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뉴스 단호히 버려야 좋은 뉴스 만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문, 방송, 포털, 유튜브까지 끝없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이 책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당신은 그 뉴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 물음은 곧 자신이 소비하는 많은 뉴스들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고는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나쁜 뉴스 는 단순한 오보나 실수가 아니다. 낚시성 제목, 혐오 보도, 익명 취재원의 뒤에 숨어 알려졌다·전해졌다 를 반복하는 검찰발 받아쓰기, 권력의 향배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기회주의 보도, 의도적인 프레임 교체 등이다. 이 책은 이런 뉴스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알게 되는 것은 나쁜 뉴스가 해롭다는 사실, 그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나쁜 뉴스의 문제는 그것이 나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나쁜 뉴스의 폐해는 독자를 분노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독자를 마비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귀성객을 상대로 탄핵 반대 입장을 알리려고 자체 제작한 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2017.1.26. 연합뉴스
수많은 미디어와 뉴스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뉴스가 아니라 더 나은 언론 독해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다. 미디어 리터러시 혹은 ‘뉴스 리터러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청소년들, 대학생들, 일반 시민들도 이제 뉴스를 비판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삶이 흔들릴 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뉴스 리터러시 가이드북’인 이 책은 나쁜 뉴스에 대한 고발장이자 시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도록 하는 길로 이끌어주는 안내서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뉴스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정보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일이자, 때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쁜 뉴스의 양산은 개별 기자의 윤리에서의 실패의 결과로 볼 수 없다. 저자는 나쁜 뉴스가 무엇인가를 열거하는 데 머물지 않고, 무엇이 나쁜 뉴스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가를 파헤친다. 저자는 그 구조를 민주당 정부 시절엔 사납게 짖는 경비견이었다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순한 수면견으로 돌변하는 언론의 이중성을 통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윤석열 정부 3년과 12·3 비상계엄을 이 구조의 총체적 귀결로 지목한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감시를 포기한 자리에서, 민주주의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김성재 저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 의 표지.
이 책은 독자에게 나쁜 뉴스를 감별 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으로도 그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만 이 책의 효능과 의미는 단지 그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나쁜 뉴스에 대한 거부나 무시가 뉴스에 대한 소극적 회피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나쁜 뉴스에 맞선다는 것은, 일종의 ‘내전’에 임하는 것과 같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이미 길들여진 수동적인 태도, 무감각, 어차피 다 그렇지 라는 체념 속에 있다. 저자는 그 내부의 적에 맞서는 전투 의지와 각오를 북돋는다. 추천사를 쓴 언론인 손석희 씨가 이 책을 쓰지만 몸에 좋은 약 이라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내놓은 궁극적인 동기는 사실 제목의 헤어질 결심 이라는 말에 역설적으로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제목은 단지 나쁜 뉴스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무엇과 헤어지는가, 왜 헤어져야 하는가를 제대로 아는 것, 그 결심이 얼마나 단호한가에 따라 그 이후가 결정된다. 그래서 무언가와 헤어지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이후가 단순히 좋은 뉴스를 소비하는 것 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좋은 뉴스, 좋은 언론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어내는’ 것이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저자는, 말하자면 독자에게 단지 소비자의 자리를 제안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들을, 언론 수용자들을, 언론 주권자들을 향해 묻는다. ‘함께 만들겠는가’ 라고 묻는 것이다. 좋은 언론을 찾아내고 키워내는 것을 민주시민의 실천 윤리로 제시하고 권유한다.
저자 김성재는 독자와 시민들에게 좋은 뉴스, 좋은 언론을 만들어가자는 그런 권유를 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라고 할 만하다. 이었다는 것이 떠올려진다. 나쁜 뉴스를 식별하고 거부하고 그 해법에 필요한 슬기 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좀 더 나은 언론을 바라라는 시민들이 그 슬기를 키우는 데 이 책이 유용하게 쓰일 만하다.