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킹 시위, 트럼프 규탄 넘어 미국을 구하자 절박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의 왕은 없다 시위에 참여한 한인 동포들이 힘찬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고 있다. 미주 한인 평화재단 제공
트럼프 반대 운동의 질과 양이 변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국가 공권력에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이 피격, 살해되면서 촉발된 트럼프 규탄 시위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가 실정을 넘어 미국의 본질을 파괴한다는 위기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무모하게 시작한 이란 전쟁이 미국을 다시 베트남 전쟁과 같은 비극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더 많은 사람을 시위 현장으로 모이게 하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도널드 트럼프는 문화혁명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혁명은 정치적 목표를 넘어 존재 형태를 바꾸는 대규모, 총체적 저항 운동을 말한다. 투쟁의 깊이와 넓이가 증폭된다.
트럼프 규탄은 단순한 진보적 운동이 아니다. 미국은 트럼프로 인해 국제사회의 기피 대상이 되고 이제까지 미국을 지켜준 자존감마저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저변으로 퍼지고 있다. 3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를 규탄하는 ‘왕은 없다 (NO KINGS) 시위가 이를 말해준다. 3000곳에서 열린 시위에 약 800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된다. 반트럼프 시위는 이민세관단속국 (ICE)이 상징하는 공권력의 폭력성, 이민자 혐오, 무모한 이란과의 전쟁, 광폭한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지원, 폭등하는 물가 등을 규탄하면서 트럼프 시대의 종언을 촉구하는 함성으로 커졌다.
이날 시위는 지난 1월 르네이 굿과 알렉스 프레디가 살해된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해 수도 워싱턴 D.C. 뉴욕, 시카고 등에서 열렸다. 뉴욕 타임스(NYT)의 표현대로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 푸에르토리코까지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다. 런던, 파리. 리스본 등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이번 시위에 미주 한인 동포들도 참여해 이민 당사자들로서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고, 다른 공동체와의 연대 의식을 드러냈다.
팝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의 주도인 세인트 폴 시위에 참여해 자신의 저항 가요 Streets of Minneapolis 를 부르고 있다. CBS 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시위 문화도 변했다. 비속어로 쓰인 시위 팻말의 물결이 줄어들고 유머, 풍자가 돋보였다. 1960년대 반전 운동을 연상케 하는 저항 가요를 불렀다. ‘노 킹스’ 운동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미네소타주의 주도 세인트 폴 시위에는 가수 부르스 스프링스틴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자작곡 ‘Streets of Minneapolis’를 불렀다. 스프링스틴은 지난 겨울, 연방군은 미니애폴리스 거리에 죽음과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들은 도시를 잘못 선택했다 고 외쳤다. 그의 말대로 미니애폴리스는 트럼프 정책에 위축되는 대신 이민자 보호를 전국적 어젠다로 키웠다. 미니애폴리스 때문에 트럼프는 이민 혐오자에서 스프링스틴의 말대로 악몽같은 반동 (reactionary nightmare)으로 격상됐다.
오, 우리의 미니애폴리스여,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노래하는 당신의 목소리
우리는 이 땅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는
낯선 이들을 위해 굳건히 설 것이다
이 노래의 후렴이다.
베트남 전쟁 반대의 아이콘이었던 제인 폰다가 미네소타주 주도 세인트 폴 시위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에 숨을 거둔 르네이 굿의 배우자가 쓴 편지를 읽고 있다. 폭스 9 미네소타 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미니애폴리스 시위에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등장했다. 그녀는 ICE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르네이 굿의 배우자 베카 굿이 쓴 편지를 읽었다. 아내 르네이 굿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그립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편을 선택합니다. 트럼프의 공권력이 평범했던 두 시민을 불의에 항거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워싱턴 D.C.에서는 시위대가 인권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링컨 기념관과 그 앞 ‘내셔널 몰’에 모였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가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곳이다. 그의 연설과 시위 행진으로 인권은 흑인에 대한 차별이 제도화된 남부의 이슈가 아닌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28일 워싱턴 D. C.의 ‘왕은 없다 시위도 트럼프 규탄을 넘어 평범한 사람들이 인종, 계층, 지역을 넘어 미국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공유했다.
1968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는 링컨 기념관 앞에서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연설로 인권 운동의 흐름을 바꾸었다. 인권 투쟁은 흑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란 메시지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James H. Wallace/The Smithsonian s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링컨 기념관 주변에서 벌어진 왕은 없다 시위 모습. 1968년 8월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라고 외친 뒤 시위 행진에 참여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2026.3.28 워싱턴 D. C.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에서는 오후 2시부터 수천 명이 맨해튼 세븐 애버뉴를 따라 57번가에서 34번가까지 약 1마일 이상을 행진했다.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도 시위에 참여해 트럼프의 정책이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중의 궐기를 촉구했다. 이번 시위는 르네이 굿과 알렉스 프레디 피격 살해 직후 눈에 띄던 저주에 가까운 격양된 구호 대신 트럼프를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변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창의성과 해학을 통해 여러 계층의 시위대가 더 쉽게 반트럼프 전선에 합류할 수 있었다.
뉴욕 시위의 중심에 수십 미터 길이의 대형 천이 있었다. 미 헌법 전문의 첫 세 단어 We the People (우리 인민은)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쓴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번 시위는 헌법을 지켜서 미국을 보호한다는 메시지가 뚜렷했다.
아래는 기자가 촬영한 지난달 28일 뉴욕 시에서 펼쳐진 왕은 없다 시위 사진들이다.
트럼프도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 16세처럼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
미국 독립혁명의 구호였던 나를 짓밟지 마라 가 우리(미국)를 짓밟지 마라 로 확대돼 재등장했다.
미국 헌법 전문의 첫 세 단어 우리 인민은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수십 미터 길이의 대형 천이 시위의 중심에 자리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헌법을 파괴하고 있으니 공적 1호라는 메시지가 또렷하다.
원하는 누구든 참여해 서명하거나, 자신만의 메시지를 적은 이 대형 배너는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렀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돼 왕은 없다 시위가 열린 대도시들을 거쳐 뉴욕에 온 이 대형 천에는 지금도 시위 참여자들의 메시지가 더해지고 있다. 이 배너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스테이시 카토넌(왼쪽).
헌법 수호의 메시지는 지금도 더해지고 있다.
왕은 없다 시위는 1960년대 베트남 반전 시위를 연상케 한다. 포크송과 춤도 규탄의 한 표현이다.
트럼프의 파시스트적 정책과 맹목적인 이스라엘 지지에 반대하는 유대계 뉴욕 주민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손을 떼라 는 구호 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재향군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참전용사들의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참여는 파급효과가 컸다.
한국의 시위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만장이 왕은 없다 시위에 등장해 다문화 색채를 더했다. 모두 함께 라고 쓰인 만장도 펄럭였다.
전통적 우방에 대해서까지 관세를 이용해 악다구니를 부리다 반대급부가 주어지면 철회하는 아이 같은 트럼프. 그에 대한 비아냥거림인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서지(Trump Always Chickens Out, TACO) King 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옥중에서 극단을 선택한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같은 거부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꼬집는 퍼포먼스..
뒤집힌 성조기가 지금 미국이 스스로의 가치와 전통에 역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계에 올라 구호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지팡이를 짚고 행진하는 노인이 왕은 없다 시위에 하나가 됐다. 노인이 든 팻말에는 KKK, 나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GA) 추종자들이 다른 모자를 쓰고 있지만 똑같은 X 이라고 적혀 있다.
애견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파시스트들이 있는 곳에 배설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