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기술 자랑했던 산업혁명의 엔진 영국 버밍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중부 웨스트미들랜즈 주에 자리한 버밍엄. 런던 다음으로 큰 이 도시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설다. 맨체스터나 에든버러만큼 자주 입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도시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인류의 산업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은 엔진이 바로 여기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천 개의 기술을 가진 도시 , 세계의 작업장 이라는 별명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역사가 붙여준 훈장이다.
버밍엄 전경(위키피디아)
베네치아보다 운하가 많은 도시
버밍엄에서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약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건 12세기, 노르만 귀족 피터 드 버밍엄이 리어 강변에 시장 마을을 세우면서다. 처음엔 그저 조그만 교역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 심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중세 때부터 금속가공 기술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칼, 못, 버클, 단추, 손에 잡히는 쇠붙이라면 뭐든 만들었다. 18세기에 이르자 버밍엄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산업혁명의 심장부가 된 것이다. 한때 산업혁명의 핵심 무대였던 버밍엄은 제조업, 기술혁신, 발명의 힘으로 근대 영국을 형성하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운하망이다. 상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파고 또 팠다. 지금 버밍엄에는 베네치아보다 더 많은 운하가 있다. 로맨틱한 곤돌라 대신 석탄과 쇳덩이를 실은 화물선이 오갔으니 분위기는 좀 달랐겠지만, 실용성으로는 단연 앞섰다.
1889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시 지위를 부여받은 버밍엄은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도심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현대건축과 설계를 통해 완전히 다른 얼굴로 탈바꿈했다.
버밍엄 경기장과 운하(위키피디아)
달빛 아래 혁명을 꿈꾼 사람들 달빛모임
버밍엄 산업혁명의 숨은 진원지를 꼽으라면 단연 달빛모임 (Lunar Society)이다. 이름만 들으면 점성술 동호회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18세기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토론공동체였다. 왜 달빛이냐고? 보름달 뜬 밤에 모임을 열었기 때문이다. 달빛 덕분에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갈 수 있어서였다고 하니, 달빛이 역사를 바꾼 셈이다.
이 모임의 핵심인물이 매튜 볼턴(1728~1809)이다. 버밍엄 태생의 금속공예 사업가로, 소호 제조소(Soho Manufactory)를 운영하며 이곳을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그는 그냥 돈 많은 후원자가 아니었다. 볼턴은 의회를 설득해 증기기관 특허를 17년 연장시켜주는 데 성공했고, 볼턴-와트 증기기관은 영국과 전 세계의 광산, 공장에 수백 대가 설치되었다.
그의 단짝 제임스 와트(1736~1819)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버밍엄에 정착해 증기기관을 실용화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볼턴-와트 증기기관 은 산업혁명의 상징이 됐다. 우리가 지금도 전력의 단위로 쓰는 와트 가 바로 이 사람 이름에서 왔다.
달빛모임 구성원들은 산업혁명의 아버지들로 불리며, 실험화학, 물리학, 공학, 의학분야의 선구적 연구와 함께 제조업 및 정치·사회적 이상을 결합시킨 독특한 집단이었다. 볼턴, 와트, 조각가 겸 도예가 조시어 웨지우드(1730~1795),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1733~1804), 철학자이자 의사 에라스무스 다윈(1731~1802, 진화론의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등이 이 모임 회원이었다. 18세기판 실리콘밸리 창업자 모임 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도 종종 왜 우리에게는 이런 토론 문화가 없냐 는 탄식이 나온다. 달빛모임은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 신분을 넘어, 직업을 넘어, 실용지식과 철학적 상상력을 함께 나눈 공간이었다. 지금 한국의 연구소, 대학, 기업이 서로 담을 쌓고 있는 현실과 비교해볼 만하다.
버밍엄 태생의 금속공예 사업가 매튜 볼턴(위키피디아)
이름난 곳들, 역사와 초콜릿 사이
버밍엄의 명소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품고 있다.
불 링(Bull Ring) 시장은 12세기부터 내려온 이 도시의 심장이다. 지금은 2003년에 완공된 미래적 외관의 셀프리지스 백화점(Selfridges) 건물이 눈을 압도한다. 은빛 원반 1만 5000 개로 뒤덮인 이 건물, 처음 보면 거대한 비늘 달린 물고기가 도심 한복판에 상륙한 줄 안다. 이 독특한 외관 덕분에 완공 후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다.
버밍엄 미술관·박물관은 영국 최대 규모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그림 소장처다. 빅토리아 시대의 웅장한 건물 안에 인류의 미적 반란이 고이 잠들어 있다.
