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동생, 명숙이를 보내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주 올레를 개척한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지난 7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시사저녈,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 그의 길동무이면서 친자매 이상으로 고락을 함께 해온 유시춘 EBS 이사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장례식을 지켰습니다. 그 비통한 심정을 민들레에 보내왔습니다.
제주 올레길의 개척자 서명숙(1957-2026)
제주 평대리 구좌읍 당근밭 곁에 하얗게 솟아난 유럽풍 집.
후배 진영의 방에서 눈뜨다. 어제의 폭우로 인한 비행기 결항으로 많은 벗들이 안타까움을 전한다. 제주행 불발을 알리는 메시지들이 폰에서 반짝이다.
어제 천지신명께 간구한 응답일까. 하늘이 말갛고 창너머 당근향이 은은하다.
오늘 명숙이 장례날이란다.
진영의 차에 오르다.
가시리 벚꽃길 30리를 달린다.
벚꽃비 나리는데 등걸 허리까지 피어오른 유채꽃 가로풀들이 받아 안는다.
아! 숨막히는 향연이다.
20여분 숨이 멎는다. 비자림로의 나무향기와 몸을 뒤섞은 꽃내음 사이로 가끔 휘파람새가 파닥이며 운다.
이런 땅을 두고 명숙이 떠난다고?
아니겠지.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몇초간 우리를 놀래키려고 천연덕스럽게 하던 그녀의 허투른 수작이겠거니. 이번에도.
9시. 서귀포 서복공원 잔디광장 도착.
서명숙영결식장이라네. 단상 아래 많은 이들이 앉아있다.
여름날 그녀가 자주 헤엄치던 자구리 해안에 윤슬이 반짝이다.
자구리를 내려다 보는 2인용 그네가 보인다.
우리 둘이서 나란히 앉아 자주 새연교 불빛을 바라보며 흔들거리던.
나더러 추모사를 하란다.
긴말없이 명숙아.
사랑하는 내동생 명숙아! 라고 몇번 외쳤다.
4.13일 약속대로 우리집 서명숙룸에 오라고 당부했다.
언니. 배고파. 라고 중얼거리면 너 최애하는 양곰탕, 낙지볶음 만들어줄테니 꼭 약속 지키라고.
명숙과 나는 같은 대학을 다녔고, 글쓰는 동업자였고,
함께 민주화 험로의 신산고초를 공유했다.
세상은 그녀가 영원히 잠들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명숙은 꽃가지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ㅡ작은 길을 희롱하며 폴짝이는 동박새가 되어,
한라산 넘어 오는 바람의 뒷등과 몸을 섞는 치명적인 하얀 귤꽃향으로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올레길 어디서나 반짝이는 잎새로,
아! 제주바당 끝없는 수면에 햇볕 달빛 받아 반짝이는 윤슬로 생동할 것이기에.
어찌 그녀가 우리를 떠났다고 말하는가!
천개의 바람줄기 되어 만개의 꽃잎으로,
올레길 비추이는 와랑와랑 햇살로 늘 거기에 있을 것이기에.
그녀가 잠들었노라고, 떠났노라고 말하지 말아다오.
영결식 끝나고 그녀의 몸이 화장장으로 간다고 했다.
난 가지 않았어.
배우 문소리 일행등과 정원으로 갔다.
자목련 잎이 툭툭 떨어지는 꽃그늘에 앉아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대신
그녀가 우리를 놀래키던 그 깜찍발랄한 거짓말을 재연하며 웃었다.
나는 문소리배우에게 언젠가 명숙의 영화에 주연을 맡으라고 권유했다.
영화 의 감독인 장준환에게는 영화 쟝고의 한국 버젼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민주화 빌런들을 야무지게 차례차례 조용히 복수해주는.
우리 일행은 그렇게 꽃그늘 아래서 명숙을 재연하다가
3시에 그녀가 잠든다는 묘지로 갔다.
명숙의 유골함은 무표정했다.
몇 줌의 하얀 가루로 돌아온 그녀의 유골함이 어떻게 명숙일 수가 있는가?
A4 용지 크기의 묘비명. *쉿! 여왕님 깨실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좋아하려나?
그러나 그 무심한 유골이 차갑고 굳은 돌 속에 갇히는 순간, 나는 외쳤다.
‘안돼! 명숙은 좁은 공간에 갇히면 안돼!’
나는 온몸으로 울었다. 안은주, 최광기와 함께.
숨이 막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는 순간, 거기 명숙이 평소처럼 동백꽃 버프를 쓰고 오렌지색 현란한 원피스차림으로 저 멀리 타이티섬 열대여자처럼 가무잡잡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해!
어둡고 비좁은 그 차가운 돌 안에서 명숙은 민첩하게 벗어나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참 빠르기도 하여라!
9시.
제주공항은 어제의 결항으로 밀린 이들로 북적였다.
비행기는 지연해 10시반에 이륙했으나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인천공항에 내려앉았다.
천신만고 끝에 귀가하니 밤 1시 넘었다.
짐을 정리하는데 방바닥에 길게 투둑 펼쳐진 것.
진혼무를 추었던 춤꾼이, 숨막히게 울던 내게 건네준 명숙의 목도리이다.
돌고래 몇 마리가 해초들 사이에서 춤추는.
명숙이 내게 말한다.
까꿍! 언니. 나 여기 있지롱. 내일 아침엔 시춘민박 조식 메뉴가 모야?
”응. 뭐 해줄까? 양곰탕. 된장찌개. 해장국. 가자미조림 중에서
”그거 다 먹고 싶은데…
”알써. 예스 맴
나는 명숙과 수다를 떤다.
봄밤은 아롱아롱 깊어간다.
3시인데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