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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아틀라스 둘러싼 왜곡과 네오 러다이트 의 필요성

아틀라스 둘러싼 왜곡과 네오 러다이트 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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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개막 이틀째인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로봇 아틀라스가 이동하고 있다. 2026.1.8. 연합뉴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두고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 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의 일방적 도입에 반대하며 협상을 요구한 상황에서 나왔다. 대다수 보수 언론과 경제 매체들은 이 발언이 노조의 발목 잡기를 비판한 것 이라며 확증 편향적 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대해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아틀라스의 일방적인 도입이 노동자의 안전, 작업 방식, 고용 안정에 심각한 영향이 예상되기에 정당한 협상을 요구한 것 이라며 대통령의 역할은 사회의 안정적인 유지·발전, 국민 다수의 이익, 그리고 공평한 분배에 있다 고 반박했다. 기술 도입이 자본의 일방적인 결정과 노동자의 희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전체 발언과 맥락을 뜯어보면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프레임이 부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노조의 반대는 투쟁 전략의 일부일 것 이라고 노동자의 저항을 이해하면서 생산수단을 가진 쪽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질 것 이라며 기술 발전이 가져올 불평등을 우려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것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노동조합의 우려와 궤를 같이한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기본사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며, 이런 얘기를 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를 통해 이런 고민을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이재명 정부와 금속노조의 입장을 보면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은 위기가 오고 있다 는 인식과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서로 대립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부 공통된 인식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노조는 현장에서의 민주적 합의를,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사회 제도적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족벌 언론과 친기업 경제 언론들은 프레임을 단순화하여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만 급급하다. 이들은 미래 지향적인 정부 vs 과거에 발이 묶인 노조 라는 허구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고, 노조를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글로벌 기술 전쟁 중인데 국가 경쟁력을 깎아먹고 청년 세대의 미래 일자리를 가로막는 이기적인 강성노조 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는 사설을 통해 이들은 글로벌 경쟁 상황이나 회사의 미래엔 관심이 없다 , 혁신이 나타날 때마다 싹을 밟아버리는 일 이라며 노조의 행보를 현대판 러다이트(Luddite) 라고 낙인찍었다. 하지만 이는 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 당시의 러다이트 운동과 역사에 대한 전형적인 왜곡과 오해에서 비롯한 선전이다.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기술비평가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는 러다이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정의한 바 있다. 그들의 투쟁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러다이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의 미래에 대해 민주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기술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대중이 아니라, 기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활용하던 숙련된 직공과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공장주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편지를 먼저 보냈으며, 대체로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임금을 깎으며 노동 조건을 개악한 악덕 공장주들의 기계를 선별적으로 공격했다. 이는 노동조합이나 단체행동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 강력한 협상과 저항 방식이었고, 오늘날 노동조합과 단체행동의 초기 형태였다.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이를 폭동에 의한 단체교섭 이라고 칭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노동자들은 기술 그 자체에 분노를 터뜨린 것이 아니라, 고용주가 양보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계를 파괴했다. 그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도입 속도와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 비록 러다이트 운동은 군대를 동원한 영국 국가의 폭력적 탄압으로 쇠퇴했지만, 이후 노동운동이 합법적인 노동조합 운동과 차티스트(Chartist) 운동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과 디딤돌이 되었다. 친자본 언론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며 낙인을 찍어도, 그 본질은 노동의 존엄과 공동의 미래를 지키려는 필사적 투쟁이었던 것이다.    CES 2026 현대차그룹 전시관에서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는 모습. 2026.1.18. 현대자동차·기아 제공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은 산업혁명 초기보다 훨씬 급격하고 위협적이다. 고도로 집적된 인공신경망은 이제 단순 계산이나 응용을 넘어 인간의 사고 과정과 직관까지 흉내 내고 있다. 이것이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로봇 기술과 결합할 때 숙련 노동, 지식 노동, 심지어 서비스 노동의 영역까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특히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하는 대목은 군사 분야와 전쟁 무기에서의 혁명적 발전 이다. 이미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표적을 식별하고 폭격을 감행하면서 놀라운 규모의 인종청소와 집단학살로 생지옥을 만들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 의사의 진료와 처방은 돈보다 생명 을 우선시할 것인가? 자율주행차의 알고리즘은 사고 직전의 순간에 보험금과 수익성이 아닌 인간의 생명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인공지능 무기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을 제거해야할 테러리스트 로 인식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판단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결국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알고리즘을 설계하느냐에 있다. 기본적 관점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기계 사용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계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노동을 편하게 하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고 노동의 강도를 높인다. 기계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든다. 기계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늘리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 오늘날 인공지능과 로봇의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용 을 주도하는 이들은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새벽 배송 현장에서 개처럼 뛰고 있다 던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수천만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단속하다 항의하는 시민이 비참하게 죽어가도 사과는커녕 더 가혹한 탄압을 이어간다.   유튜브 방송 화면 갈무리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 정부에 기술과 무기를 지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빅테크 기업들의 모습은, 아동 노동까지 착취하며 수익만을 쫓던 19세기 영국 공장주들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노동법을 우회해 노동자를 쥐어짜고, 그 대가로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겨가는 이런 자들이 기술의 미래를 독점한다면 인류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누가 이것을 통제하는가? 누구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는가? 인공지능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동의 없이는 그 어떤 데이터와 창작물도 자본의 학습 도구로 사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그것이 사회와 공공, 노동과 생태에 끼칠 영향을 엄격히 평가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시행한 인공지능기본법 에는 이러한 통제 노력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여전히 인공지능 산업의 진흥 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한국 정부에 이 정도의 인공지능 규제조차 완화하고 철폐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함께 맞서면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더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2023년 파업을 통해 인공지능 도입 과정에서의 노동자 동의 및 구체적 통제권 을 계약서에 명시해 낸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달리, 살아있는 인간은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때로는 딴생각을 하며 실수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 이야말로 인간만의 고귀한 장점이다.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증거다. 살아있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며 자기 일처럼 아파할 수 있다. 그런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손을 맞잡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함께 웃고 울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 인간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기술의 수레바퀴를 운전하는 주체는 자본의 알고리즘이 아니라, 노동하고 사랑하고 저항하는 인간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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