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왜곡죄 에 대한 대법원의 왜곡된 주장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히틀러 나치 치하 법관의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의 산물
‘법 왜곡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법원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법 왜곡죄’ 신설과 관련하여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법 왜곡죄는 연혁적으로도 신권과 왕권 등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고, 법 왜곡죄가 존재했던 국가들인 독일이나 러시아의 경우에도 법 왜곡죄가 히틀러나 스탈린의 독재하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대법원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왜곡’ 주장이다. ‘법 왜곡죄’가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에 부역한 판사들을 처벌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정권하에서 법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반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나치하의 수많은 법관과 검사가 정치적 판결을 통해 인권침해를 정당화하였고, 그로 인한 후유증은 전후 독일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법률을 권력이 아니라 정의의 기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법 왜곡죄’가 신설된 것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2025.6.5. 연합뉴스
법관의 자의적 판결은 법을 빙자한 권력남용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유례없이 심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법관의 판결이 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3%에 불과했고, 법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은 무려 68%에 이르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의 극심한 사법불신 사태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란수괴 윤석열을 기상천외한 시간 계산법으로 풀어준 지귀연 판사와 사상 유례없는 속도전으로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파기 환송을 결정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 불신에 불을 붙인 대표적인 사례다. 법관의 자의적 판결이란 곧 법을 빙자한 권력 남용에 다름 아니다.
대법원은 ‘법 왜곡죄’를 대단히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법 왜곡죄’가 적용되고 있는 유럽에서 그것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 사법계는 법 왜곡죄는 법관의 독립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공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적 균형장치”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법 왜곡죄’는 독일보다 더욱 엄격하다. 오스트리아의 형법 제288조는 법관·검사·수사관이 법률의 의미나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경우 최대 10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별도의 ‘법 왜곡죄’ 조항은 없지만, ‘공권력 남용죄’나 ‘부당한 재판 행위죄’의 중대 유형에 포함시킴으로써 실질적으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듯 유럽 대부분의 사법체계는 법률을 다루는 자가 법을 위반할 때 더울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사법독립’이란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 의미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판사나 검사는 법을 악용해도 사과하는 경우조차 거의 없다. 혹시 의외로 사과하는 경우에도 그저 오판이었다”나 실수였다”라는 한마디면 쉽게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결국 법 왜곡 행위가 있어도 처벌할 수단이 전혀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법 불신은 계속 커져갈 수밖에 없다. ‘법 왜곡죄’는 이러한 사법 불신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즉, ‘법 왜곡죄’는 우리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권력의 지배를 받고 언제나 피치자로서 그리고 항상 ‘을’의 입장에만 놓일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방어적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국회에서 ‘법 왜곡죄’ 도입을 시도한 의원은 바로 고 노회찬 의원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평소 사법개혁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2016년, 필자는 ‘법 왜곡죄’를 제정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인터넷매체에 발표했었다. 그 직후 노회찬 의원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 만났었고, 그 자리에서 ‘법 왜곡죄’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노의원이 주최한 ‘법 왜곡죄’ 신설을 위한 토론회에서 진보진영 인사들조차도 신중론과 소극적 의견을 제기하는 바람에 ‘법 왜곡죄’ 신설 추진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법 왜곡죄’ 신설은 법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법권력의 자정능력을 회복시키는 구조적 개혁이다. 법관이 법의 이름으로 법을 왜곡하고 불의(不義)를 저지른다면, 그 결과는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곧바로 법치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률은 권력 위에 있어야 하고, 법률을 집행하는 사람 역시 반드시 그 법률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금 사법부는 입만 열면, ‘사법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나 ‘사법 독립’이란 결코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의 의미가 아니다. 반드시 ‘책임 있는 자율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법왜곡죄’는 바로 사법부의 이 ‘책임 있는 자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