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러시아 유착 팠던 뮬러 전 FBI 국장 별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2019년 7월 24일(현지시간) 하원 법사위 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2019.7.24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 러시아의 선거 유착 의혹을 파헤쳤던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P 통신 등 현지 언론이 21일(현지시간) 일제히 전했다. 유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밤 뮬러 전 국장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망 장소와 정황,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지난해 뮬러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보도한 일이 있다.
뮬러 전 국장은 2001년 9·11테러 일주일 전에 FBI 국장으로 취임해 이후 12년간 격동의 시기 FBI를 이끌었다. NYT는 그가 FBI 조직 구조와 문화를 개혁하며 FBI를 국가 안보와 시민의 자유를 동시에 중시하는 21세기형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노력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뮬러 전 국장은 2013년 FBI 국장에서 물러났으나 2017년 5월 러시아게이트 특별검사로 임명되며 다시 공직에 복귀했다. 수사는 2016년 미 대선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여부,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여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뮬러 전 국장은 22개월의 수사를 통해 트럼프의 측근과 러시아 정보 요원 등 34명을 기소, 일련의 유죄 인정과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하지만 재임 중이던 트럼프 대통령을 형사 기소하지 않았다. 그는 2019년 의회 증언을 통해 조사 결과 러시아 정부가 우리 선거에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나 캠프가 러시아 측과 공모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도 법무부 정책과 공정성 원칙에 따라 우리는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며 대통령이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행위들에 대해 대통령이 무죄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고 여지를 남겼다.
고인을 중용했던 이들과 동료들은 공적 임무에 충실했던 공직자로 칭찬했다. 그가 FBI 국장으로 재임한 두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모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뮬러를 FBI 수장으로 임명한 부시는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 을 표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FBI 6대 국장으로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밥은 9·11 이후 국토 보호로 기관 임무를 전환했다 면서 그는 기관을 효과적으로 이끌며 미국 영토에서 또 다른 테러 공격을 막는 데 기여했다 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그를 FBI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장 중 한 명 이라고 칭하며, 법치주의에 대한 끈질긴 헌신과 우리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 을 칭찬했다.
뮬러의 뒤를 이었던 제임스 코미 전 국장은 오늘 위대한 미국인이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에게서 배우고 함께 설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고 말했다.
뮬러의 전 법률 사무소 윌머헤일 대변인은 성명에서 고인을 비범한 지도자이자 공직자이며 가장 청렴한 인물 이라고 칭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게이트 수사를 자신을 겨냥한 정치 공작이라고 규정하며 뮬러 전 국장 등 당시 수사 참여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는 그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듯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뮬러의 사망 소식에 대해 잘됐다, 그가 죽어서 기쁘다 며 이제 그는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수 없다 고 적었다.
국가 지도자가 이렇게 사적 감정을 상대의 죽음 앞에서 여과 없이 토로할 수 있는지 어이없기 짝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4월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연방수사국(FBI) 본부를 찾아 로버트 뮬러 국장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09.4.28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고인은 1944년 8월 7일 뉴욕 맨해튼에서 로버트 스완 뮬러와 앨리스 C. 트루스 데일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증조부는 델라웨어 래커워너 앤 웨스턴 철도의 사장을 지낸 윌리엄 트루스 데일이다. 어린 시절을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서 보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뉴햄프셔에 있는 세인트 폴 학교를 다니면서 라크로스 팀에서 활동했는데 훗날 국무장관을 지낸 존 케리도 이 팀에 소속돼 있었다.
1962년에 세인트 폴 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 이어 뉴욕 대학교에서 국제 정치학을 전공하고 해병대에 입대해 3년간 장교로 베트남 전쟁에서 제3해병 사단의 소총 소대를 지휘하여 그 공로로 동성 메달, 해군·해병대 메달, 퍼플하트 등을 수여받았다. 버지니아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1973년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1976년까지 민간 법률회사에 근무하고 연방검사로 12년을 역임한 뒤 잠시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가 1990년 다시 공직으로 돌아와 법무부 형사 차관보로서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팬암 103편 폭파 사건, 마피아 두목 존 고티, BBCI 금융비리 등의 사건을 맡았다. 1993년 화이트 칼라 범죄 소송을 전문으로하는 보스턴의 헤일 앤 도르의 파트너 변호사가 됐다. 1995년 워싱턴 D.C 검찰청의 살인 사건부 연방검사로 복귀한다. 1998년 캘리포니아 북부 지구 연방검사로 지명됐다.
2014년 로펌 윌머헤일의 워싱턴 사무소 파트너 변호사로 복귀한 그는 미식축구 선수 레이 라이스의 폭행문제를 북미프로풋볼(NFL)로부터 의뢰받아 조사관으로 활동했고,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으로 소송이 제기돼 법원이 그를 감시인으로 선임했다.
러시아 게이트 조사 과정에 뮬러 특검 팀은 러시아의 행동과 트럼프의 주요 선거 캠프 직원 및 동맹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의 활동이 자주 언론을 장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뮬러 자신은 공개적으로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나는 로버트 뮬러가 한 모든 일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았다 고 뮬러 팀의 일원인 앤드류 와이스만은 BBC의 칼 나스먼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많은 진실성과 사려 깊음이 담겨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미국 국민, 시민, 의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신뢰를 가졌는지, 어쩌면 저보다 더 많았는지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사 결과, 전 트럼프 캠페인 매니저 폴 매너포트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에 대한 여러 기소와 유죄 인정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448쪽에 이르는 뮬러 보고서 는 철저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2016년 선거에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방식 으로 개입했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캠프 구성원들이 이러한 활동에 공모하거나 조율했다는 사실은 입증하지 못했다.
2021년 2월, 뮬러는 MSNBC와의 드문 인터뷰에 응해 수십 년에 걸친 경력의 주요 순간들을 회상했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처럼 정치적으로 벅찬 일을 감독하기로 한 이유를 묻자 그는 공직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도전적인 과제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고 털어놓았다.
고인은 거의 60년을 함께 한 부인 앤 카벨 스탠디시와 두 딸, 세 손주를 유족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