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열어봐 양말 벗어봐 서북청년단 꿈꾸는 건가 [사람들]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둘러싼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8일 훈련기구를 빼내려 온 핸드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소지품을 뒤지고 있다. 2026.6.8 연합뉴스
‘아…부정선거 주장하겠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던 지난 3일 오후, 한 줄 제목만 올라온 속보 서울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중단 을 보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게 말이 되나? 하는 의문과 함께 뒤이어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하러 온 시민이 발길을 돌렸다는 투표소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중 일부는 부정선거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12·3 내란이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 윤어게인을 외치던 그들이 돌아온 듯 보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민주적 절차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소에서 발걸음을 돌린 시민이 생겼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며, 헌법으로 보장하는 시민의 참정권이 침해 당한 중대한 사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등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입법부인 국회는 국정조사를 예고했고, 행정부는 검경 합동으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철저히 조사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참정권 침해에 대한 항의와 재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았고, 이 목소리에 ‘윤어게인’, ‘부정선거’를 외치는 무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무리는 투표소 출입구를 막고 투표함 이송을 거부했다. 그 뒤 개표소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을 에워싸고 부정선거 증거를 찾겠다며 출입구를 봉쇄했다.
그리고 질서 유지를 위해 출동한 경찰들에게 한국말 해봐라”, 신분증 보여라”, 이름이 이상한데 중국인 아니냐”며 카메라를 들이밀고 뒤를 따르며, 묵묵부답인 경찰관 등을 중국인이라 놀려댔다.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렸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글을 게시했던 본인이 진짜 경찰이 맞으며 내가 실수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게시물은 삭제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온라인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경찰관의 아내라고 밝힌 이는 채증을 통해 고소를 진행한다”고 글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다. 집회의 목적을 놓고 참가자끼리 의견 충돌을 빚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참정권 침해 에 항의하고 재선거’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정선거’와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대립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참가자들 사이의 의견 표출이 아니라 일부 패거리들이 다른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심지어 물리적으로 통제하려는 선을 넘는 행동에 있다. JTBC 기자는 기자임이 알려지자 폭행과 위협을 당했다. 현장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는 중국인으로 의심받는 일을 막으려고 흰색 종이에 중국 X 대만방송사 기자라고밝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혔다.
근처 편의점에 배송된 상자들을 하나하나 뜯어 내용물을 점검하는 모습도 보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기장을 드나드는 핸드볼 주니어팀의 소지품을 검사하며 양말도 벗겨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선수들의 짐을 뒤지는 과정에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고, 급기야 근처를 지나가던 여성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불심검문을 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SNS에 올라오기도 해 충격을 더했다.
인근 상점으로 납품되는 물건을 검사하는 집회 참가자(출처 : 인터넷 갈무리)
도대체 이들은 어떤 권한으로 타인을 위협하고 폭행하며 사유재산을 검열하고 불심검문을 일삼는단 말인가? 경찰은 왜 이런 무법천지 시위대를 방치하는 것인가? 경찰이 섣불리 진압에 나섰다가 ‘폭압적 진압’ 등으로 더 큰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춤하는 사이 평범한 시민은 자신을 촬영하는 다수에 둘러싸여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소지품 가방을 열어 보이고 있다.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일이며, 도대체 어느 선까지 권한도 없는 저들의 행위를 용인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지금 이들의 행태가 과거 제주도로 내려간 서북청년단의 만행, 중국 문화대혁명 초기에 홍위병에 의해 자행된 집단 린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행해진 국가폭력, 이명박 정권 당시 고 백남기 농민을 사망하게 한 경찰의 물대포 등은 이제 사라졌다. 민주시민들의 값비싼 희생으로 물리친 것이다.
민주시민들을 ‘북한군 개입, 빨갱이 선동’이라고 몰아붙이는 ‘윤어게인’ 무리가 경찰을 조롱하고 중국 공안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외치면서 권한도 없이 타인을 검열하고 온라인으로 조리돌림하는데도 별다른 제재 없이 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정말 기괴하다. 민주시민들은 공권력에게 저런 일을 방치하라고 맡기지 않았다.
물론 실정법을 따질 때 경찰이 그런 검열을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다. 검열의 피해자가 직접 고발해야 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런 행위로 인해 고발될 수 있음을 고지하여 스스로 자제하도록 유도 하는 등 일반 시민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
한 외신기자가 ‘중국인‘으로 오해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대만방송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종이를 옷에 붙인 채 취재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갈무리)
대한민국 민주시민들은 지난 12·3 내란 정국에도 전 세계가 놀랄 평화시위를 이어가며 빛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박근혜 탄핵을 외친 촛불시위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공원에서 표출되는 극단적 행태는 건전한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로 간주해 공직선거법 위반(개표 방해), 형법의 업무방해(감금) 등 관련 법에 근거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경찰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사법 처리를 주저하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거리로 뛰쳐나와 부정선거 와 개표 중단 을 외치는 나라, 그렇게 투표소와 개표소, 선관위를 압박하는 일이 일상이 될지 모른다. 그런 나라에서 서부지법 난동 같은 일이 늘상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최우혁 시민기자 hyeok05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