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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발의 홍수 속 선입선출 … 긴급 법안이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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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속도가 너무 느려 도저히 일할 수 없다!”, 대통령의 탄식 2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와 같은 입법 속도로는 국제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국회 입법 속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입법 성과가 20%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하며 국회의 느린 속도로 인하여 일을 할 수 없다며 입법 속도가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지적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언론들은 우리 국회의 입법 속도가 이처럼 느리기만 한 국회 상황을 분석하면서 여야 간의 끝없는 정쟁과 발목잡기와 더불어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결여를 그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대체로 틀림이 없는 지적이다. 현재 국힘의 막무가내식 발목잡기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상수로 고착된 지 이미 오래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부족 역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들은 유감스럽게도 국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보지 못하고 있다. 즉, 이러한 지적들은 언뜻 타당하게 들리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국회의 입법 과정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본회의 모습. 2026.2.9 연합뉴스 세계 최고 수준의 법안 발의건수, 그러나 허장성세일 뿐 현재 우리 국회의 이른바 ‘법안 발의 건수’는 가히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래 오늘 날짜까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은 총 1만 6270건으로서 하루 평균 27건에 이른다. 지난 20년 동안 법안발의는 자그마치 22.6배 증가하였다. 놀라운 숫자들이고, 이러한 통계만을 놓고 본다면, 이 나라 국회야말로 입법을 본업으로 하는 의회의 모범 사례라 할 것이며, 실로 ‘일하는 국회’의 전형으로 전 세계에 자랑해야 마땅할 국회다. 이러한 우리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가히 압도적인 숫자다. 프랑스 의원들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발의한 법안은 총 1834건이었다. 프랑스에서 대체로 1년에 정부 발의 법안은 30~50건, 의원 발의 법안 수는 200~300건 정도이다. 그리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고작해야 10개 법안 정도만 의결된다. 또한 독일 의원들은 2005년부터 2009년 4년 동안 431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독일 의회에서는 의원 개인에 의한 법안 발의가 상상 외로 적다. 대신 정부 제출이 주류를 이룬다. 왜냐하면, 연립정부를 다수 여당이 지배하므로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곧 다수 여당의 법안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 의원들은 2009년부터 2012년에 253건의 법안을 발의하였다. 입법속도가 구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는 우리 국회의 입법 프로세스 한편, 현재 국회를 감시하고 의원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어느 의원이 법안을 많이 발의했느냐의 양적 지표만을 기준으로 삼아 ‘우수의원’을 선정하고 있다. 더구나 각 정당 공천기준에서도 법안발의 건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이렇듯 만연된 ‘건수주의’로 인하여 법안 발의는 넘치고 넘친다. 이로 인해 인력과 예산의 낭비 역시 날로 극심해가고,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법안이 도리어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엄청나게 발의되는 법안에 대한 국회의 관행은 이른바 선입선출(先入先出), 즉, 먼저 발의된 법안을 먼저 검토한다”는 방식인데, 따라서 아무리 국민이 원하고 긴급을 요하는 법안이라도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입법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이는 심각한 입법 왜곡이다. 우리 국회의 입법 프로세스는 필자가 그간 기고문에서 누차 기술한 바처럼 사실상 국회 입법관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어떠한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결국은 ‘검토보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들이 그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게 된다. 물론 특수한 경우에 상임위원장이나 여당 지도부의 의중이 직접 관여하여 법안 통과를 지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 일상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 권한과 주도 과정에 귀속된다. 상임위원회 회의 역시 국회 전문위원이 법안 설명을 하는 등 사실상 국회 전문위원의 주도로 진행된다. 박정희⸱ 전두환 잔재, 국회 입법 구조가 바뀌어야 입법이 산다 이러한 입법 프로세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국회에만 존재하고 있다. 다른 나라 의회는 이러한 입법 프로세스의 총체적 과정이 모두 철저히 의원들의 주도와 책임 하에 실행된다. 유독 우리 한국 국회만 입법관료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 의회에서 입법관료는 그야말로 보조와 지원 역할만 수행한다. 우리나라처럼 입법관료가 주도한다는 상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상임위원회 회의에 의원과 함께 동석할 수 없고, 물론 발언도 할 수 없다. 필요할 경우 의원의 요청에 의하여 특별히 보조 발언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서의 의원이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의회다. 이러한 우리 국회의 ‘이상한’ 입법 프로세스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국회 무력화’를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군사독재 잔재이다. 이 왜곡된 구조를 바꿔야만 국회 입법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이러한 박정희, 전두환 잔재를 없애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니, 언론들도 시민단체도 전혀 관심이 없다. 국회 입법속도에 대한 대통령의 거듭되는 지적과 답답함이 국회 입법 구조의 개혁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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