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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12·3 민주주의 지킨 시민들이 우리시대 왕사남

12·3 민주주의 지킨 시민들이 우리시대 왕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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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영화 앞에서 눈물을 훔쳤을까요. 화려한 전투도 없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반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00만이 넘는 관객이 이 이야기 앞에서 가슴을 저미며 오래 머물렀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2026년 2월 4일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을 끌어모으며, 개봉 두 달여 만에 누적 1,60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한겨레, 2026.4.12).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거대한 서사를 가진 작품도 아닌 이 영화가 어떻게 이 같은 반응을 얻었는지는 그 자체가 궁금증을 불러옵니다. ■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보여준 영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극을 배경으로 합니다.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찬탈하고, 어린 왕은 결국 왕위에서 밀려납니다.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고, 1457년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권력의 쟁탈 과정이 아닙니다. 칼날 같은 정치의 순간도 아닙니다. 영화의 시선은 오히려 그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머뭅니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의 관계를 따라갑니다. 씨네21은 이 작품을 두고 사료의 행간에 상상을 더해 완성된 이야기”라고 평가하며,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감정을 결합한 서사의 힘을 짚었습니다(씨네21, 2026.2.5). 또 다른 평론에서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본 사극”이라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G프리즘, 2026.2.10). 또한 사극의 외피를 입었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등장했습니다(중앙일보, 2026.2.12).   서울 한 영화관에 걸린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2026.3.8 연합뉴스 관객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슬펐다는 반응, 누군가를 끝까지 지키는 이야기라서 울었다는 반응, 보고 난 뒤 감정이 오래 남는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왕의 이야기인데 결국 내 이야기 같았다”는 반응은 이 영화가 개인의 감정으로 깊이 스며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 관계를 보여주었고, 관객은 그 관계에 반응했습니다. 언론은 이 영화의 흥행 이유를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복잡한 서사 없이 감정에 집중한 구조, 관람 이후에도 지속되는 감정의 여운, 그리고 권력 중심 서사에 대한 피로와 인간에 대한 갈망이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 그것입니다. 이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만으로는 먹먹한 마음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역부족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극에서 다루어진 소재이지만, 왜 하필 이 시점에, 그것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스크린 앞에 불러 모았을까. 단지 뛰어난 연기력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의 밑바닥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단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시점의 역사에서, 단종과 엄흥도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 속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 역사의 기록과 권력이 바란 기억 단종이 사사된 지 300여 년이 지난 조선 후기, 숙종 대에 이르러 단종은 복위되고, 단종 복위를 시도했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니라, 왕권의 정당성과 정치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역사적 평가가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이 흐름은 정조 대에 이르러 더욱 강화됩니다. 정조의 입장에서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은 단순한 역사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과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과거 무도한 권력에 희생된 이들의 위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육신은 국가가 공인한 충신으로 복권되어 판서·정승 반열의 관직으로 추증됩니다. 다시 말해, 권력이 선택하고 승인한 ‘충신의 명단’이 확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중심 서사와는 다른 결의 기록이 존재합니다. 바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저술한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공식 실록에서 비켜난 인물들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엄흥도(嚴興道)입니다. 그는 단종의 유배지 촌장이었고, 단종이 사사된 이후 조정의 명을 어기고 몰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른 인물로 전해집니다. 이후 엄흥도는 고향 영월을 떠나 경북 지역에서 살았던 것으로 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훗날 숙종 대에 공조참의로, 이어 공조판서로 증직되었고,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며 국가적 충절의 기억 속에도 편입됩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육신은 권력이 선택한 충신입니다. 그러나 엄흥도는 권력이 기억한 충신이라기보다, 사람들의 공감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도리를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군주에 대한 의례라기보다, 비극 속에 놓인 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가까웠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선택은 충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도리라는 점에서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 권력은 역사를 바꾸려 하고, 사람은 공감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대비는 현대에도 반복됩니다. 1977년 유신체제 말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자신의 조상 김문기를 사육신(死六臣)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에 따라 이병도를 비롯한 국사편찬위원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사육신 명단을 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합니다. 이 사건은 오마이뉴스 보도에서도 상세히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특별위원회에는 이병도, 신석호, 한우근, 이기백, 이광린 등이 참여하여 유응부를 제외하고 김문기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오마이뉴스, 「김재규가 바꾸려 했던 사육신 명단」, 2020.5.18). 부산대 이재호 교수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사육신은 권력(박정희 정권)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역사적 실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산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었고, 논란 끝에 이 시도는 철회되었지만, 사육신을 사칠신(死七臣)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다음에 드러납니다. 김재규의 조상인 김문기 역시 이미 정조 대에 단종 복위 시도에 참여했던 충신으로 인정되어 정승 반열에 추숭되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정조 대에 이미 그 충절이 인정받고 정승 반열에 추숭되었다면, 굳이 사육신 명단에 무리하게 포함시키려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재편 시도가 추진되었다는 것은, 당시 이병도를 비롯한 국사편찬위원회 특별위원회 소속 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했거나, 혹은 이미 확정된 역사조차 권력의 필요 앞에서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이 역사 자체를 통제하려 했던 시도라는 점에서 더 중요한 문제로 보입니다. 권력은 역사를 재배열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기억하기보다, 그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 인간다움, 인간의 조건, 그리고 측은지심의 힘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Simulacres et Simulation, 1981)』에서 현대 사회를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 세계’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접 살아가기보다, 재현된 이미지와 영상으로 세계를 소비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조차 하나의 장면처럼 흘러갑니다. 너무 많은 비극과 분노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고통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지는 시대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흐름을 거슬러 갑니다. 거대한 사건이나 자극 대신, 사람 사이의 작은 감정과 침묵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이 살아납니다. 결국 이 영화가 끝내 붙잡고 있는 것은,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워지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1976)』에서 인간의 삶은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하고 공감하고 관계 맺는 능력 속에서 인간다움이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는 거창한 영웅도, 화려한 성공도 없습니다. 대신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받아주고,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역시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에서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서로를 사람으로 바라보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간의 세계를 끝내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이념보다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맹자(孟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떠오릅니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타인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 부정의에 대한 분노, 서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연대와 공감 역시 결국 그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를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서로 다른 시대와 사상가들의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서 만납니다. 인간은 무엇에 반응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거대한 권력보다, 일상 속에서 서로를 아끼고 받아주고 외면하지 않으려는 인간적 태도에 더 깊이 반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마음이, 끝내 인간의 세계를 지탱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 대행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있다. 2025.12.3 연합뉴스 ■ 우리가 이미 경험해 온 연민과 연대 저는 이 영화 속 엄흥도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최근 경험했던 장면들을 떠올립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국회의사당 앞을 지키던 시민들.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광화문과 한남동의 시민들. 서로를 위해 음식과 물품을 나누던 사람들. 남태령에서 가로막힌 농민들을 향해 달려가던 시민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 더 강한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분노한 군중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함에 대한 분노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측은지심이 함께 작동한 시민적 연대의 장면이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반복되어 왔습니다. 광주민주항쟁에서도, 6월 민주항쟁에서도,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같은 감정을 경험해 왔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훔쳤다 우리는 왜 이 영화 앞에서 눈물을 훔쳤을까요. 그것은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제도와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권력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예의와 공감,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면에 오래 머뭅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이었고, 앞으로도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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