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2년… 자유민주주의 서 자유전체주의 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세종시 조치원읍 세종전통시장을 방문해 시민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 03.14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민의 목소리를 '입틀막'한 윤석열 정권 2년의 적나라한 민주주의 성적표가 공개됐다. 민주주의 선도국가라던 대한민국을 일컬어 '독재화'라니, 2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 이번 총선에 달려 있다'란 페이스북 글에서 한국을 '독재화로 전환 중인' 나라에 포함한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보고서를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2년도 안 돼 이렇게 나라를 망친 정권이 입법 권력까지 장악한다면 실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복구 불가능한 지경까지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윤 정권 심판을 다짐했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현대 민주주의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다. 7일 발표된 V-dem의 연례 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자유민주주의 지수(LDI)는 0.60으로 179개국 중 47위로 나타났다. 이는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의 17위에 비해 30계단이나 하락한 것이다. LDI는 해당 국가·지역의 선거민주주의, 견제와 균형, 시민의 자유, 표현의 자유, 평등과 같은 지표로 구성된다. 특히 2019년 리포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로 꼽혔던 한국이 올해 리포트에선 그리스, 폴란드,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와 함께 '민주화가 독재화로 전환 중인 국가'에 포함됐다. 그 근거로 윤석열 정부 들어 전임 정권과 야당에 대한 강압 조치, 비판 언론 탄압, 성평등에 대한 공격 등을 들었다.
3일 오후 열린 76차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2024.2.3. 사진작가 이호
스웨덴 민주주의연구소 "한국, 독재화 전환 중"
독일언론 "윤석열, 비판자들을 침묵시키려 해"
독일 일간지인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도 9일 자 기사에서 윤 대통령을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라면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썼다. 이 신문은 지난달 16일 카이스트(KAIST) 졸업에서 정부의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을 상대로 대통령 경호원들이 자행한 '입틀막' 사건을 예로 들고 "윤 대통령이 비판자들을 침묵시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 건 말고도 진보당 국회의원, 소아과 의사, 해병대 예비역 등에 대한 '입틀막' 사건이 있었다. 이 매체는 또한 검찰의 이재명 대표 수사를 언급하며 윤 대통령이 '독재자'란 비판을 듣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싸워야 할 상대로 여긴다"고도 했다.
윤석열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빠르게 무너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뉴요커는 지난해 9월 30일 자에 '한국의 우려되는 민주주의 부식'이란 제목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E. 태미 김의 글을 실었다. 태미 김은 이 글에서 '바이든/날리면' 발언 이후 MBC 등 비판언론 탄압,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정치인과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수사 등을 거론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검사의, 검사에 의한, 검사를 위한' 윤석열 정권을 염두에 둔 평가로 볼 수 있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이 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단대오거리역에서 진행된 한 위원장의 거리 인사 현장에서 채 상병 특검법 등에 대한 입장을 묻다 경호 담당자들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오마이TV 화면 갈무리
'입틀막 정권'이 민주주의 정상회의 주최
백악관, 한국을 최전선의 민주주의 투사로 지목
문제는 이렇게 급속도로 독재로 퇴행 중인 윤석열 정부가 오는 20일 서울에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단독으로 주최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회의는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를 주제로 열리며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정상회의 본회의는 20일 저녁 화상 형식으로 진행된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불참하는 바람에 화상회의로 치르게 됐다. 앞서 18일에는 장관급 회의 및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이, 19일에는 국내외 시민사회 주도로 주제토론 및 워크숍 행사가 예정돼 있다. '입틀막 정권'이 주최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한편의 코미디다.
인권과 민주주의 외교를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는 '윤석열 한국'의 민주주의 현주소가 이런 줄을 뻔히 보면서 지적은커녕 감싸기 바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켈리 라주크 백악관 NSC 선임국장은 13일(현지 시간) 민주주의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을 미국과 최전선에 함께 선 민주주의 투사로 지목했다. 라주크 국장은 "민주주의는 전 지구적으로 투사들을 필요로 한다"며 "우리는 한국이 이번 회의 개최를 통해 이 같은 투사의 하나로 올라선 것에 전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변곡점에 서 있다"며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민주주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은 17일 방한해 윤 정부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선다.
운동권을 종북좌파나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은 보수우파의 핵심 전략이다 -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광복절 연설 중에서
윤석열 2년, '자유민주주의'서 '자유전체주의'로
이재명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 한없이 망가져"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진단은 매섭다. 이 대표는 "피로 쟁취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없이 망가지고 있다. 국민은 그대로인데 세계를 선도하던 '민주주의 모범국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혹시 압수수색 당하지 않을지', '말 잘못하면 끌려가지 않을지' 걱정하는 나라가 됐다"고 개탄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촉발한 주요 요인에 대해 이 대표는 △ 윤석열 정권의 권력남용으로 인한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헌정질서의 기본 시스템의 급속한 붕괴 △ 대통령이 국민통합보다 이념전쟁에 몰두 △ 폭압적 검찰통치 지속과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 공존 실종 △ 3·15 부정선거 이후 최악의 관권선거 자행 등을 꼽았다.
지난해 8·15 경축사는 이념전쟁과 대결에 집착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을 압축해 표현했다.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로 대비시켰다. 그런 다음 국내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있고 그들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도 현 정부를 반대하고 비판하면 모두 '공산전체주의 세력'이고 '반국가세력'이란 논리다. 그 옛날 민주주의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논리와 거의 판박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연대의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윤석열 정권이 신줏단지 모시듯 해온 '자유민주주의'는 빛이 바래고 '자유전체주의'로 퇴행 중인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