캐드버리 월드는 다르다. 달콤하다, 문자 그대로. 캐드버리 가문은 1824년 버밍엄에 코코아와 초콜릿 음료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면서 시작해, 이후 영국 초콜릿 생산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창업자 존 캐드버리(1801~1889)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노동자 복지와 사회개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세운 이상향 마을 본빌 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집과 정원을 제공했다. 19세기판 사회적 기업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에지배스턴(Edgbaston) 크리켓 경기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리켓 무대다. 그리고 버밍엄 도서관은 2013년 개관한 영국 최대의 공공도서관이자 유럽최대 지역도서관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셰익스피어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 셰익스피어도 버밍엄 언저리(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버밍엄 박물관 및 미술관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소장품을 보유한 주요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다.(위키피디아)
반지의 제왕은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J. R. R. 톨킨(1892~1973)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따라 세 살 때 버밍엄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그를 버밍엄 킹스히스의 외조부모 집으로 데려갔고, 1896년 사레홀(Sarehole, 지금의 홀그린)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어린 톨킨은 사레홀 방앗간 주변의 언덕과 습지를 뛰놀았다. 그가 탐험한 사레홀 방앗간, 모즐리 습지, 클렌트 언덕 등은 훗날 그의 소설 속 풍경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버밍엄 도심의 두 탑(에지배스턴 급수탑과 페럿의 어리석음이라 불리는 탑)은 반지의 제왕 속 두 개의 탑에 영감을 줬다는 설이 있다. 사레홀 방앗간의 무서운 주인 아들은 호빗 의 하얀 오거 가 됐다. 톨킨은 버밍엄 공업지대의 연기와 매연을 보며 사루만의 이센가르드를 상상했다고도 전해진다. 산업화가 파괴하는 자연, 그것이 중간계(Middle-earth) 신화의 한 뿌리다.
1920년대의 J. R. R. 톨킨(위키피디아)
어둠의 왕자, 하늘에 잠들다 오지 오즈본
버밍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1948~2025).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영국에서는 블랙 새버스 로 발음)의 보컬리스트로 어둠의 왕자 라 불렸던 이 사람은, 버밍엄의 노동계층 가정에서 태어나 아스톤 지역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철강공장 야간 근무자, 어머니는 자동차 조립공장 주간근무자였다. 전쟁 때 폭격으로 여기저기 도로가 파인 버밍엄의 노동계급 거리에서 성장한 오스본은 크레이지 트레인 을 타고 헤비메탈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
그는 2025년 7월 5일, 고향 버밍엄 빌라 파크에서 블랙 사바스의 마지막 공연을 치렀다. 파킨슨병으로 서지 못해 검은 왕좌에 앉은 채로 War Pigs , Paranoid 를 불렀다. 당일 4만여 명이 현장에서, 580만 명이 생방송 중계로 지켜봤고, 수익 전액은 파킨슨병 연구재단, 버밍엄 어린이 병원, 아콘 어린이 요양원에 기부됐다. 공연 17일 후인 2025년 7월 22일, 그는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쓰레기통에서 주운 삶을 살다 왕좌에 오른 사내다운 마무리였다.
헤비메탈의 선구자인 블랙 사바스는 1968년 버밍엄에서 결성되었다. 오른쪽이 오지 오스본(위키피디아)
한국에 주는 시사점, 작업장의 교훈
버밍엄의 역사를 훑다 보면 자꾸 한국이 떠오른다.
첫째, 산업 전환의 고통과 가능성. 버밍엄은 한때 세계 최강의 제조업 도시였다가, 20세기 후반 탈산업화의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실업과 빈곤, 도시공동화가 밀려왔다. 지금 한국의 조선업 밀집지역, 자동차 도시들이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버밍엄은 문화·관광·교육산업으로 도시를 재창조했다. 한국의 산업도시들도 이 전환을 서두를 때다.
둘째, 달빛모임의 정신. 신분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한자리에 모여 토론한 볼턴과 와트의 공동체는, 지금 한국에서 유독 부족한 것이다. 학계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앉아 이 나라를 어디로 가져갈 것인가 를 논하는 공간이 절실하다.
셋째, 캐드버리의 사회적 기업 모델.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설계한 캐드버리 가문의 방식은, 지금 한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 구호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넷째, 톨킨의 교훈. 개발과 산업화가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삼켜버리는 과정을 목격하며 그는 이야기를 썼다. 한국의 수많은 사레홀 방앗간 들, 재개발로 사라진 골목, 댐에 잠긴 마을은 누가 기억하는가.
버밍엄은 묻는다. 천 개의 기술 중 어떤 기술로 당신의 도시를 다시 세울 것이냐고.
버밍엄 불 링 시장에 들어선 셀프리지스 백화점(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