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유례 없는 호황인데 소득 격차는 더 벌어져 [사회혁신] 올해 1분기 저소득층의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반면 고소득층의 여윳돈은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해 가계 살림살이 격차가 더 커졌다. 소득 상·하위 흑자액 격차는 4년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메가 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는 폭주하는데 가계살림은 정작 그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등의 성장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방법과 경로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긴절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분기 소득 하위 20%가구의 실질 적자액,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31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이하인 1분위 가구의 올해 1분기 실질 흑자액은 마이너스 43만 8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분기 기준으로 201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적자 규모이자, 모든 분기를 통틀어서도 최대 수준이다.
흑자액은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세금·이자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금액)에서 소비지출을 뺀 값으로, 가계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윳돈을 의미한다. ‘마이너스’일 경우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많아 벌어들인 소득만으로 지출을 충당하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소득 1분위는 자산을 보유한 은퇴 고령가구나 일시적 소득 감소 가구도 포함되지만, 전반적으로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반면 1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의 실질 흑자액은 344만 5000원으로, 같은 분기 기준 2022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1분위와 5분위 간 흑자액 격차는 388만 4000원으로 벌어지며 역시 202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 1.5분위 실질 흑자액 추이, 자료 : 국가데이터처
1분위와 5분위의 1분기 소득실질흑자액 추세 유지되면 양극화 더 심화돼
한편 이 같은 격차는 엇갈린 소득·소비 흐름에서 비롯됐다.
1분위 가구는 소득은 정체됐는데 씀씀이가 커지며 적자 폭이 확대됐다.
1분위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79만 2000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0.1% 감소했다. 전체 소득 증가세가 0.6%에 그쳤는데, 전체 소득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이전소득이 2.6% 감소한 데 따른 영향이다. 여기에 사회보험(22.7%)과 이자비용(12.3%) 등 비소비지출(3.6%)이 늘면서 실제 가계에 남는 여력이 감소했다.
반면 실질 소비지출은 123만 1000원으로 5.1% 증가했다. 식료품(3.3%)·보건(6.5%) 등 필수 지출이 증가한 가운데 교통·운송(33.8%), 오락·문화(23.4%) 등 선택적 소비도 늘었다.
5분위 가구는 지출을 늘렸음에도 처분가능소득이 더 크게 뛰면서 여윳돈을 불렸다.
5분위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3.0% 늘어난 814만 6000원으로 같은 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근로소득(0.4%) 증가세가 미미하고 사업소득(-3.0%)은 줄었지만, 세뱃돈 등 사적이전소득을 중심으로 이전소득(22.6%)이 크게 늘면서 소득 증가를 이끌었다. 비소비지출은 가구 간 이전지출(-7.6%) 등을 중심으로 1.0% 감소했다.
실질 소비지출은 470만원으로 4.8% 늘었다. 교통·운송(10.1%), 보건(10.7%), 교육(4.8%), 음식·숙박(2.3%) 등 주요 항목에서 소비가 늘었다.
이번 지표는 소득과 소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자산을 포함한 가계의 양극화 수준은 연간으로 발표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양극화는 향후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월부터 중동 사태 여파로 고물가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1분위 가구 부담이 더 커지는 데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인한 일부 대기업에 집중된 성과급 지급 등으로 고소득층 소득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 전쟁 영향이 물가 등에 본격화하면서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위축되는 반면, 고소득층은 성과급 등으로 소득 여건이 개선되면서 향후 계층 간 살림살이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가난한 노인의 국수 한 그릇에 땀으로 지은 하루가 담겨있다. 사진=정남준
반도체 등에 올라탄 한국경제 날아가는데 가계는 체감 못해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한국 경제가 1분기 깜짝 성장했지만, 경제 주체의 한 축인 가계의 실질 소득 증가율은 미미해 실제로 경제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가계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31일 국가데이터처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1분기 가계의 실질 소득은 월평균 462만 8718원으로, 1년 전보다 0.4% 증가했다.
실질 소득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2.3%를 기록했으나 2분기 0%로 보합세를 보였고, 3분기엔 1.5%, 4분기 1.6%로 확대되더니 올해 1분기 들어 다시 쪼그라들었다.
특히 올해 1분기 실질 소득 증가율이 0%대를 기록한 것은 한국 경제 성장 속도가 빨라진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양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3.6%였다.
실질 소득 증감률. 실질GDP성장률 추이, 자료 : 국가데이터처, 한국은행
중동발 악재에도 반도체 등 수출 호조에 힘입어 GDP 성장률은 1분기 기준으론 2014년(3.8%) 이후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엔 일부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1분기 경제 성장률에 비해 가계의 실질 소득 증가율은 3.2%포인트 낮다.
경제 성장률과 견줘 가계의 실질 소득 증가율이 이같이 낮아진 것은 2024년 1분기(5.0%포인트) 이후 2년 만이다.
작년 1분기엔 경제 성장률보다 실질 소득 증가율이 2.3%p 앞섰다. 이후 2분기 경제 성장률이 0.6%p 앞선 것으로 역전되더니 이 격차가 3분기 0.3%포인트, 4분기 0%로 축소되다가 올해 1분기 확대된 것이다.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가계는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셈이다.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수억 원 규모의 성과급을 받는 상황이지만 반도체와 같이 업황이 좋은 일부 대기업이나 해당 직원들에게 한정된 얘기일 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가 벌어들일 천문학적 과실을 사회 전체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명확하게 포착된다. 실제로 실질 소득 가운데 실질 근로소득은 1.7% 줄었다. 이는 동 분기 기준 2024년(-4.0%) 이후 가장 낮다.
자영업자 소득인 실질 사업소득은 1분기 기준으론 2023년(-10.9%) 이후 가장 낮은 0.5% 증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소득 쏠림은 올해 1분기 들어 더욱 악화했다.
상·하위 20%인 소득을 비교하는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59배로, 2020년 1분기(6.89배) 이후 가장 높았다.
상위 20%인 5분위 소득이 4.2% 늘어났지만, 하위 20%인 1분위 소득은 2.7%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다.
‘경제 허리’의 소득 증가세는 더 안 좋았다.
상위 60∼80%(하위 20∼40%)인 2분위와 상위 40∼60%인 3분위 소득 증가율은 각각 1.5%, 1.2%로, 1분기 기준으론 202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상위 20∼40%인 4분위 소득 증가율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같은 분기 기준 최저인 0.5%였다.
전체 소득 가운데 5분위가 차지하는 소득 점유율은 45.2%로, 2023년(45.5%) 이후 최고가 됐다.
다만 재정경제부는 분기별 가구소득은 계절성 등의 영향을 받고, 가계동향의 경우 표본이 적기 때문에 공식적인 소득분배 개선 여부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연간지표)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GDP 증가는 반도체가 견인했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근로자 약 30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약 2800만명 취업자의 소득은 경제 성장에선 소외돼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메가 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와 연관 산업군이 올해를 비롯해 향후 몇 년간 상상을 초월할 영업이익을 거둘 것은 꽤 자명해 보인다. 이들이 거둘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고루게 나눌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과 효과적인 경로를 모색하고 집행할 권한과 책임이 이재명 정부에게 있다. 최고난이도의 고차방정식이지만 반드시 해법을 찾아야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다.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7%로 0.5%p 상향조정한 가운데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중동 정세와 그에 따른 물가성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2026. 5. 28 연합뉴스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