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천하인까지 올라간 남자, 그러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6세기 일본을 통일한 농민 출신 권력자의 명암
짚신장수가 천하를 얻다니, 이게 되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이름만 들어도 한국인에게는 치가 떨리는 인물이다. 임진왜란(1592~1598)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의 인생 전반부는 개천에서 용 난 신화 그 자체였다.
히데요시는 오늘날로 치면 최하층 비정규직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름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하급 병사였고, 어린 시절 그에게 붙은 별명은 원숭이 였다. 외모 때문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런 그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의 부하로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노부나가의 짚신을 품에 품어 따뜻하게 해두는 하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요즘으로 치면 회장님 차 예열해두는 기사 정도? 그런데 이 남자,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전투에서 보급로를 확보하고, 성을 하룻밤 만에 쌓아올리는 등 실무 능력이 탁월했다. 노부나가가 이놈 쓸 만하네? 하며 계속 승진시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화(1598년), 교토 고다이지에 소장 (위키피디아)
보스 자결에 재빨리 왕좌를 꿰차다
1582년, 노부나가가 부하의 배신으로 혼노지(本能寺)에서 자결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 히데요시는 먼 지방에서 전투 중이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초고속으로 군대를 돌려 배신자를 토벌했다. 이른바 주군의 원수를 갚은 충신 이미지를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히데요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원수를 갚은 직후, 그는 노부나가 정실 부인의 맏아들을 제치고 권력을 장악했다. 제가 복수했으니 제가 보스죠? 논리였다. 이후 몇 년간 라이벌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며 1590년 마침내 일본 전역을 통일했다. 농민 출신이 천하인(天下人)이 된 것이다.
나고야에 있는 나카무라 공원은 히데요시의 출생지로 여겨진다.(위키피디아)
성공하면 다 용서되나? 천만의 말씀
여기까지만 보면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다. 한국으로 치면 노비 출신이 정승이 된 것과 비슷하니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신분제를 뛰어넘은 영웅 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하지만 잠깐, 이 남자가 한 짓을 보면 입맛이 싹 가신다.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1588년 도검수렵령 을 내렸다. 농민들에게서 칼과 창을 모두 빼앗은 것이다. 명분은 무기를 녹여 대불을 만들겠다 였지만, 속내는 뻔했다. 자기처럼 밑바닥에서 올라올 사람이 더 나오는 걸 막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됐고, 너희는 안 돼.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더 가관인 건 1591년 신분통제령 이다. 무사는 무사, 농민은 농민으로 신분을 고정시키고 이동을 금지했다. 자기는 농민에서 천하인이 됐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평생 그 신분에 묶어둔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수준이 아닌가.
히데요시가 입었다고 전해지는, 새와 다른 동물들의 무늬가 있는 진바오리(紙刀) 의상 (위키피디아)
그리고 조선 침략이라는 최악의 선택
천하를 통일한 히데요시는 이상하게 꼬였다. 국내에서 할 일은 다 했는데 아직도 뭔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권력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시아 대륙 정복 이라는 황당한 망상이었다.
1592년, 히데요시는 15만 대군을 보내 조선을 침략했다. 명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내놓으라는 게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그냥 침략 전쟁이었다. 초반에는 조선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한양까지 함락됐지만,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해상 승리와 의병의 저항,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1598년, 히데요시는 병으로 죽었다. 임진왜란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지만, 조선은 이미 초토화됐다. 백성들은 죽고, 문화재는 불탔으며,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대륙 진출의 꿈 이었을지 모르지만, 조선에게는 그냥 재앙이었다.
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당시 이름은 기노시타 도키치로)는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이나바 산의 성을 공격한다.(위키피디아)
한국이 배워야 할 건 뭘까?
히데요시의 인생을 보면 몇 가지 씁쓸한 교훈이 떠오른다.
첫째, 개인의 성공이 사회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히데요시는 신분제를 뛰어넘었지만, 자기 다음 세대를 위해 오히려 신분제를 강화했다. 요즘 말로 하면 나는 개천에서 용 됐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왜 노력 안해? 라고 말하면서 정작 개천을 메워버린 격이다. 한국사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종종 본다. 자수성가한 어르신들이 청년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 라면서 정작 청년들이 올라갈 사다리는 더 높게 가파르게 만든다.
둘째, 권력은 중독성이 있다. 히데요시는 일본 통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대륙 침략이라는 무모한 도박을 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이 정도면 됐다 고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면 결국 파멸로 치닫는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장기 집권을 시도했던 권력자들이 좋은 결말을 맞은 경우가 거의 없지 않은가.
셋째, 전쟁은 권력자의 망상이지만 고통은 백성의 몫이다. 히데요시는 침대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았지만, 조선과 일본 양쪽의 수많은 백성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권력자들은 국익 을 외치며 전쟁을 벌이지만 실제로 총알을 맞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다.
시즈가타케 전투에서의 히데요시 (위키피디아)
2026년 한국, 우리는?
지금 한국사회를 보면 히데요시 시대와 묘하게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점점 가팔라지고, 기득권은 자기들끼리 지위를 대물림한다. 능력주의 를 외치지만 정작 출발선은 평등하지 않다.
히데요시는 자기가 올라온 그 사다리를 부숴버렸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 권력을 쥔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사다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걷어차고 있는가?
또 하나, 히데요시는 내부 통합에 실패하자 외부로 눈을 돌렸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국내 문제를 덮으려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16세기나 21세기나 여전히 정치인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우리는 현명한가?
고마키 산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쫓는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위키피디아)
원숭이에서 천하인, 그리고 전범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농민이 실력 하나로 일본을 통일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성취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면, 성공이 곧 위대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인에게 히데요시는 침략자일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인생에서 배울 점도 분명하다. 개인의 성공에 도취되어 다음 세대의 기회를 빼앗지 말 것, 권력의 중독성을 경계할 것, 그리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모순을 덮으려는 시도를 경계할 것.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던가. 히데요시 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똑똑해져야 한다. 개인의 화려한 성공담에 현혹되지 말고, 그 성공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 한다.
원숭이에서 천하인이 된 남자. 그러나 결국 역사가 기억하는 건 조선을 침략한 전범으로서의 모습이다. 화려한 성공도 결국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이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늘날 한국인에게 던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다. 나는 됐고 너는 안 돼 라는 태도만큼 사회를 망치는 게 없다. 히데요시는 500년 전 인물이지만, 그의 행태는 지금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역사를 배운다는 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닐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투 깃발.(위키피디아)
교토의 대불은 히데요시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