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측정한다고? 캐서린 콕스가 던진 백년의 질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굶주린 아이들과 만난 심리학자
1920년의 베를린.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년이 지났지만 거리엔 여전히 굶주린 아이들이 넘쳐났다. 독일어를 가르치던 한 미국 여성이 이 모습을 보고 학교를 그만 두고 구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캐서린 콕스(Catharine Cox, 1890~1984). 훗날 마일스(Miles)라는 성을 얻은 그녀는 굶주린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인간의 마음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갔다. 왜 어떤 아이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까?
이 질문이 그녀를 심리학으로 이끌었다. 서른 나이에 독일어 교사에서 심리학도로 변신한 캐서린의 선택은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맞닥뜨린 심리학계는 빵을 나눠주던 베를린보다 더 척박했다.
캐서린 콕스(Feminist Voices)
천재를 숫자로 만든 남자들
캐서린이 1927년 스탠퍼드 대학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엔 루이스 터먼(Lewis Terman, 1877~1956)이 있었다. 스탠퍼드-비네 지능검사를 만든 터먼은 우생학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지능을 숫자 하나로 환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야심찬 천재 연구 는 간단했다. 지능지수 135 이상인 아이들을 찾아내 일생을 따라 가 천재는 타고난다는 것임을 증명하겠다는 것.
캐서린은 1926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300명의 위인들 어린 시절 기록을 분석해 그들의 지능지수를 역산했다. 나폴레옹은 145, 괴테는 185라는 식으로. 지금 보면 황당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였다. 문제는 이 연구가 터먼의 천재는 유전된다 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쓰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캐서린은 터먼과 달랐다. 그는 1935년 논문에서 여성의 몸이 본질적으로 불균형하다는 터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여성에게 생물학적 비극은 없다. 사회가 여성을 노동자이자 어머니로 존재하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학적 비극이 있을 뿐 이라고 썼다. 2026년에도 신선한 이 통찰이 1935년에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루이스 터먼(위키피디아)
남성성-여성성, 그 위험한 자의 탄생
1936년 터먼과 함께 쓴 성과 성격 (Sex and Personality)은 캐서린의 경력에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이다. 이 책은 이른바 터먼-마일스 남성성-여성성 검사 를 소개했는데, 그 기본 전제가 충격적이다.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해야 정신건강이 좋다는 것. 동성애자는 전도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며, 부모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까지 담겼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책이 정말로 캐서린의 생각을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캐서린이 터먼과 따로 발표한 연구들을 보면 그녀는 동성애에 대해 동료들보다 훨씬 덜 부정적이었다. 1929년 2000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긍정적으로 인용하며, 정상적인 여성들도 혼외 이성애, 동성애, 자위를 경험한다고 밝혔다.
개인 서신들을 보면 터먼과 캐서린은 연구방법론에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녀는 폭넓은 문헌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터먼은 실험부터 하자고 밀어붙였다. 결국 책 출간이 늦어지고 두 사람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누가 진짜 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해로운 영향은 수십년 이어졌다.
캐서린의 천재애 대한 유전학적 연구 논문(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네 아이의 엄마이자 예일의 유일한 임상심리학자
1927년 터먼의 동료인 월터 마일스(Walter Miles, 1885~1978)와 느즈막이 결혼한 캐서린은 곧바로 10대 의붓자녀 셋을 떠맡았다. 딸 안나를 키웠다. 아들 찰스는 출산 직후 죽었다. 1932년 예일대 심리학과 및 정신과에서 임상 교수직을 맡았을 때, 그녀는 2차 대전 직후까지 예일의 유일한 고위 임상심리학자였다.
네 아이를 키우며 풀타임으로 일하고 연구까지 하는 삶. 1930년대 이게 가능했을까? 한 기록보관 담당자는 캐서린을 슈퍼맘 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훨씬 전의 슈퍼맘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캐서린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노동자이자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사회가 허락하지 않을 뿐.
1947년의 월터 마일스(위키피디아)
은퇴 후의 반전: 튀르키예에서 다시 시작
1953년 예일에서 은퇴한 부부는 1954년 튀르키예로 떠났다. 월터가 이스탄불 대학실험심리학 교수로 임명되어 실험실을 만들고 발전시켰다. 60대 중반에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1957년 미국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뒤, 10년을 더 그곳에서 살았다.
1967년 미국심리학회는 캐서린에게 평생 공헌상을 수여했다. 1984년 10월 11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월터는 6년 전에 먼저 세상을 등졌다.
캐서린과 남편 월터(Catharine Cox Miles – Supermom | Cummings Center Blog)
캐서린을 다시 읽는다는 것
지금 캐서린 콕스 마일스를 떠올리는 건 묘한 기분이다. 우리 역시 천재 만들기 에 열광하는 사회 아닌가. 영재학교, 특목고, 조기교육, 사교육 시장. 모두 타고난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 키워야 한다 는 믿음에 기반한다. 터먼의 유령이 지금도 한국에 떠돌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터먼의 천재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능지수가 높아도 끈기, 자신감, 부모의 초기 격려 같은 요인들이 없으면 뛰어난 성취를 보장하지 못했다. 더 웃긴 건, 연구 대상에서 제외된 아이들 가운데 루이스 알바레즈와 윌리엄 쇼클리가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지능 검사가 천재를 가려내는 데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캐서린이 던진 진짜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사회는 여성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가? 이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력 단절, 유리 천장, 워킹맘의 죄책감. 캐서린이 90년 전에 지적한 사회학적 비극 은 아직 진행형이다.
슈퍼맘 캐서린과 딸(Catharine Cox Miles – Supermom - Paperblog)
숫자 너머의 인간을 보는 법
캐서린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심리학을 하기 전이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던 시절. 캐서린은 아이들을 지능지수로 보지 않았다. 그저 배고픈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학계에 들어가자 캐서린은 터먼의 그늘에 가렸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연구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여성의 몸을 옹호하고,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며, 일하는 엄마의 권리를 주장했다.
우리는 여즉 아이들을 스펙 으로 본다. 지능지수, 내신 등급, 대학 순위.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캐서린이라면 이렇게 답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다. 아이들을 숫자로 보게 만드는 제도, 여성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 이것들을 바꾸지 않으면 진짜 천재는 나올 수 없다.
슈퍼맘 캐서린과 아들(Feminist Voices)
측정할 수 없는 것들
캐서린 콕스 마일스의 유산은 복잡하다. 그녀는 지능을 숫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다. 천재를 연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슈퍼맘 이라는 다른 억압에 갇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캐서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른에 새 학문을 시작했고, 예순에 튀르키예에서 다시 시작했으며, 아흔이 넘도록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그녀의 삶 자체가 측정할 수 없는 것들 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정교한 지능 검사가 아니다. 숫자 너머의 인간을 볼 수 있는 눈이다. 빵을 나눠주던 캐서린처럼, 배고픈 아이를 그저 배고픈 아이로 볼 수 있는 마음이다.
천재를 만드는 건 지능지수가 아니라 사회다. 그 사회가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성에게 선택지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숫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가. 캐서린이 백 년 전에 던진 이 질문에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캐서린은 오른쪽 두번째(Catharine Cox Miles – Supermom | Cummings Cent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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