짐이 오롯이 주권자와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는다.
산업의 이해관계에 국가의 미래를 저당 잡힌 정부는 결코 주권자를 대변하는 정부라 할 수 없다. 특히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후손들에게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해외 선진국이 증명한 주권의 무게ㅡ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대만
세계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원전처럼 국가의 운명과 안전이 걸린 중대 사안은 철저히 국민의 직접적인 의사 표시를 통해 결정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 츠벤텐도르프 원전을 100% 완공해 놓고도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런데 단 0.94%p 차이로 원전 반대(50.47%, 찬성 49.53%p)로 나오자, 정부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을 감수하고 원전을 단 한 번도 가동하지 않은 채 폐기했다. 경제적 효율성이나 관료의 고집보다 주권자의 의사를 상위에 둔 민주주의의 위대한 이정표였다.
이탈리아는 1987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국민투표로 모든 원전을 폐쇄했다. 이후 2011년,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전력난과 산업 경쟁력을 핑계로 원전 복귀를 강행하려 하자 이탈리아 국민들은 다시 국민투표를 발의해 94%라는 압도적인 반대로 정부의 독단을 응징하였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전쟁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원전을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상원 인준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이자 전체 전력의 9%를 TSMC 한 기업이 소비하는 대만 역시, 극심한 전력 부족과 에너지 안보 위기 속에서도 원전 가동 연장 여부를 결정할 때마다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 2018년~2025년의 여러번 국민투표를 거친 것이다. 반도체를 구실로 국민의 입을 막으려는 한국 정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신규 원전은 무기명투표보다 기명투표 로 가야 합헌적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 선언한다. 그러나 지금의 원전 정책은 국민이 아니라 원전 산업 카르텔 의 이해관계에서 나오고 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쉽다 는 오만한 태도로 국민을 현혹하면서, 기존 부지와 공기 단축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대중의 반발을 우회하려는 시도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횡포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사업을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강행은 명백한 국민주권 침해 행위일 뿐이다. 또 에너지 전환이나 신규 원전 건설처럼 국민의 삶과 안전, 그리고 국토의 지속 가능성에 직결된 중대 사안일수록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절차적 요구가 아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회원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15주기를 맞아 탈핵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3.11 연합뉴스
북미 원주민 이로쿼이 연맹의 대법(Great Law of Peace)에는 모든 중대사를 결정할 때 지금으로부터 7세대, 곧 150년 뒤 후손에게 미칠 영향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7세대 원칙 이 있다. 이 원칙이 실제로 작동했던 힘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구전을 통해 대대손손 전승한 책무 구조에서 나왔다. 그러나 익명을 전제로 한 오늘날의 비밀투표는 이 책무의 사슬을 끊어버린다. 수만 년을 관리해야 할 핵폐기물을 후대에 떠넘기면서도, 정작 누가 그 선택을 했는가 는 역사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기명투표는 이로쿼이가 구전과 씨족의 기억으로 수행했던 세대 간 책무 추적을, 문서와 실명 기록이라는 근대적 형식으로 되살리는 장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원전을 지음으로써 얻는 산업적 수혜를 원하는 집단과, 그로 인한 위험과 핵폐기물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결정해야 할 선결문제가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정하게 찬반을 표시하는 책임 있는 의사 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민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지키고, 또 국민이 동의할 수 있도록 계몽하고 나서 다시 최소 5년정도의 홍보와 설득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졸속으로는 민주주의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또 주권자의 정당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업계의 이익을 위해 강행하고 그 어떤 명분을 주장하더라도 결코 합헌적일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이재명 주권 정부는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밀실 계획을 주민들에게 명백히 밝히고 이 땅의 주인인 주민에게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인간에 따라 약간의 오차가 있겠지만 최대 2.5% 정도의 실수를 범한다고 한다. 약사들이 약을 섞을 때 범하는 실수의 비율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 사례가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쓰리마일 섬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다.
그들처럼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 영원히 쫓겨나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란다. 운이 좋게 원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확률을 운운할 수 있겠지만,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우크라이나와 미국과 일본과 비교해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좁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대부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원전에 대한 안전만큼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 그래서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원전건설을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침해 행위 를 중지해야 한다. 만약 원전 건설을 중지하지 못하겠다면 전 지역 주민들의 기명투표로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박병전 조선대 초빙객원교수(통계학) pbj54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